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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0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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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8-20 09:04 조회1,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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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올해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가 나온 지 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찬미받으소서」는 호혜와 우애 안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공동의 집’이 전 세계적인 환경 위기 속에 어떤 위험과 도전 앞에 서 있는지를 엄정하게 살펴보도록 초대하였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나가야 할 새로운 방향과 삶의 방식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우리 누이요 어머니인 지구는 곳곳에서 더욱 심하게 훼손되어 왔습니다. 인류 전체를 공포와 위협으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대유행은 생태계 손상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감염증은, 사람이 살지 않던 지역을 개발하고 과도하게 도시화와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생태계 변화가 주요 원인입니다. 그 결과 오지에 조용히 숨어 지내던 바이러스들이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탓에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동물들을 매개로 빠르게 우리 인간의 생활권으로 접근하였고, 교통 시스템의 발달과 교역의 세계화로 폭발적인 증식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맹목적 이윤 추구와 무분별한 개발은 생태계 전체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이 불가능하게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는 “기술-경제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권력 구조”와 그에 순응하는 ‘정치 지도력’이 투기와 경제적 수익 추구를 앞세우는 세계 체제(53항과 56항 참조)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 존엄과 자연환경의 가치를 돌아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경제와 기술과 정치의 동맹은 인류가 공동으로 상속한 자연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게 하여 공동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가장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주변으로 밀어내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 줍니다.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노력의 척도는 가난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완화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14일 우리 정부가 제시한 ‘한국판 그린 뉴딜’ 정책은 큰 우려를 안겨 줍니다. 이 정책 어디에도 ‘2030년 탄소 배출 50퍼센트 감축, 2050년 배출 제로’를 목표로 한 국제적 합의를 실천하려는 계획이나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우리 정부는 아직 해외 석탄 발전소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 붙여 살고 있는 지구 환경은 시장의 힘으로 적절하게 보호하거나 증진시킬 수 있는 재화가 아니라, 고유의 탄생과 성장과 생존의 유기적 구조를 갖춘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는 한 번 파괴되면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그린 뉴딜’에는 지구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과 존중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에너지와 환경 정책을 상품으로 삼아 경제적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녹색 성장 중심주의만 있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의 위험은 개인의 선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일상의 생활 방식은 물론, 사회와 경제 구조의 ‘근본적인 전환’ 없이 녹색으로 포장한 개발이 성공한들, 생태계가 회복되거나,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른바 환경친화적인 개발과 성장의 혜택을 받으며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을 계속 유지하면서 ‘근본적인 전환’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인 전환’은 자본과 생명, 성장과 탈성장 사이에서 수행하는 결단이며 선택입니다. 이는 또한 생태 환경의 파괴에서 발생한 부담을 취약한 계층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이며, 에너지와 기후 정책에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민주적인 전환’입니다.

자연과 세계, 환경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는 폐쇄된 질서 속에 제각기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서로 깊게 연결되어 묶여 있고, 서로 기대어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생태적 회심’은 “우리가 다른 피조물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놀라울 정도로 포괄적인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사랑에 넘치는 이해”(「찬미받으소서」, 220항)를 통하여 하느님과 동료 인간 그리고 자연 세계를 다시 만나고, 우리 삶에서 경탄과 기쁨을 찾는 일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생태 환경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남용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각성입니다. 인간의 삶은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 안에서 온전하고 통합된 삶의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 공동체,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염려는 생태 세계를 보살피는 것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찬미받으소서」, 139항 참조).

그러므로 우리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한 자각과 쇄신 없이는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생태 위기와 불평등의 현실에 무관심하고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모든 불의한 제도와 권력에 ‘저항하는 용기’ 없이는 어떤 쇄신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성스러운 분노”(주교대의원회의 범아마존 특별회의 의안집, 41항) 없이 교회는 어떤 희망도 세상에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5월 24일부터 한 해를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로 지내며, 우리가 직면한 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찬미받으소서」의 가르침과 제안을 수용하여 진지한 회심을 이루고 강인한 연대로 변화와 쇄신을 실현해 나간다면 ‘우리 공동의 집’을 살릴 기회는 아직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020년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강 우 일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