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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부활 메시지-부활과 총선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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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3-24 15:36 조회3,7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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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마음에 평안이 없으니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폭발할 듯 날카로워져갔습니다. 그런 상태로 창세기 연수 이튿날을 맞았습니다. 밤에 성사가 있을 거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날 오전 갈래 모임에서도 나눴지만 성사는 늘 제게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제 죄를 고백하는 건데 자꾸 신부님이 사람으로 보이고 의식이 되어서 제 말을 제가 스스로 거르고 다듬었거든요. 그날 신경은 온통 ‘성사를 봐야한다’는 것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제가 고백해야 할 것들을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잘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문을 외듯 계속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들어가 성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마음이 참 편안했습니다. 비로소 성사 하나를 제대로 본 것 같았습니다. 성사 후에 장소를 옮겨서 에페소서를 쓰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말씀이 너무 달았습니다. 종이의 활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졌고 너무 강렬하게 저를 빨아들였습니다. 순식간에 종이 양쪽을 채우고도 멈출 수가 없어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계속 성경을 읽었습니다.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서...창세기 연수를 오기 전, 한 장은 커녕 한 구절도 읽히지 않았던 말씀이 그날 밤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그렇게 다시 읽혔습니다. (...) 신데렐라 동화에 나오듯 ‘그래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영원히 행복했답니다’는 없습니다. ‘창세기 연수를 마치고 영원히 행복했답니다’도 없습니다. 현실은 어제도 오늘도 문제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이젠 정말 끝인 것만 같은 절망스러운 상황에서조차도 하느님을 바라보면 주저앉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 좌절하기보단 그 현실도 관통하고 있을 하느님의 역사와 섭리를 기대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2016년 2월 28일, 전주교구 청년성서 모임 미사에서 한 젊은이가 발표한 신앙체험 내용의 일부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3포 세대, 5포 세대라고 하더니 최근에 와서는 아예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로 n포 세대라고 한다지요. 과연 일자리가 없고, 있어도 보수가 적은 데다 안정성이 없으니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다는 아주 기본적인 꿈마저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만나 “현실은 어제도 오늘도 문제의 연속이지만 이젠 정말 끝인 것만 같은 절망스러운 상황에서조차도 하느님을 바라보면 주저앉지 않을 수 있고, 그런 현실도 관통하고 있을 하느님의 역사와 섭리를 기대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증언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청년들에게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이자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복음의 기쁨, 1항).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 말씀이 입증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신앙인들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여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존엄성과 품위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정치· 사회의 제도와 구조를 개선하는 일에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정치적 사랑”도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2. 그렇기 때문에 교황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놓인 상황을 걱정하십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이 때문에 비참한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있다는 기쁨이 자주 퇴색되고,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이 갈수록 결여되며, 폭력이 증가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 흔히 인간의 품위마저 버린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만이라도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제는 사람을 죽일 뿐입니다”([복음의 기쁨] 52-53항 중에서). 부자와 가난한 이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심하게 벌어지는 데서 생기는 이런 현실은 루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 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루가 16,19-21).

이런 사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저는 진실하고 효과적인 대화를 나누어 이 세상에서 악의 외양만아 아니라 그 깊은 뿌리까지 치유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정치는 흔히 폄하되기는 하지만, 공동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매우 숭고한 소명이고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사회와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진실로 마음 아파하는 정치인을 많이 보내주시라고 간청합니다. 정치와 금융계의 지도자들은 눈을 크게 뜨고 시야를 넓게 열어 사태를 직시하며, 모든 국민들이 합당한 일자리, 교육,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은 왜 정책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하느님께 영감을 청하지 않습니까? 저는 초월자를 향해 마음을 열면 정치 및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정신 자세가 되어, 경제와 사회의 공동선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헐어버릴 수 있게 된다고 확신합니다”(복음의 기쁨, 205항).

 

 

3. “초월자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도 “그 현실을 관통하고 있을 하느님의 역사와 섭리를 기대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만 현세 너머의 세계가 보입니다. 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면 부자가 현세에서 가난한 이들과 금을 긋고 관심 밖으로 쫓아내면, 내세에서는 자신이 그어놓은 그 금이 커다란 구렁텅이가 되어, 라자로가 거기에서 누리는 행복의 세계로 건너갈 수 없게 하는 장애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감각을 가지고, 저마다 자기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벗어나, 참으로 국민 모두,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몸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을 뽑기 위해서 후보들의 지난 삶을 알아보고 검증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좋은 정보도 얻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젠 정말 끝인 것만 같은 절망스러운 상황에서조차도 하느님을 바라보면” 다시 찾을 수 있는 희망의 문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직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은 최악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기가 처한 정신적·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어 선을 선택하고 새롭게 시작할 능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거기 깊숙이 숨어있는 불만족을 짚어내며, 참된 자유를 향해 새로운 길로 나아갈 능력이 있습니다. 그 어떠한 체제도, 진선미를 열망하는 우리의 마음, 혹은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당신의 은총에 응답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그 능력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이 존엄성을 잊지 말 것을 호소합니다. 아무도 이 존엄성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권리가 없습니다”(찬미 받으소서, 205항).

우리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1고린 15,19-20).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하고 말씀하시는 분을 믿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하면서도, 마음속 깊이에 참된 기쁨과 평화를 간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지구 행성을 위해 전개하는 투쟁과 어려움이 우리의 희망에서 오는 기쁨을 앗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노래하며 걸어갑시다.”(찬미받으소서, 245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