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 특집] 한국교회 순례길(하) - 호남·영남·제주[가톨릭신문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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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5-09-23 조회 100회본문
[순교자 성월 특집] 한국교회 순례길(하) - 호남·영남·제주
발행일 2025-09-21 제 3459호 11면
교우촌·순교지에서 느껴 보는 선조의 삶…신앙 의미 되돌아보는 시간
한국교회는 해마다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며 이 땅의 신앙 선조들의 굳센 정신을 기리고 그들의 삶을 본받아, 믿음의 참 의미를 다시금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가진다. 특히 이 기간에 당시 교우촌, 순교지, 옥 터 등을 순례하며 순교자들의 기개가 서린 장소를 직접 보고 느끼고 묵상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선물인 우리나라 곳곳의 성지와 선조들의 흔적을 따르는 순례길을 소개한다.

호남권: 전주교구 ‘전주순례길’
‘전주순례길’(10.7km)은 한옥마을과 인접한 명소로 잘 알려진 전동성당에서 출발해 전주숲정이성지를 거쳐 치명자산성지까지 전주를 나선형으로 잇는 길이다. 전동성당은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이 신해박해(1791년)로 순교한 전주 남문 밖에 세워졌다. 아울러 신유박해(1801년) 때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동료들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성당 주춧돌은 첫 순교자들이 치명한 전주성 성벽의 돌을 사용해 더욱 의미가 깊다.
전라감영과 전주옥순교지는 전라도 각지에서 체포된 수많은 신자를 가두고 박해했으며 사형선고를 내린 곳이다. 전주숲정이성지는 신유박해와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까지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목숨을 잃은 사형장이었으며, 서천교순교터에서는 병인박해 때 조윤호(요셉) 성인이 장형으로 순교했다.
치명자산성지에는 복자 유항검과 그의 가족 7명의 유해가 합장된 ‘가족 순교자 묘’가 있다. 또한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유중철(요한)과 복자 이순이(루갈다) 동정 부부가 함께 안장된 묘가 표지석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전주교구는 이 외에도 복자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가 살았던 초남이성지에서 그들의 묘소가 있는 치명자산성지까지 이어지는 ‘요안루갈다길’, 복자 윤지충으로 인해 ‘진산사건’이라 불리는 신해박해가 일어난 대전교구 진산성지성당에서 완주 저구리교우촌까지 연결된 ‘첫 순교자의 길’ 등 다양한 순례길을 조성했다. 아울러 매년 교구장과 교구민들이 함께 순례길을 걷는 도보 순례 행사를 열고 있다.
※문의: 063-230-1067 전주가톨릭순교현양원
[순례 안내] 전주순례길(10.7km)
: 전동성당→전라감영→전주옥순교지→전주숲정이성지→서천교순교터→치명자산성지

영남권: 안동교구 ‘문경성지순례길’
경북 문경은 신유박해 이후 충청 지역의 신자들이 피신하면서 천주교가 전래됐다. 이들은 문경, 한실, 여우목, 건학, 부럭 등에서 화전을 일구며 교우촌을 형성했다. 이러한 교우촌과 박해지, 순교지 등을 이은 안동교구 ‘문경성지순례길’ 중 ‘순교의 길’(18km)은 여우목교우촌 신자들이 문경관아로 끌려간 길이다.
여우목교우촌은 기해박해를 전후로 생겨났다. 특히 이윤일(요한) 성인 가족과 서치보(요셉) 가족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하며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1866년 10월 포졸들이 이곳에 들이닥쳐 회장 이윤일과 30여 명의 신자들을 체포해 문경 관아로 압송했다.
당시 아랫마을에 살던 80대 노인 홍 베로니카도 함께 붙잡혔는데, 나이가 많은 그가 잘 걷지 못하자 포졸이 재촉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일어났고, 결국 그는 믿음을 증거하며 칼을 받고 치명했다. 이윤일 성인 또한 1867년 대구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로 순교했다.
여우목성지는 안동교구가 여우목교우촌 부근에 터를 마련해 2002년 조성했다. 이곳에는 서치보와 그의 장남 서인순(시몬)의 묘가 있다.

안동교구 마원·진안리성지는 또 다른 문경성지순례길로, 한실 교우촌에서 연풍으로 넘어가는 왕복 등산 코스 ‘우정의 길’(8km), 문경 관아에서 상주 감영으로 순교자들이 끌려간 ‘믿음의 길’(70km) 3일 코스 등이 열려 있다. 순례길 안내를 받거나 숙소를 무료로 이용하고자 하는 순례자들은 문의 번호로 신청하면 된다.
아울러 영남권에는 대구대교구 칠곡 왜관 가실성당에서 동명 한티순교성지까지 이어지는 ‘한티 가는 길’(45.6km) 5구간도 마련돼 있다. 순례자들은 매년 열리는 ‘한티 가는 길 걷기 행사’를 통해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고 있다.
※문의: 010-9944-0145 안동교구 마원·진안리성지(문경성지순례길)
[순례 안내] 순교의 길(18km)
: 여우목교우촌→여우목성지→홍 베로니카 치명터→당포공소→문경관아

제주: 제주교구 ‘거룩한 여행’
“어와 벗님들아 순교의 길로 나아가세”
제주교구 순례길 ‘거룩한 여행’(SANTO VIAGGIO, http://santoviaggio.com)은 바다, 오름, 숲 등 천혜의 자연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그 중 ‘김기량길’은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을 기리는 길이다. 순교에 대한 용덕을 담은 천주가사를 지어 굳은 믿음을 노래했던 복자는 제주에 천주교를 처음 소개한 사도이자 첫 순교자다.
복자는 제주 조천읍 함덕리에서 태어났다. 함덕해수욕장은 복자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며, 복자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 자연스레 배를 타고 장사하는 상인이 됐다. 어느 날 풍랑으로 배가 난파돼 표류하던 중 홍콩에서 천주교를 접했고, 육지를 오가며 신앙심을 키웠다. 복자는 병인박해로 체포돼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통영 관장과 포졸들은 복자가 다시 살아날까 두려워 시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전해진다.

조천성당은 김기량길의 시작점으로, 복자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순례길은 복자가 걸으며 신앙을 선포했을 관곶, 신흥포구 등을 거쳐 김기량 순교 기념관의 현양비에서 마친다. 기념관에는 전시관과 경당 등이 마련돼 순례자들의 묵상을 돕는다.
이밖에 ‘김대건길’(12.6km)은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할 때 표착했던 한경면 용수 성지(성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를 거점으로 한다. ‘정난주길’(7km)은 하느님의 종 황사영(알렉시오)의 부인 정난주(마리아)의 묘가 있는 서귀포 대정 성지에서 시작된다. ‘신축화해의길’(12.6km)은 1901년 신축교안 때 관덕정에서 희생된 신자들이 잠들어있는 화북이동 황사평 성지를 잇는다.
※문의: 064-729-9500 제주교구 순례길위원회
[순례 안내] 김기량길(8.7km)
: 조천성당→관곶→신흥포구→김기량 생가터→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현양비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