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4.04
20
메뉴 더보기

알림마당

공지사항

SNS 공유하기

홍보국[부활특집]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나의 부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4-17 15:59 조회4,944회 댓글0건

본문

'현재 삶'에 충실, '천국의 부활' 미리 사는 길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교는 태어날 수 없었다. 예수 부활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예수 부활 대축일은 교회에서 가장 큰 축일이자 가장 오래된 축일이다. 3세기까지만 해도 교회에는 부활 축일밖에 없었다. 부활의 의미를 짚어본다.
 

445015_1.1_titleImage_1.jpg
▲ '그리스도의 부활'(페테 파울 루벤스 작, 1612년).

 

예수 부활, 신앙의 신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일차적 증거는 먼저 예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이다. 빈 무덤이 부활의 직접적 증거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징표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또 부활한 예수는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났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사도, 엠마오의 제자 등이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가 5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타났다고 했다. 이처럼 예수 부활은 빈 무덤과 증인들 증언에 기초를 뒀다.

 

   부활한 예수는 시ㆍ공간을 넘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나타났다. 부활한 예수의 몸은 죽음의 사슬에서 벗어나 죽음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 속한다.

 그러나 예수가 부활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도 없고, 어떻게 부활했는지 아는 이도 없다. 부활한 예수가 시ㆍ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부활이 물리적ㆍ역사적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적 사건임을 알려준다. 초월적 사건이란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으로, 신앙의 신비에 속하는 것이다.

 예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과 행적이 참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하느님께서 확인해준 것이다. 예수는 부활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현존하는 존재로 탈바꿈했다. 역사적 인물이 초월적 존재가 됐다.

부활, 그리스도인의 희망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비춰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했다. 바오로는 예수가 부활했기에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한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가 된다.

 예수를 구세주로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자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 받아들인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온전히 따르는 이다. 그리스도인은 고통이 고통으로,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이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거두신 것처럼, 하느님은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 또한 거두신다는 것을 믿는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어떻게 거두실까.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죽으면 다음의 세 가지 상황 가운데 하나에 처하게 된다. △천국-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간직하고 죽거나 완전히 정화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산다 △연옥-하느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 △지옥-죽을 죄를 뉘우치지 않고 하느님을 결정적으로 거부한 사람은 영원한 벌을 받는다.

 이 같은 개별 심판(사심판)을 받은 인간은 종말이 오면,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면 모두 부활해 최후 심판(공심판)을 받는다. 이때 영광스럽게 된 의인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악인은 단죄를 받게 된다. 종말의 시기와 방법은 하느님만이 아신다.

 이를 좀 더 풀어보자. 인간은 죽어서 하느님을 만난다.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전 생애가 발가벗겨지는 것을 체험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적나라하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것이 심판이다.  

 

연옥은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과 하나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통감하며 후회와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대면하는 정화의 과정이다. 생전에 죄를 지은 것이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하느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상태가 연옥이다. 연옥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고 정화하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기대어 하느님과의 일치, 즉 천국을 희망한다. 교회는 연옥 영혼이 최후 심판 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천국, 곧 하느님 나라는 죽어서 복락을 누리는 어떤 곳이 아니다. 그보다는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룸으로써 누리는 충만한 기쁨의 상태다. 이것을 전통적으로 지복직관(至福直觀)이라고 불러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천국은 추상적 개념이나 구름 위에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인격적 관계이며, 현세에서도 성찬례와 자선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지옥은 사랑이신 하느님과 이웃을 거부한 인간이 절망과 악의 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흔히 지옥 형벌은 불로 묘사되는데, 이는 하느님을 거부한 인간이 겪는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상징한다.

 최후 심판, 즉 종말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일이기에 인간이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을 믿을 뿐이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다.

 천국이 죽은 다음에 갈 수 있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라고 한다면 천국에서의 부활은 이미 현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종말에 희망을 거는 그리스도인은 죽은 뒤 하느님을 만날 것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한 가운데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 이 희망은 그리스도인에게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끈다. 이 자리에서 부활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은 매일 일어나는 사건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