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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신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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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17 18:06 조회1,4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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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은 연애의 무덤이 아니라 사랑의 이다. 연애는 온 세상을 태울 듯한 화염처럼 거세게 타올랐다가도 한 줄기 바람에 푸른 재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사랑은 광기처럼 나를 사로잡아서 이 사람 저 사람을 향해 어둔 길을 떠돌게 하기도 하고, “내 운명이야!”라고 외치는 마음의 확신이 조그만 충격에도 산산히 무너져 내리는 공허와 자괴의 시간 안에 나를 가두기도 한다.

그런데도 연애할 때 가졌던 두근거리는, 뜨거운 감정이 더 이상 없어요. 생기질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랑은 감정이지만, 감정으로서만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난 애초에 그런 감정 없이 결혼했어요.”라고 말하는 이는 인생을 완전히 망쳐 버린 것일까. 혼인생활에서 감정은 중요하지만, 감정으로서만 설명될 수는 없다.

연인은 그 누구로부터 배우지도 않는 말을 상대에게 속삭일 줄 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말한다. “너만을 영원히 사랑할 거야!” 배우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심연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이 말을 알고 또 한다. 이 말은 내가 다 헤아려 말하지 못하는 행복의 정체를 밝혀 준다. 모든 인간들이 욕망하는 행복의 한가운데에는 ’, ‘영원’, ‘사랑하다가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행복이 하늘나라에 있다면, 하늘나라에도 ’, ‘영원’, ‘사랑하다가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의 행복이지만, 여기에는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산다. ‘의 행복이 중요한 만치 아닌 것들이 주인공으로 산다. ‘아닌 것들 즉 ’, ‘영원’, ‘사랑하다’.

예수님께서 계시해 주신 행복의 풍경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 욕망의 진실이다.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향해 ’, ‘영원’, ‘사랑하다라는 말씀을 건네 오셨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 믿어서’ ‘알고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신”(사도 17, 23)이 마음 안에서 이런 말씀을 건네 오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써안다. 그래서 세상의 연인들이 모두 너만을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고 속삭인다. 체험에 의한 앎은 신앙에 의한 앎으로써 충만에 이른다.

연인이라면 누구나 의 소중함, ‘영원에 대한 갈망, 상대의 태도와 행위를 묻지 않는 내 사랑의 행위가 나의 행복을 구축하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스스로 안다’. 그렇듯, 자신이 종교적인간임을 스스로 드러낸다. 이렇듯, 인간의 감정은 본래감정 그 이상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원천과 목적지에 대한 을 계시해 준다. 목적지를 향한 마음의 근원적인 긴장을 발하며 내 몸에 변화를 가져 온다. 몸이 욕망하게 하고 행위하게 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뒤바뀌는 감정이 영원을 말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느낌으로써만 살아가는 인생은 또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 16)라는 말씀은 하느님이 느낌에 불과하다는 뜻일까.

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스스로가 감정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한다. 행위와 삶으로 현실화되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로서 그치지 않고 따뜻한 이 되고자 한다. 찰나가 아니라 영원으로 살기 위해서 감정의 울타리를 넘어 이성과 의지를 스스로 요청한다. 은밀한 속삭임이 아니라 지붕 위의 외침으로 변모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결혼식에 가서 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의 육화사건이다. 그렇게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