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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예수성탄대축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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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0-12-15 00:00 조회2,9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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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성탄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요한 1,1.14).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요한은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이 가장 가까이 따르며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그 행동 하나하나를 샅샅이 살펴보았던 분, 그래서 그분이 "우리와 똑 같은 인간"(필립 2,7)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이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과연 나자렛에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나신 예수님은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1고린 2,9) 분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몸에서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태어나실 때에만 그렇게 놀랍고 신비스런 분이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도 앞으로도 세상 끝날까지 계속 신비스런 분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면서도 사람이시며, 온 우주도 담을 수 없는 분이 짐승의 밥통 속에 담겨 계시고, 더 할 수 없이 풍요하신 분(요한 1, 16 참조)이 천대받는 인간에게 물 한 모금을 청하십니다(요한 4, 7 참조). 이 세상을 떠나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분"(마르 16,19)이 제자들과 "함께 일하십니다"(마르 16,20). 그리고 보이지 않으시면서도 모든 사람, 특히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되고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과 감옥에 갇힌 사람(마태 25,35-36)의 얼굴 속에 지금도 그 모습이 뚜렷이 보이는 분이십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 안에"(요한 14,20) 계신가 하면, 아직도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묵시 3,20) 계십니다.

 

그분의 신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루가 21,5) 건물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당신의 몸을 두고“(요한 2, 21)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성령을 받은 모든 사람도 하느님을 자기 안에 모신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께서는 말씀이신 당신이 피와 살을 취하여 사람이 되게 하신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잘 간직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리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따라서 당신의 어머니 못지않게 행복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루가복음 11장 27-28에 소개된 한 장면에서 두리는 그것을 확인합니다. 0하루는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실 때 말씀을 듣고 있던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 말을 글자 그대로 옮기자면, "당신을 잉태한 자궁과 먹여 기른 젖은 얼마나 행복합니까?"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하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지킨다"다는 표현은 우리말에서도 "실천한다"는 뜻과 "남이 손상시키거나 훔쳐가지 못하도록 잘 간직한다"는 뜻이 있는데, 성서 원문은 여기서 이 두 번째 의미를 띠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대답을 풀어 보면, 여인이 남편의 씨를 받아서 손상되지 않도록 몸속에 잘 간직하면 그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나중에 아기로 태어나듯이, 누구나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씨앗을 받아들여 손상되지 않도록 잘 간직하고 보호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이렇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천사를 통해 들려온 말씀을 듣고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인 나를 몸에 잉태하여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신 어머니 마리아를 특별히 부러워할 것은 없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잘 간직하면, 어떤 의미로, 말씀을 잉태한 나의 어머니처럼, 하느님 말씀에 자신의 피와 살을 입혀드리는 셈이 되고, 따라서 말씀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띤 사람은 누구나 말씀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혀서 무엇이 제일 필요한지에 관해서 "교회의 삶과 사명에서의 하느님 말씀"(2008년 10월 5-26)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논의된 것을 정리하여 내놓은 교황 권고서 "주님의 말씀" 79항에서 베네딕도 16세께서는 이렇게 피력하십니다. "주교는 자기 사제들과 함께, 또 나아가 모든 신앙인들과 똑같이, 그리고 교회 자체와도 같이, 다른 이들에게 말씀을 건네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말씀을 듣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 머물러 그 보호를 받고 영양분을 섭취하듯이,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이 되시고, 그 뒤를 이어 신앙인이 성전이 되는 것과 같이, 마리아께서 말씀의 어머니가 되신 모범을 본받아 신앙인은 누구나 말씀을 받아들여 마리아와 같은 말씀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탄은 말씀의 탄생일만이 아니라, 마리아께서 어머니로 탄생하시는 때이며, 그분의 뒤를 이어 우리 신앙인 하나하나가 또 말씀의 어머니로 탄생하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코 복음 3장에 소개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은 깊은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복음선포 활동 중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오셨을 때 어떤 사람이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밖에서 찾으십니다”하고 알려드리자, 예수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하고 반문하신하시고, 둘러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르 3,31-35 참조).

 

이번 성탄에 우리 모두 말씀을 세상에 낳는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시는 그분의 형제, 자매,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서 빛과 능력을 주시라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