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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예수부활대축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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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3-31 00:00 조회2,4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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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전해주는 이야기

 

 

- 당신은 누구신가요? 어쩌면 그렇게 화사하고 아름다운 날개를 지니게 되셨나요? 그 날개를 쫙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답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보면 저는 제 꼴이 새삼 더 불만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흉측스런 저를 보고 흠칫 놀라 도망칠 때면 그만 죽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저는 왜 이런 꼴로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소나무처럼 굳건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람쥐 같이 빠르지도 않고, 사자처럼 힘이 세지도 않으며,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주는 무당벌레처럼 예쁘지도 않으니, 나 같은 것이 왜 세상에 생겨났을까요? -

 

애벌레는 이런 고민거리를 부둥켜안고 살면서 신경증에 걸려 밥맛을 잃고 잠도 오지 않고 마침내는 극도의 열등감과 우울증에 걸려 죽기 직전에 정신과 의사인 나비를 찾아갔습니다. 앞의 사진은 그런 고민을 안고 찾아온 애벌레를 맞아 나비가 상담을 해 주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나비가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 애벌레야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리고 마음에 새겨라. 어떤 일이 있어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말이 거짓처럼 느껴질 때에도, 모든 일이 정 반대로 돌아가는 듯이 보일 때에도, 내가 하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내 말은 네가 참된 삶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가야 할 길이며 그 길을 밝혀주는 빛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너와 나의 이 만남은 네 일생에 가장 잊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옛날에 너와 똑같이 생긴 벌레가 있었단다. 그 친구도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주변의 다른 벌레들처럼 나뭇잎과 풀을 갉아먹으면서 별 생각 없이 자랐지. 그런데 몸이 어느 정도 커지고 눈이 밝아져 주변 세상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마음속에 지금 너와 같은 생각이 모락모락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울창한 숲을 이루는 거대한 나무, 아름다운 꽃, 마음껏 뛰어다니는 짐승,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며 자신의 몰골이 너무 비참하게 생각되었던 거지. “나는 왜 이렇게 흉측스런 모습일까? 이렇게 살다 죽는다면 한 때 세상에 태어나 살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런 의심과 한탄에 붙잡혀 그 친구도 먹는 음식이 소화가 안 되고 잠을 못자는 나날이 계속되었단다. 그러니까 몸은 쇠약해지고 기운은 떨어져서 일부러 죽지 않아도 숨이 끊어질 지경이 되었지.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갑자기 살갗이 천천히 굳어지며 너무 작은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단다. “아, 나는 이렇게 해서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한 참 시간이 지난 뒤에 보니 딱딱하게 된 껍질이 찢겨 떨어져 나가고 자신은 한 결 더 커져있는 있는 것을 발견했단다. 그 친구는 그 뒤에도 그런 일을 몇 번 더 겪었는데, 그 때마다 무섭고 아팠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았을 때에는 언제나 더 커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단다.

 

그런데 그렇게 여러 번 껍질을 벗으며 살아가는 동안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다가 매섭게 추운 겨울이 가까이 왔을 때, 그는 살갗뿐 아니라 온 몸이 마른 나무처럼 굳어지고 옥조여오는 것을 느꼈는데, 이번에는 전에 경험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무시무시하고 아픔은 혹독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정말 숨이 막히더니 마침내 정신을 완전히 잃고 말았단다. 그 기간도 며칠이 아니라, 늦가을부터 한겨울을 거쳐서 봄이 시작 되고도 한 참이나 지날 때까지였지. 그런데 따뜻한 햇빛을 받아 온 세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 그 빛깔과 향기가 천지를 뒤덮을 때가 되자, 그것들이 신비로운 소리가 되어 죽은 것 같았던 그 친구를 깨웠단다. 그래서 그 친구가 껍질을 깨고 나와 보니 대자연이 펼쳐놓은 생명의 잔치가 벌어져 있었지. 그리고 놀랍게도 자기의 흉측했던 옛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몸에서 예쁜 날개가 나와 여왕처럼 아름다운 호랑나비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 친구는 너무나 놀라고 기뻐하며 날개를 쭉 펼쳐서 그렇게도 올라가고 싶어했던 하늘을 향해 가볍게 솟아올랐단다.

