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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하신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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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인 세실리아 작성일19-07-11 11:52 조회1,6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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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불공평한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나의 능력과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정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듭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아무런 차별도 없고 불공평한 일도 없는 하늘나라에 희망하면서 하느님의 공평하신 사랑에서 힘과 위안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들려주신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를 보면, 그런 기대가 무너지는 듯합니다.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에 장터에 나가 일꾼들을 사서 자기 밭으로 보냅니다.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 시까지 여러 차례 거리로 나가, 일자리 없이 서성이는 사람들을 모아 자신의 포도밭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자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씩을 품삯으로 주었습니다.

사회적인 통념으로 주인의 행동은 불공평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인은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 20,13-15) 

예수님의 비유를 잘못 이해하면,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고 많은 공로를 쌓는 것이 불필요한 것처럼 들립니다. 심지어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든 게을리 하든 상관없이 하늘나라에서는 모두 똑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의미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에게, 그들의 능력이나 노력과 실천으로는 감히 청하지도 못하고 얻을 수도 없는 크나큰 은총을 베푸신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밭에 맨 먼저 온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 더 수고하고 많은 일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수고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기에 정말 합당할까요? 참고로 비유에서 ‘한 데나리온’은 당시 사회의 정당한 하루 품삯이 아니라 주인이 주고 싶어 하는 대가입니다. 포도밭 주인은 자신의 밭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정해놓은 매우 후한 품삯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일했든 오후 늦게 와서 일했든 상관없이 모든 일꾼에게 자신이 정한 품삯을 지불합니다. 이 너그러운 주인이 아니었다면 맨 먼저 온 일꾼들도 일거리를 얻지 못한 채 온종일 장터에서 서성이다가 빈손으로 귀가해야 했을 것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주인의 처사가 불공평했고 일꾼들이 받은 품삯도 불공평했습니다. 하지만 주인이 행한 불공평함은 조건 없는 자비였고, 일꾼들이 받은 불공평함은 조건 없는 축복이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부르셨고, 그렇게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께 ‘공정한 심판’을 청하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공정한 대우’를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불공정하신 사랑으로 구원받았음을 기억하면서 이웃에게 그런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는 텅 비거나 모자라게 되더라도 이웃에게는 모자람 없이 넘쳐흐르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 사랑과 나눔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공평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