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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사목교서 - 우리 모두 복음선포자가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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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2천년 대희년 특별 사목교서>를 통해서 우리는 교구의 중장기 사목 방향을 설정하고, 그동안 여러모로 노력해 왔습니다. <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성령의 힘으로 실천합시다>하는 구호를 내걸고, 특히 <성서>, <전례>, <선교> 분야에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구할 우리의 사목 방향이 될 것입니다. 대희년 특별사목교서 발표 이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아볼 때, 미흡한 면이 많지만 몇 가지 점에서는 상당한 변화와 진전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 성서 분야에서 뚜렷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성서 공부 과정 가운데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여 열심히 노력해 오셨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성서를 필사하고 통독하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가정기도 때에 성서를 함께 읽고 묵상하는 사례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목을 담당하신 신부님들께서도 본당 신자들의 상황에 맞는 성서공부/묵상 방법을 찾고 개발하여 열심히 노력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월례묵상회를 통해서 사제들이 동료 신부님들과 같이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함께 함으로써,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서의 우의도 다지고, 사목상의 정보 교류와 협력을 위해서도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례 분야에 있어서도 성서봉독을 비롯해서 회중 전체가 성가를 함께 부르고 한 목소리로 기도함으로써 한 사람도 구경꾼으로만 남지 않고 전례 안에서 적극적인 한 몫을 담당하는 분위기가 점점 더 정착되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일정한 전례성가를 선택하여 신자들이 충분히 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오랫동안 같은 곡만을 사용함으로써 참석한 모든 이가 참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 분야에서는 사목자의 열정과 본당의 정황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여건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흔히 말하는 요즈음에도 놀랄만한 성과를 내는 곳이 여기저기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인 이 선교는 기회와 여건이 좋건 나쁘건 세상 끝날 때까지 열성을 다해서 추진해야 할 사명임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 천년기가 시작된 지도 상당히 지나, 교구 설정 70 주년이 될 2007년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런 노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큰 한 걸음을 내딛는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가톨릭센터의 신축을 시작하여 올 해 안으로 행정청사와 교구 사제관을 완성할 예정이며, 내년 말까지는 교육 문화관 건물도 짓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토대와 환경이 마련되면 우리는 더욱 체계적이고 활발한 사목 활동을 펼치고 일선 사목자들을 지원하는 일도 더욱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교구 역사에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성직자, 수도자, 교우 등 교구 내 하느님 백성 전체가 주님께서 주신 <예언직, 왕직, 사제직>을 새롭게 의식하고,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이를 수행하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참으로 풍부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들 하나 하나가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과 자질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나름대로의 모색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내셨습니다. 그리하여 미사 전례를 활기 있고 생생하게 거행하는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성체성사가 신앙인들과 사제 자신의 삶에서 실제적인 힘을 주는 은총의 샘이 되게 하시는 사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랜 세월 동안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만 살다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깨닫고,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수도자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죽음과도 같은 절망 속에서 헤매다가 복음 속에서 빛과 힘을 찾아내어 신념을 가지고 그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게 된 교우들이 늘고 있습니다.


런 일들이 더욱 널리 확산되어 모든 신부님들과 수도자, 교우들이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땅에 묻어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마태 25, 14-30 참조) 교회와 세상의 얼굴은 당장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변한 교회와 세상의 얼굴을 작은 단위로 체험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체성사, 곧 미사 전례입니다. 참석하고 있는 이들이 한 사람도 구경꾼으로 남아있지 않고, 기도와 성가를 한 목소리로 소리 높여 부르고, 여러 가지 다른 몫을 적극적으로 담당하는 등, 모두가 당당한 주역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새로 태어난 신앙 공동체의 구체적인 얼굴입니다.


앙인들이 함께 모여 공동으로 드리는 이런 전례 기도는 가톨릭 교회의 특징이며 신앙생활의 바탕이자 원천입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왜냐하면 사도직 활동의 목적이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가 한데 모여 교회 한 가운데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희생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의 만찬을 먹도록 하기 때문이다” (전례헌장 10항). 인간으로서 이미 그렇듯이, 신앙인으로서도 공동체를 떠나서는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런데, 인간이 공동체를 떠나서는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것만큼이나, 하느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그분께 자신의 깊은 마음을 펼쳐 보여드리고 자신의 언어로 그때 그 자리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은총을 청하는 일이 소홀히 될 때에도,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가끔 여럿이 한 자리에 모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정해진 기도로 주님께 우리의 소망을 표현하는 일이 중요한 것만큼이나, 숨을 쉬듯이 끊임없이 드리는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형식의 기도도 중요한 것입니다.


