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4.04
19
메뉴 더보기

교구

보도자료 - 가톨릭평화신문 목록

SNS 공유하기

노인 요양원, 죽음행 종착역 아닌 천국행 출발역[가톨릭평화신문 2019-03-24]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9-04-01 조회 2,299회

본문

노인 요양원, 죽음행 종착역 아닌 천국행 출발역

사순 기획 - 전주교구 사회복지법인 ‘빈첸시오의 집’ 신경옥(율리아나) 원장

  •             
748810_1.1_image_2.jpg
▲ 신경옥 원장은 하느님의 집인 ‘빈첸시오의 집’에서 어르신들을 더욱 편안하게 모시고 싶다고 말한다. 신 원장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이동을 돕고 있다.



노인장기요양기관하면 무기력한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초점 없는 눈으로 누워 있는 어르신과 시설 특유의 냄새는 노인요양기관을 삶의 마지막 종착역인 ‘죽음의 역’으로 각인시키기 충분하다. 하지만 전북 완주군 비봉면에 있는 전주교구 사회복지법인 ‘빈첸시오의 집’은 달랐다. 깨끗한 시설 창가에 모여 햇살을 받으며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노년의 소소한 행복을 엿볼 수 있었다. 빈첸시오의 집 신경옥(율리아나, 56) 원장의 삶과 신앙에서 사순과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고래 뱃속의 요나가 되어

“성경 속 요나처럼 정말 도망치고 싶었어요.”

신 원장은 “전임 원장이 갑자기 그만둬서 몇 달만 맡아 달라는 교구 부탁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시설을 맡았다”며 “낮에는 어르신들을 돌보고 밤에는 6개월 정도 날을 새며 공부해야 했다”고 시설에 첫발을 디딘 2007년을 회상했다.

교구 사회복지법인에서 일하던 그에게 원장 자리는 버거웠다. 어린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더욱이 열악한 빈첸시오의 집 환경은 그의 어깨를 더 무겁게 했다.

빈첸시오의 집은 전주교구 이재후(원로사목자) 신부가 오갈 곳 없는 무연고 어르신을 모시고자 사비를 털어 문을 열고 2005년 교구에 소유권을 이전한 시설이다. 하지만 정부 지원 없이 후원자와 어르신들의 수급비로 운영되던 비인가 조건부 시설이어서 운영이 쉽지 않았다. 몇몇 수녀회가 맡아서 운영해 보려고 이곳을 찾았지만 모두 고개를 흔들며 떠났다.

신 원장은 “하느님께서 도망친 요나를 고래 뱃속에서 꺼내 쓰신 것을 되새기며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부 일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우고 온 그에게 어르신들이 “어디 갔었어. 우리 버리고 간 줄 알고 걱정했잖아”라는 말에 그의 결심은 더 단단해졌다.


748810_1.1_titleImage_1.jpg
▲ 최근 건립을 마친 ‘빈첸시오의 집’ 요양 병동 전경.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요양 병동에 50여 명의 어르신이 생활하고 있다.


▨사순 너머에는 부활의 희망이 있다

결단을 내렸지만, 역경과 고난이 이어졌다. 겁이 많아 돌아가신 어르신의 몸을 닦아 드리는 것도 무서웠고 어르신들을 떠나 보내며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통곡도 많이 했다. 시설 인가를 위한 서류 작업에 밤을 하얗게 새웠다. 담당 공무원에게 퇴짜를 맞을 때면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노인 요양원이 ‘죽음의 수용소’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

어렵사리 노인장기요양기관으로 인가받았지만 50년 된 폐교를 개조한 낡은 시설이 문제가 됐다. 2009년 고산 지역을 덮친 폭우에 요양원 지붕이 내려앉아 폭포처럼 빗물이 들이닥쳤다. 어르신들을 대피시키고 밤새 물을 퍼냈지만 새 보금자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 신 원장과 직원들은 백방으로 뛰며 후원금을 모았다. 직원과 봉사자들이 깻잎과 마늘, 매실 등으로 장아찌를 담고 어르신들이 힘을 보태 청국장을 만들어 성당 등지로 꼬박 8년을 팔러 다녔다.

어르신을 돌보고 후원금 모집에 행정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늘 부족했다. 하루가 24시간인 게 안타까웠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지만, 몸이 견디질 못했다. 망막에 이상이 생기는 황반변성이 찾아온 것이다. “후원 동영상을 만들고 밤을 새웠는데 아침에 눈이 안 보여 큰 병원을 찾아갔죠. 의사가 실명 확률이 높다고 하더군요.”

신 원장은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게 여기까지 인가보다’는 생각에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눈이 안 보여 주님의 일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마음의 창으로 주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기도의 응답일까, 시력은 떨어져도 기적같이 실명 위기를 넘겼다.

얼마 지나 노력에 대한 결실을 보았다. 2017년 첫 삽을 뜬 빈첸시오의 집 요양병동 공사가 끝나고 새 보금자리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신 원장은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신 이재후 신부님과 후원을 아끼지 않은 봉사자분들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미소 지었다. 아직 창고 공사 등이 진행 중이지만 현재 치매 어르신 12명과 요양 어르신 37명이 병실과 소성당, 식당, 집중 치료실, 임종실, 찜질방, 물리치료실 등을 갖춘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748810_1.1_image_1.jpg
▲ 빈첸시오의 집 설립자 이재후 신부가 어르신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고 있다.

▨부활 향한 마지막 환승역

점심을 마친 어르신들이 햇볕 가득한 요양원 창가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신 원장과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밝은 표정만 봐도 빈첸시오의 집 직원들의 어르신을 향한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어르신들을 위한 먹을거리 하나 허투루 고르지 않았다. 고기나 채소, 참기름 등 국산 먹을거리로 장을 보고 아침이면 각종 약재를 넣어 달인 배즙을 챙겨 드렸다. 1년에 3번 어르신들과 나들이도 가고 어르신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신앙생활을 도왔다.

어르신들은 “천국이 따로 있겠냐. 편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여기가 천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제는 요양원이 더 집처럼 느껴져 명절 때 집에 잘 안 가는 어르신도 많다는 게 시설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 원장도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어르신들을 보며 “하느님이 다 이루신 일이며 어르신들의 웃는 모습을 보면 매일 기적 속에 산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적을 이어가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얼마 전부터 치매 어르신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 하나다. 치매가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이지만 사랑이라는 묘약으로 다가가면 변화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 원장과 직원들은 요양원이 생을 기쁘게 마감할 수 있는 천국행 출발역이 되도록 한마음으로 가꾸어 나가고 있다. 노인장기요양원이 어르신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곳, 시설의 돈벌이 장소로 전락했다는 편견을 깨려고 오늘도 노력 중이다.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 늘 고맙고 감사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하느님 뜻대로 어르신들을 돌보며 살고 싶어요.”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