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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윤지충 사발 지석 명문, 다산 정약용 필체[가톨릭평화신문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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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10-13 조회 7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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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복자 윤지충 사발 지석 명문, 다산 정약용 필체”

다산 연구의 대가 정민 교수, 사발 지석 글씨체와 친필 44자 비교 결과 동일 필체 가능성 높아

2021.10.10 발행 [16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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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발 지석 글씨(위)와 다산 친필 필적(아래) 두 줄씩 대조표. 운필의 습관에서 다산의 필획과 일치하는 점이 대단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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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교수가 다산 정약용의 「산재냉화」를 들고 다산의 필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면례 무덤 조성 시기와 입교 권면·사촌간 등 관계 종합적 고려하면 다산이 썼을 개연성은 충분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무덤에서 출토된 백자 사발 지석에 새겨진 명문은 다산 정약용의 필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글자의 구성이나 필체로 봤을 때 다산이 명문을 직접 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다산 연구의 대가인 한양대학교 정민(베르나르도,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사발 지석의 글씨를 본 순간 대단히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며 “다산 정약용의 글씨체와 비슷하다는 것이 글씨에 대한 첫인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민 교수는 10여 년간 다산의 친필이 있다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실물을 보고 사진을 촬영했다. 다산의 친필 글씨를 친숙하게 보아온 탓에 사발 지석에 적힌 글씨가 다산이 쓴 것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발 지석의 글씨는 해서(楷書, 글씨를 정자로 바르게 쓰는 한자 서체)다. 해서체로 된 다산의 친필 글씨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된 「여유당시집」과 필사본 「산재냉화」, 「백운첩」 등에 풍부하게 남아있다. 정민 교수는 사발 지석에 적힌 글씨를 글자별로 잘라 내 표 속에 넣고, 해서로 적힌 다산의 친필 글씨 중 표 속에 글자와 같은 글자를 찾아 44자의 샘플을 만들었다.

사발의 글씨는 평평한 상태의 종이에 쓴 것이 아니다. 사발의 경우 굽이 있어 붓이 닿는 면과 붓을 잡는 공간이 종이에 쓸 때보다 훨씬 떨어져 있어 종이에 쓰는 것과는 느낌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플을 채취해 대비한 결과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글씨의 유사성도 높아지는 결과가 확인됐다. 두 번의 ‘본(本)’ 자는 자형이 다르고 느낌이 독특하다. 하지만 이 두 글자 모두 다산의 필첩 중 비슷한 용례가 확인됐다. 다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다른 글자들의 경우도 대부분 다산의 글씨체와 유사하다. 대조의 사례가 많아질수록 사발 지석의 글씨가 다산이 쓴 글씨일 수 있다는 개연성은 높아졌다.

사발 지석의 글씨를 다산이 썼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또 다른 근거도 있다.

정 교수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무덤이 조성된 때는 순교 후 약 1년이 지난 뒤다. 처음에는 가매장 상태로 모셨고, 약 1년 후 면례(緬禮, 무덤을 옮겨서 다시 장사를 지냄)했다. 사발 지석도 이때 함께 묻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지충과 권상연이 묻힌 장소는 유항검 집안 소유의 땅이었다”며 “당시 전주 교회의 지도자였던 유항검 형제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해 묻었다. 이에 따라 면례는 교회 차원의 행사로 준비돼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면례가 교회 차원의 행사로 준비돼 진행됐다면 사발 지석의 글씨를 다산이 썼을 개연성은 충분하다"며 "다산은 윤지충과 사촌 간이었고, 천주교로 입교시킨 장본인이었으며, 윤지충의 죽음에 대한 부채감까지 고려하면 자신의 글씨를 담은 지석으로 그와 영결코자 한 뜻을 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고작 44자의 샘플 비교만으로 이 글씨를 다산이 썼다고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샘플에서 뽑아서 비교했을 때 이 같은 유사도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고 말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비교했을 때 같은 '학(學)자'의 경우라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설명이다.

그는 "글씨는 나이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필기구가 붓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글자의 구성이나 필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이 글씨가 다산의 글씨일 경우 당시 윤지충, 권상연 묘소의 조성 과정과 의미에 대해 또 다른 의미와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