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4.04
20
메뉴 더보기

메시지

2014 부활메시지

페이지 정보

작성일14-03-12 00:00 조회3,404회 댓글0건

첨부파일

SNS 공유하기

본문

                          2014 부활대축일                              복음 선포

1.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습니다. 적군은 패망하였고 나라는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어서 나가십시오.” 6.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전주 감옥에 갇혀 있던 김현배 주교님, 김재덕 신부님, 이대권 신부님, 김종택 신부님은 어느 날 간수로부터 이 말을 듣고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기 않았지만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그리고 한 참 후에야 그것이 틀림없는 현실임을 깨달았습니다.

“전쟁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어서 나가십시오.” 일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적군은 어떻게 섬멸되었는지, 등등 장황한 ‘설명’이 아니라, 해방의 사실만을 그냥 알려주는 것. 그것이 ‘선포’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고 그것뿐입니다. 설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나중에 차분히 앉아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바빠서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들을 기회가 없어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오랏줄은 풀어졌고 몸은 이미 감옥에서 나와 자유롭게 되었고, 중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도 꼭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로 옛부터 예언자들이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하실 일을 나타나기 위해 써온 상징적 표현 가운데 하나가 감옥에 갇힌 이들을 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 야훼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 주고 너를 세워 인류와 계약을 맺으니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소경들의 눈을 열어 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 주어라”(이사 42,6-7).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의 증언(마태 28,1-10)에 따르면, 먼저 천사가 부덤을 찾아갔던 여자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 하고 알려라. 나는 이 말을 전하러 왔다.” 그리고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2.   12제자들을 비롯하여 지난 2천 년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케리그마,  이 복음을 세상에 선포해왔습니다. 그렇게 하여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거기에서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제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이는 말합니다. “자녀들은 다 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그들과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오셨다가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망시키시고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천사들을 보살펴 주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점에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롭고 진실한 대사제로서 하느님을 섬길 수가 있었고 따라서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다”(히브 2,14-18).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무덤에서 부활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으신 것처럼, 그분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낡은 인간을 벗어 버렸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었습니다”(골로 3,9-10).

3. 이런 일은 사도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그런 일은 계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로는 과거 어느 때 못지않게 자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히브리서의 증언은 오늘에 와서 거의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얽어 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 갑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지금은 하느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죄인들에게서 이렇듯 심한 미움을 받으시고도 참아 내신 그분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치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와 맞서 싸우면서 아직까지 피를 흘린 일은 없습니다”(히브 12,1-4).

4. 그런데 “죄와 맞서 싸우면서 피를 흘린” 분들이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에 많이 계심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분들 가운데 우리 교회 역사 초기에 첫 번째로 순교하신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님을 비롯한 124분의 신앙 선열들이 금년 8월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주례로 복자로 선언되실 것입니다. 이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뚜렷한 분은 이순이 누갈다 님입니다. 우리나라 순교사의 대가이신 다블뤼 주교님께서도 이분을 가리켜서 “한국 순교사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진주”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의 한 대표적 지성인은 이분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천주교라는 새로운 종교와 사상의 세례를 받은 이순이는 예전의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인간이었다. 새로운 인간형의 출현이었다. 당연히 그가 쓴 글도 종전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순이는 세상을 헌신짝처럼 보았다. 누구나 결국에는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죽을 때까지 연연하며 버리지 못하는 것이 삶이다. 그런 것을 이순이는 십대 어린 나이에 버리려고 결심했다. 물론 그 전에도 세상을 버리고 은둔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세상에 실망해서 은둔한 학자도 있고 세상은 원래 허망한 것이라서 버린 스님도 있었다. 하지만 이순이는 그런 은둔자와는 달랐다.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버렸지만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세상살이를 잘 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았다. 이순이에게 이 세상은 저 세상으로 잘 가기 위한 시험장에 불과했다. 저 세상으로 잘 가려면 이 세상의 시험을 잘 통과해야 하기에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고 세상에 크게 이바지하고 잘 죽기를 바랐다. 이순이가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또 막대한 유산의 상당 부분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연스런 성욕과 재물욕 마저도 극복하면서 세상을 더 잘 살다 죽기를 바란 것이다. 이런 자기 극복의 종점에 있는 것이 순교였다.
   옛날에도 충효의 덕목을 위해 육체적 고통을 기꺼이 감내한 충신과 효자가 있었지만, 이순이처럼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끊임없이 기뻐하고 감사한 인간은 없었다. 모든 일이 영광이고 은총이고 기쁨이고 감사인 사람은 없었다. (필자 추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그 아버지의 삶이나 얼굴에서 기쁨을 찾아볼 수 없어서 19세기 가장 극단적인 무신론자가 되어버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같은 사람의 눈에 바보로 보일 정도로 이순이와 같은 순교자의 목표의식은 뚜렷하고 강렬했다. 이처럼 강한 의지는 한국 역사에서 일찍이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정병설, 죽음을 이긴 신념,77-78쪽). 

5.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끊임없이 기뻐하고 감사한 인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당신의 첫 사도적 권고서 [복음의 기쁨]에서, 그 출발점이자 토대로 설정하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음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이런 기쁨을 체험한 신앙인은 그 자연스런 결과로 그 복음을 증언하게 됩니다. 보통은 그 증언이 살아가는 태도와 말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모양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때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과 물질을 나누는 것은 사도 시대(사도 2,42-46; 4,32-37) 이래 가장 자연스럽고 구체적인 행동이 됩니다.
   그런데 이순이는 정병설 교수의 말대로, “막대한 유산의 상당 부분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회정의나 사회복지 등은 관념조차 분명치 않았던 당시에 이순이는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고 그 당연한 결과로 여기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통찰하고 실천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비록 그런 생각을 실현하기 전에 재산뿐 아니라 목숨까지 바쳐 순교하는 바람에 그 기회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이사악을 바치려고 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시고 “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바쳤다’”(창세 22,12)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처럼, 그런 생각을 실천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서에서 ‘순교’라는 말과 ‘증거’ 혹은 ‘증언’라는 말이 실제로는 같은 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가 이순이와 같은 정신으로 살면서 복음을 ‘증거’한다면 우리도 그분과 다름없는 길을 가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6. 올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부부와 그 가족, 그리고 한국 천주교 역사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등 우리나라 교회 역사 초기의 순교자들이 복자위에 오르실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동정부부를 비롯한 그 가족의 유해를 지금의 위치로 옮겨 모신 지 꼭 100년이 되는 올 해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셔서 시복식을 거행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하여 이루어진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의 시복식으로 하여 치명자산에 누워계신 분들을 비롯한 우리나라 교회 역사 초기에 순교하신 분들이 세계적으로 새로운 각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톨릭교회 역사에 혜성처럼 나타나, 복음의 빛에 비추어 교회의 삶 전반을 다시 돌아보고, 사도적 권고서의 제목 그대로, ‘복음의 기쁨’을 재발견하게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과 맞물려, 오늘의 신앙인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이순이에게서 이 시대를 밝혀주는 찬란한 빛의 면모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