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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정이> 40주년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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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2-12-17 00:00 조회2,8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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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정이가 40주년을 맞이했으니 우리 교구 75년 역사의 절반도 넘는 세월을 함께하며 교구의 삶을 증언해 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세월이면, 경제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했다 가장 잘 산다는 나라에 끼어든 시간에 해당하고, 정치적으로는 독재 정권의 멍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리며 전개해 온 수많은 투쟁에 해당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적으로는 가톨릭 교회의 정신과 얼굴을 바꿔놓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기점으로 해서, 새로운 역사를 써온 세월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이 마지막 관점이 제일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의회 이전에 성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이 아니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몰고 온 변화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제일 드러나게 달라진 것만 보아도, 사제가 한국말로, 신자들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서서, 미사를 드린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해서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성서가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 또한 이전과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달라졌습니다. 사제와 교우들의 관계, 교회 운영, 신자들의 의식 등, 모든 분야에서 얼마나 크게 바뀌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의식조차 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숲정이는 이 모든 변화를 그대로 지켜보며 거울처럼 그것을 반영해 왔습니다. 소박하면서도 충실하고 끈질긴 모습으로 이 역사를 함께 해 온 것입니다. 우리가 크게 의식하지 않고 만들어가는 역사가 이 작은 증인에 어떤 모양으로든 실려 후대에 오래 남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사소한 듯한 활동과 삶이 새삼 엄숙한 무게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과거의 역사는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쓰기가 불가능하고, 현재의 역사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쓰기가 불가능하다.” 샤를르 뻬기라는 프랑스 시인이 한 이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우리는 역사를 쓴다는 생각이 전혀 없이 이러저런 일들을 글로 적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것이 역사가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어찌 공동체의 역사 만이겠습니까? 우리 개인의 삶도 별다른 의식 없이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대처하기에 바쁜 처지에서 임기응변처럼 때워온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여 돌이킬 수 없는 내 역사를 이루어간다고 생각하면, 흘러가는 세월 앞에 새삼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사실을 감안해서 세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그 동안 교구를 위해서 알게 모르게, 손발로, 기도로 협력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술정이를 위해서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수고해 오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함께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앞으로도 숲정이는 지금까지와 같은 역할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앞으로도 여전히, 그것은 이름을 남기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생명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구와 교구민 한 분 한 분 안에 그분이 함께 하시면서 언제나 필요한 빛과 힘을 풍성히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