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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제37회 청소년 주일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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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5-27 10:22 조회6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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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37회 청소년 주일 담화

“젊은이가 무엇으로 제 길을 깨끗이 보존하겠습니까?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시편 119[118],9)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청소년 주일이자 주님 승천 대축일인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강복하셨던 주님의 축복’(루카 24,50 참조)이 청소년 여러분에게도 충만히 내리기를 빕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

세계 각지에는 지금도 너무도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과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습니다. 그동안 학교나 성당 밖의 친교 모임 등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없었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말미암은 보건 위기는 젊은 여러분에게도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몇 가지 미덕도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세상 곳곳에서 젊은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구조하는 데 도움을 주고, 희망의 씨앗을 심으며, 자유와 정의를 지키고, 평화의 일꾼이자 다리를 놓는 사람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젊은이 여러분이 가진 잠재력은 엄청나며, 여러분이 마음에 지닌 힘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교황 프란치스코, 제36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2021.11.21.).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로마 12,2)

지금 우리 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성(性)에 대한 왜곡은 더욱 교묘해지고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상 공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란물과 같은 문제들은 인간의 성에 대한 여러분의 인식을 ‘성의 도구화, 상품화, 폭력화’ 등으로 왜곡시키고 있습니다(「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90항 참조).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교육이 성의 오남용 예방 차원에 방향을 맞추다 보니 현실의 성교육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몸이 가진 심오한 의미와 존중에 대한 교육 없이 청소년에게 임신과 출산과 양육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하고, 피임 도구의 사용을 부추기고는 합니다. 진정한 성교육은 성의 오남용이나 피임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인격에 대한 전인적 이해를 바탕으로 혼인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사랑과 그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한다면 자신의 성을 자기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세속적인 행복 추구의 권리로서만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성의 폭넓은 의미를 심각하게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성은 단순히 쾌락을 동반한 생물학적인 본능 이상의 의미를 지닌 폭넓은 인격 형성의 근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성은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이고, 또한 그가 다른 이와 소통하고 인간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며 실천하는 방식”(「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4항)이요, 무엇보다도 “성은 남녀의 부부애를 위해 있는 것”(『가톨릭 교회 교리서』,  2360항)입니다. 그러므로 성적 결합은 ‘진리 안의 사랑’(1요한 3,18 참조)으로 평생 헌신하겠다는 혼인 서약을 통해서만 허용되고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우리 청소년들은 ‘사랑과 성’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젠더 이데올로기’에서 야기된 도전과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젠더에 대한 개념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남녀 관계의 상호성과 보완성 그리고 성의 출산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이 자신의 성적 성향을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각 개인은 자신의 생물학적인 성을 의학의 힘을 빌려 다른 젠더로 전환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젠더를 선택할 권리와 더불어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결합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창조 때에 남성과 여성의 이원성이 미리 안배되지 않았다면, 가정도 더 이상 창조로 예정된 실재가 아닐 것이요, 마찬가지로 그 자녀도 자신의 보금자리와 존엄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청에서 한 연설, 2012.12.21.). 그렇다면 우리 또한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습니다(창세 1,27 참조). 창세기의 이 말씀에는 창조의 본질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생명을 주는 남녀 관계의 본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아와 타아는 저마다 지니는 특별한 정체성에 따라 서로를 완전하게 해 주며, 서로의 만남 안에서 창조주께서 주신 역동적인 상호성이 이루어짐’(「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31항 참조)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청소년 여러분!
우리 사회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남녀 차별 문화의 많은 잔재는 하루속히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인간은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시기의 성에 대한 호기심과 분출하는 에너지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의 인간 몸과 인격에 대한 깊은 존중을 배우는 자극제가 되며, 남녀가 동등하게 소중한 존재임을 배우고, 소수의 성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도 존중하며, 하느님의 피조물이자 저마다 하느님의 성전(聖殿)인 인간을 깊이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에너지가 넘치는 여러분 삶의 여정에 성모님의 특별한 전구로 주님의 크신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22년 5월 29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정 순 택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