 

여기까지 듣고 있던 애벌레가 나비에게 말했습니다.

-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 제 몸에 난 검은 색, 흰색, 노란 색 줄무늬, 그리고 주름살 깊이에 숨어 있어서 움직일 때에만 힐끗 보이는 붉은 반점 등을 보고, 모두들 징그럽다며 도망가는데, 그런 제가 어떻게 그토록 아름답고 날렵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것은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저 둘러대는 거짓말이에요. -

 

나비가 다시 말했습니다.

-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나도 너만 한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는 나비가 되지 못하고 그냥 애벌레로 죽는 것들이 있단다. 그러니까 너도 내 말을 믿거나 말거나 그 어느 쪽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거야. 믿지 않기로 고집하는 친구에게는 나도 어떻게 도와줄 길이 없단다. 그런데, 손해 보는 셈치고, 믿기로 하는 친구에게는 도울 수 있는 길이 아주 많지. 우선 이 한 가지만 알려줄께.

 

너는 여러 가지 색깔로 뒤덮여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주 흉측하게 보인다고 말했지? 그런데 잘 살펴보렴. 네가 아름답고 날렵하다며 부러워하는 내 날개에 있는 무늬와 색깔은 모두 네 몸에도 그대로 있는 것들이야. 그런데도 네 몸에 있을 때는 징그럽게 보이던 것이 내 날개에서는 아름답게 보이지. 이 요술 같은 변화가 어디서 오는지 말해줄까? 그건 아주 간단해. 자신 안에 웅크리고 있으면 징그럽게 보이고, 쫙 펼치면 아름답게 보이지. 자기 안에 모두 움켜쥐고 있으면 몸이 무거워 땅을 기어다닐 수 밖에 없고, 그것을 버리면 몸이 가벼워져서 하늘을 날게 되지. 지금 네 몸과 내 몸을 비교해 보아라. 몸뚱이로 말하자면, 네가 나 보다 50 배는 더 무거울 거다.

 

또 한 가지 비밀을 말해 줄게. “옛날에 너와 똑같이 생긴 벌레가 있었단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었지? 그런데 말이야, 그것은 바로 내 이야기란다. 내가 바로 그 애벌레였어. 그 해 겨울이 오고 있던 어느 날, 내 몸이 갑자기 굳어져 오더니 나는 땅덩이에 눌리는 것처럼 답답함을 느꼈지. 그리고 다음 순간, 온몸이 통째로 부서져 가루가 되는 듯한 아픔을 느끼다가 결국 죽고 말았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때 나는 의식을 완전히 잃었던 거야. 그런 다음 따뜻한 햇빛을 받아 부드러워진 바람과 꽃 향기가 찾아와 나를 감싸고 춤추며 빙글빙글 도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 보니, 내가 작은 번데기 속에 누워있는 거야. 그래서 그것을 찢고 밖에 나와 보니 내 몸에 아름다운 날개가 달려 있었지. 그걸 펴서 움직여 보았더니 내 몸이 가볍게 뜨고 하늘을 날게 되었어. 저 넓고 확 트인 하늘을 한 번 날아보고 나면, 자유와 기쁨이 무엇인지, 솟구쳐 오르는 생명의 춤이란 어떤 것인지, 내가 진정 누구인지를 알게 된단다. 너도 본래는 알에서 나왔고 그 알은 하늘을 나는 나비에게서 나왔단다. 그래서 네 안에는 하늘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있고, 거기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마음속이 어쩐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하늘을 한 번 날아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알게 돼. -

 

“왜 태어났는데요?”

 

애벌레가 묻자 나비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 우리는 사람들에게 삶의 비밀을 알려줄 사명을 띠고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지.-

애벌레가 또 묻고 싶어 하는 눈치를 채고, 나비가 계속 설명했습니다.

