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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2003년 교구장 성탄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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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8-10-17 00:00 조회2,3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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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 같은 분이셨다……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14).

요한복음의 이 표현에 따르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쓰는 보통 말은 물론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본래는 그랬습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놀랍게도 보고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은 서간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 보았습니다”(1요한 1,1).

성탄 때만 되면 마굿간과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따뜻한 방이 아니고,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게 된 사정을 설명하는 성서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 2,6-7).태어나신 첫 순간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는 일생 동안 끊임없이 오해와 거부를 당하셨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처형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지금도 문밖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며 계속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들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요한 묵시록 3,20). 그렇기 때문에, 2천년 전뿐 아니라 지금도 중요한 것은 문을 열고 예수님을 안으로 모셔들이는 일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분을 안으로 받아모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우리 안에 가장 확실하게 모시는 방법 중의 하나는 그 말씀을 외워서 마음에 새기는 일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그런데 예수님의 표현에 따르면 말씀은 씨앗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라는 씨앗을 우리 마음에 뿌릴 때에도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듯 해야 합니다.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이렇게 말씀이 뿌려지는 곳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마음을 좋은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예수께서는 간단한 말씀으로 잘 설명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간다.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곧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 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닥쳐 오면 곧 넘어지고 만다. 또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마태 13,19-23).

2. 천주교뿐 아니라 개신교 여러 종파까지 포함하면, 이제 우리 나라도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의 비율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서양 대부분의 나라가 적어도 통계적으로는 국민의 절대 다수가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도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복음의 정신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얼마나 뿌리를 내렸는지 의심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그 정당성을 두고 세계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이라크 전쟁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올라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민주정부가 들어선지 오래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정치계의 부정부패가 또한 우리 마음을 우울하게 합니다.

이런 것들은 가장 눈에 띠는 현상에 불과하지만, 여기에서도 이미 우리는 신앙인들의 마음 속에 하느님 말씀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일에서 뿐 아니라 부부생활, 가정생활, 이웃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도 복음의 정신이 아직 파고 들어가 있지 않은 구석을 여기저기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우리가 꿈꾸던 삶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세상은 좀 더 평화롭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며 우리의 삶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 축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세상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그래서 그분이 주신 가르침을 기쁜 소식, 곧 복음이라고 합니다.

말씀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가정 그리고 우리 사회와 세상에 새로운 희망과 기쁨 그리고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