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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성탄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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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1-07 00:00 조회2,6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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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성탄 메시지

저 위 하늘에서 이 아래 땅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생겨라” 하고 말씀하실 때마다 곧 만들어졌습니다. 창세기 1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다.”(요한 1,14)고 요한은 증언합니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말씀이 살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습니다.”

이 칙칙한 땅에 사는 일에 지친 사람들은 저 파란 하늘을 우러러보며 무한한 자유와 행복을 꿈꿉니다. 이 아래 세상에서 온갖 폭력과 불의, 삶의 무게에 시달리고 상처가 깊을수록 사람은 저 위, 빛과 자유, 그리고 정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나라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옛부터 대부분의 종교는 땅보다는 하늘, 현세보다는 내세, 유한보다는 무한, 육체보다는 정신, 내재보다는 초월, 듣고 보고 만질 수 있는 물질보다는 오관으로 감지할 수 없는 영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위를 쳐다보면서 하늘을 향한 그리움을 향수병처럼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본 자리인 하느님은 거꾸로 이 아래, 땅, 현세, 유한, 육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물질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과 함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 보았습니다”(1요한 1,1).

창조의 힘, 영원한 진리, 빛, 생명이 이렇게 가까이 오니, 그 반대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였습니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가 더 짙어지듯, 파괴의 힘, 거짓의 아비, 어두움, 죽음의 세력은 그 본색을 더욱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이 두 진영 사이의 충돌이 극에 이를 것을 예감하신 예수께서는, 함께 가자는 형제들의 제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아무 때나 상관없지만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세상이 너희는 미워할 수 없지만 나는 미워하고 있다. 세상이 하는 짓이 악해서 내가 그것을 들추어내기 때문이다”(요한 7,6-7).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국 예루살렘으로 가셨고, 예견하셨던 대로 악의 세력에 잡혀 십자가형을 받아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하늘에 그대로 계셨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늘에 계셨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은 예수의 죽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을 묻었던 무덤이 뜻밖에 열린 것입니다. 그분은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고, 미리 약속하셨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그 힘, 곧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나”(골로 1,14)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골로 1,18)라는 바오로 사도의 선언과 같이, 그분에게서 모든 것, 곧 천지가 다시 시작되고, 죽음이 정복되었으며, 그분은 이제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만물, 곧 하늘과 땅의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무엇보다 인간을 죄의 속박에서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분 자신이 죽음을 당하고 지옥에까지 내려가시는 대가를 치르고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런 그리스도를 따라 똑 같은 길을 걸으며 세상, 물질세계, 인간사회, 온갖 정치현실 속에 끼어 있는 죽음, 어둠, 거짓, 죄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새로운 세상, 하느님께서 꿈꾸셨던 현실을 일구어내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합니다. 부패에 소금이 되고, 어둠에 빛이 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정치’란 본래 여러 사람이 모여 조화롭게 사는 기술을 의미하기 때문에, 두 사람만 모여도 정치는 시작됩니다. 그런 뜻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대로, 종교인이 참으로 인간적이거나 종교적인 가치를 말하다 보면 정치적 결과가 나오기 마련입니다(프란치스코, 천국과 지상, 186쪽 참조).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종교인들에게 ‘제의실’에서 나오지 말고 성전에서 하늘을 향해 기도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느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세상의 온갖 어두움과 맞서 싸우시고, 죽음을 통해 승리를 거두시고, 제자들을 통해 그 일을 계속해 오신 지가 2천 년이 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하느님과 정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종교인들에게 충고(?)하는 형국입니다. 예나 이제나 어둠에는 빛이, 거짓에는 진실이 불편하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리스도교가 있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 존재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이 새로운 세상, 그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두가 죄, 거짓, 어두움, 속박, 죽음의 세력에서 풀려나와 참된 행복과 자유의 나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이 나라를 맛 본 사람은 그것을 남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 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1요한 1,3). 그렇게 되면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기쁨 못지않게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기쁨도 완전해집니다.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냅니다”(1요한 1,4).

그런데 이 기쁨, 이 평화는 이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고 그것을 얻기 위한 방법도 같지 않습니다. 그것이 기쁨이라면, 산고를 거쳐서 새 생명을 얻는 엄마와 같이 고통(요한 16,21 참조)을 겪어내야만 얻을 수 있고, 그것이 평화라면 분열의 고통(루가 12,51-52 참조)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버림받고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살고 있는 인간이 지구상에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는 한, 오늘의 현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문밖에 서서 닫힌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들어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될 것이다”(묵시 3,20).

국가 공동체, 나아가 인류 전체가 마음의 문을 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을 기꺼이 모시어, 그분과 더불어 모두가 함께 잔치를 벌이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빛과 힘을 청합시다. 그리하여 남과 북이 한 형제로서 서로 얼싸 안고, 우주 공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지구-배를 함께 타고 있는 인류가 한 가족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세상을 향해 각자 자기 몫을 다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