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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교구장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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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비에르 작성일17-04-13 14:18 조회2,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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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

이미 싹이 돋았는데, 그것이 보이지 않느냐? - 이사 43,19 -

 

 

1. 봄이 왔습니다. 냇가에 버들강아지가 돋아났습니다. 여기저기 꽃도 피었습니다. 얼었던 시냇물도 반짝이며 흐릅니다. 죽음의 계절, 혹독한 추위에 얼었던 땅이 녹고 모든 것이 되살아나는 대자연은 그대로가 죽음을 이긴 부활의 노래입니다. 열 번, 백 번을 보아도 감동은 늘 처음처럼 생생하고 신비롭습니다. 네 계절이 뚜렷하고, 특히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부활 대축일을 맞는 땅에 태어났다는 것이 새삼 감격스럽고 감사합니다.

대한민국도 봄을 맞이했습니다. 모두가 어둡고 춥고 얼어붙었던 밤이 거의 새어, 밝고 따뜻하고 모든 것이 되살아나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마음에 새 희망이 싹트고, 따뜻한 기운이 온 국민의 마음과 마음 사이를 이어주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화려한 장미뿐 아니라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보아야만 눈에 띠는 작은 꽃, 낙낙장송 뿐 아니라, 거기 기생해서 살아가는 작은 덩굴.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돕고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가듯이,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같지 않은 사람들이 어울려, 서로를 보충하고, 그 다름에 감사하며 함께 춤추는 세상을 그립니다.

그러나 두렵기도 합니다. 꿈은 그냥 꿈일 뿐, 현실에서는 빛보다는 어둠이, 따뜻함 보다는 추위가, 화합보다는 다툼이 먼저 눈에 띠고 피부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꿈은 어린이들에게나 있는 것. 어른이 되면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그 앞에서 꿈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모든 희망을 쓸어가는 현실 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고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인간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어린 시절은 끝난다.” 이것이 현실임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인류 역사 최대의 건축물인 피라미드를 쌓은 파라오도, 중국 최초의 황제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진시황도 한낱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불과합니다.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강 앞에서는 누구나 두려워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여기에 예외가 딱 하나 있습니다. 이를 두고 현대의 대표적 지성인 가운데 하나는 외쳤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우리에게서 훔쳐 간 ‘희망’을 지금까지 장물贓物로 간직하고 있는 그리스도 신자들이여, 이제 그것을 우리에게 돌려주어라. 예수의 삶과 죽음은 우리의 재산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로제 가로디). 이 사람의 주장대로, 죽음을 이겨낸 예수의 부활은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을 향한 꿈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희망이 살아있지 않으면 사람은 정신에 병이 들고 맙니다. 세상의 권력, 재산, 명예가 아무리 하늘을 찌를 듯해도, 그 모든 것들은 아침 이슬, 나른한 봄날의 헛된 망상일 뿐임을 마음속 깊이에서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나라 국민은 그것을 철저히 보고, 깊이 느끼며, 몸서리치게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어떤 개인적 신념이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벗어나고, 그것이 종교의 색깔마저 띨 때, 얼마나 심하게 길을 잃을 수 있는지도 분명히 보았습니다. 새가 두 날개로 날듯이, 종교도 이성과 사랑이라는 두 날개가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에만 개인과 공동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성은 지도요 사랑은 힘입니다. 이성은 핸들이며 사랑은 동력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신 ‘말씀’ 곧 이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바로 앞두셨을 때, ‘사랑’ 곧 힘이신 성령을 약속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16,12-13).

 

 

2.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 입양되고, 돈이 없어서 대학을 반년 만에 중퇴한 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 시대의 한 사람은, 2005년 6월 12일 한 대학의 졸업식에 초대되어,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디기 직전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제가 17살이 되었을 때, 대략 이런 식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살면, 어느 날엔가는 그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 때 이후 지난 33년 동안 저의 정신 속에 늘 살아 있었습니다. 저는 자고 나서 세수하고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계획했던 일을 그대로 밀고 갈 것인가?” 여러 날 계속해서 ‘아니다!’라는 답이 나오면, 나는 계획을 바꾸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제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저를 실질적으로 도와준 제일 훌륭한 길잡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거는 기대, 온갖 자만심. 여러 종류의 당혹감 혹은 실패 등, 거의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 참으로 본질적인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생각에 덫처럼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알몸입니다. 마음속 깊이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죽어야만 거기 갈 수 있다면, 죽기는 싫어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가 언젠가는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것을 피해 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은 생명이 만들어낸 최고의 단일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생명을 변화시키는 촉매입니다. 죽음은 묵은 것을 치우고 새것이 들어설 여지를 만듭니다. 지금은 새것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러나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분은 서서히 늙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이 세상에서 치워질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사노라고 여러분 자신의 삶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배고픈 사람으로 머무십시오. 끝까지 바보로 남아 있으십시오.”

 

 

3.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입니다. 렌즈가 햇빛을 한 점에 모아 불이 타오르게 하듯이, 죽음에 대한 의식은 사람의 능력을 ‘지금 여기’로 모아 놀라운 일을 하게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일 죽음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정신과 힘을 그 하루에 온전히 쏟아 부을 수가 있었고, 그 결과의 하나가 ‘아이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바깥> 삶의 방식을 바꿔놓은 이 놀라운 기계의 발명자로서보다, <안>에서 그를 지켜준 정신을 보여준 이 연설 때문에, 인류의 기억 속에 더 오래 살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