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이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말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례기도와 정해진 기도문을 주로 사용하다보니, 구체적인 상황에 맞추어 자신의 말로 자연스럽게 드리는 자유기도가 그만큼 익숙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간다”(사도 17,28)는 말씀이 말로만 남지 않고 실제로 우리 의식 속에 언제나 살아 있으면서 우리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자유기도가 우리 입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렇게 될 때, 성직자, 수도자, 교우 여러분으로 구성되어있는 하느님 백성 모두는 개인으로서도, “위에서 오는 능력”(루가 24, 49) 곧 성령에 접속되어 비로소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하느님 나라 건설에 자신의 몫을 다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바오로 사도가 골로사이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지녔던 꿈이 지금 우리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신앙인들이 세상에 떠도는 여러 가지 풍설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쓰신 바오로 사도의 편지는, 어쩌면 비슷한 상황 속에 놓인 우리에게도 큰 빛을 주며,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 각자가 어떤 각오와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인지를 밝혀줍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오로와 우리 형제 디모테오가 골로사이에 있는 성도들, 곧 성실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교우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고 그 때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모든 성도에게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해서 하늘에 마련해두신 축복에 대한 <희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희망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 들였을 때에 이미 들은 바 있습니다. 그 복음은 여러분에게 전해져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의 말씀을 듣고 그 참뜻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갔습니다. 사실 복음은 온 세계에서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 복음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우리의 사랑하는 동료 에바프라였습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실히 일한 일꾼이며, 여러분이 성령을 통해서 사랑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준 사람입니다.” (골로 1, 1-8)


기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직전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기억하게 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8-20)
하느님 백성 전체가 받은 이 사명은 교회 안에서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수행해야 할 일입니다.


런데, 앞에 인용한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서 우리는 복음선포 사명을 수행하는 각계 각층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보게 됩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도가 된 바오로, 그를 옆에서 돕는 디모테오, 그리고 골로사이 현지 출신으로 자기 지역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실제로 전한 에바프라가 나옵니다. 오늘의 교회 구조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사도의 뒤를 잇는 주교와 주교를 돕는 사제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교우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현세에서 믿음과 사랑과 희망이라는 세 기둥으로 떠받쳐지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자신이 찾아낸 새로운 세계, 곧 복음의 세계로 주변 사람들을 인도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에바프라를 눈여겨 보게 됩니다. 교회 구성원 가운데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환경 속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우는 오늘의 에바프라들입니다. 에바프라가 <참으로 바람직한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늘날 참으로 바람직한 신앙인 상을 우리가 이 인물에게서 찾는 것은 더욱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인용한 바오로 사도의 글 끝 부분은 각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 넣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복음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우리의 사랑하는 동료 0 0 0였습니다.”


4. “그런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신앙생활 한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신앙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다. 나는 남에게 신앙을 권할 만큼 잘 살지도 못한다...” 이 밖에도 우리는 수많은 이유를 들어 자신이 이 일에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서, 특히 복음은 사람들이 흔히 자격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반대라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들어 쓰시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의 말씀을 듣고 그 참뜻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갔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그 여인은 주님 말씀의 참 뜻을 깨닫는 순간 복음 선포자로 변하여 많은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는 것이 없다는 것도 별로 큰 결격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것보다 더 잘 배우는 방법은 없을 뿐 아니라, 우리 교구가 새로 채택한 교리서와 방법은 한 사람이 가르치고 다른 사람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발 앞서 신앙을 받아들인 쪽에서 조금 늦게 신앙을 찾는 이들을 동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비신자들을 위한 그 교재의 이름도 <함께 하는 여정>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보람있고 중요한지를 깨닫고 시간과 정성을 들일 각오만 되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물론 최소한의 교육은 요구되고 그것을 위해서 몇 번의 연수 과정은 거쳐야 하겠지만, 이 일의 의미로 볼 때, 그것은 결코 무거운 짐일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각자가 자신이 활동하여 초대한 예비신자들을 직접 동반하며 함께 이 과정을 거치고, 그 끝에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게 될 때에는 대부나 대모가 되어, 그 인연은 평생 동안 지속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얻은 형제자매는 어떤 혈연보다도 더 진하고 영원까지 지속되는 끈으로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보람있고 기쁜 일이겠습니까?


렇게 되면, 단순히 예비자 교육 방법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소공동체의 이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교회 전체의 모습이 크게 바뀔 것입니다. 교회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젊은이들도, 오늘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 한 삶을 온전히 희생하시고도 사회에서 그늘로 옮겨진 듯 쓸쓸한 삶을 살아가시는 노인들도,
신앙 공동체 속에서 새롭고 적극적인 역할과 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하느님 백성 하나 하나가 뚜렷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교회의 모습이 당장 새로워지고 활기가 넘칠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교 사명에 대한 주님의 말씀(마태 28장 18-20)을 인용하며, < 교회헌장>은 이렇게 천명합니다.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라는 그리스도의 이 장엄한 명령을 교회는 사도들에게서 받았으며, 땅 끝에 이르기까지
이 명령을 이행하여야 한다(사도 1,8 참조)... 성령의 재촉을 받아 교회는 그리스도를 온 세상 구원의 근원으로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실현되도록 협력하고 있다...그리스도의 제자는 누구나 다 제 나름대로 신앙을 전파할 책임을 지고 있다” (교회헌장 17항).



 

2005년 대림 제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이 병 호(빈첸시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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