- 애벌레들이 흉측한 제 모습을 보고 그것이 자기라고 생각하듯이, 사람들은 흔히 땅에 붙어 사는 그 모습이 자기네 팔자며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그들의 고향은 땅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것을 깨우쳐 줄 사명을 띠고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거야.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으니 우리는 말하자면 움직이는 글자인 셈이지. -

 

“하늘 이야기라면 우리보다 훨씬 높이 또 멀리 나는 새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하나요?” 또 끼어든 애벌레의 질문에 잠깐 생각에 잠겼던 나비가 말했습니다.

 

- 새는 처음부터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이 태어나는 인간들은 새를 보고는 부러워만 할 뿐, 자기들이 새처럼 날 수 있다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해.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기네처럼, 아니 자기네보다 훨씬 흉측한 모습을 하고 굼뜨게 움직이던 애벌레가 어느 날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하늘을 나는 나비로 변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네 운명에 대해서 마치 글을 읽는 것처럼 분명히 깨닫게 되지. 중국에 장자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 사람도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런 깨달음을 얻었지. 하늘을 나는 나비를 보고 땅에 묶여 사는 자신이 새삼 너무나 답답하다고 느끼며 잠에 들었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꾸었지. 그런데 그 꿈에서 깨어난 뒤부터 그는 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단다.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본래는 나비였는데 지금 장자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지. 장자는 그 의문 속에서 살다 삶을 마쳤지만, 그는 적어도 우리 나비 덕분에, 땅에 달라붙어 사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란다.

 

그 뒤에 정말 하늘에서 오신 분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 하늘나라에 관해서 말해주고 그들을 거기로 데려가기 위해서 무진 애를 쓰셨단다. 그런데 네가 내 이야기를 듣고도 선뜻 믿으려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단다. 하도 답답해서 그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지. “너희는 내가 이 세상 일을 말하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 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요한 3,12-13).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요한 8,23).

그분이 세상을 떠나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시간이 될 때까지, 특별히 뽑아서 가르치신 제자들마저 그분을 믿지 않았단다. 그분이 흉측한 죄인 취급을 받으며 가장 끔찍스런 모습으로 죽어갈 때, 제자들은 모두 그분을 떠나 흩어져버리고 말았지. 그런데 바로 그 전날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시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요한 16,12-13).

 

과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 사람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힘인 성령을 받았을 때, 제자들은 모든 것을 제대로 깨닫게 되었단다. 결국 자신들이 벌레로 살다가 말 존재가 아니고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와 동시에 수수께끼 같고, 알다가도 모를 것 같던 예수님의 말씀과 보여주신 일들의 의미가 환하게 드러났단다. 바오로라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 깨달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내세울만한 인물이란다. 온 천지가 무너지고 자신은 죽는 것 같은 경험을 통해 성령의 빛과 힘을 받아서, 만사를 제대로 보게 된 그는, 자기의 그 깨달음을 여러 편의 글로 남겼는데, 어디에서나 결국에는 같은 말을 하고 있지. 그는 애벌레의 삶을 떨쳐 버리고 나비가 되어 사는 삶의 기쁨에 비하면 애벌레 시절에는 산 것도 아니며, 단 하루를 살더라도 모든 속박과 짓눌림으로부터 벗어나 하늘을 나는 나비로서 사는 삶이야말로 참 삶이라고 외쳤단다.

예를 들면, 이런 말도 했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여 주십니다”(필립 3,8-14).

 

부활대축일은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애벌레 같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딸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일을 꿈꾸며 자기 안에 날개가 자라고 있음을 새롭게 깨닫는 날이란다. 그것을 깨달으면 지금부터 벌써 반쯤은 하늘을 날게 되지. 그렇게 해서 “한 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신”(히브 2,15) 그분께 감사하며, 이 땅에서 겪는 온갖 어려움도 “우리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겪는 진통”임을 깨달아, “희망으로 구원을 받은”(로마 8, 23-24) 사람답게, 기쁨 속에서 사는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