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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우리들 발이 돼주면 안 되겠니[가톨릭신문 201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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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4-16 조회 22,0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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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조금만 더 우리들 발이 돼주면 안 되겠니…”

발행일2018-03-18 [제3086호, 22면]

저희 공소는 시골의 조그마한 성당입니다. 지붕에는 십자가가 서 있고 앞마당에는 성모님이 인자롭게 서 계신 그런 곳입니다.

근처에 거주하시는 신자분들이 고령인데다 본당까지의 거리가 멀기에 주일이면 신부님이 직접 운전을 해 신자들을 태워 주십니다. 여느 일요일처럼 미사가 끝나고 신자분들이 돌아가신 후 따뜻한 양지에 세워둔 승합차를 수건으로 닦으며 승합차와 얘기를 나눠봅니다.

지역축제에서 먹거리 장사를 해 얻은 수익금에 십시일반 돈을 모아 18년 전 이 승합차를 구입했었습니다. 차량을 축복하고 신자들은 너도 나도 좋아서 승합차를 쓰다듬으며 즐거워했지요.

그날부터 승합차는 연로하신 어르신들과 몸이 불편하신 신자분들을 모시고 본당 미사는 물론이고 성지순례며 각종 성당의 행사 및 교우들의 병문안 등 필요할 때마다 우리들의 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공소회장인 제가 57세 때에 이 차를 구입했고, 지금 제 나이 75세가 되었습니다. 신자들과 함께한 세월 18년…. 젊은 회장이 새로 나와 제 뒤를 잇고, 새 차량이 나와 이 승합차의 뒤를 이으며 미래를 기약해야 하는데 당장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손수레를 끌고 와 주님 앞에 매달리는 이 힘없는 양들에게, 늙은 공소회장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그토록 정 들었던 승합차마저 수명을 다해 우리의 곁을 떠나려 합니다. 그동안의 모든 희로애락이 떠오릅니다.

정성껏 걸레질을 해주며 아쉬운 마음에 속삭여 봅니다. “조금만이라도 더…, 이 양반들의 발이 돼주면 안 되겠니? 많이 힘들겠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양들의 발이 되어 움직여준 승합차의 고마움을 이제야 새삼 느낍니다.

20여 년을 함께한 승합차, 언제나 주님의 부름에 ‘네, 저 여기 있습니다’라고 달려와 준 승합차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겨울, 성당 앞뜰에 있는 승합차를 보고 서 있자니 유리창에 햇볕이 반사되며 저에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모든 게 주님의 뜻입니다….’

살짝 찌그러진 차 위로 손을 올려봅니다. 부딪치고 찌그러져도 불평 없이 움직여준 너에게, 주님의 은총이 내리길 바란다….

김동만(마지아·전주교구 임실본당 관촌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