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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기도 4: 바빌론 유배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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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6-02 조회 2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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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칸트는 하루를 정확히 시간 배분해서 보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산책하러 공원에 나오면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고 하죠. 평생을 학문과 지혜를 탐구하는 학자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서 그에 걸맞게 하루하루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방식을 터득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인생에는 일정한 방식과 그 뿌리가 되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이 방식과 가치관은 어지간해서는 바꾸기 쉽지 않고 대부분 바꾸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기존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커다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빌론 유배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역시 이스라엘 땅에서 죽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바빌론 유배는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 유배시기에 믿음의 중심이었던 성전이 무너졌고 성스러운 이스라엘 땅을 떠나 알지도 못하는 이교인들의 땅에 가서 터전을 일구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바꾸어야 했습니다.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가치관과 선민으로서 가졌던 우월의식, 이민족들에 대한 멸시 같은 삶의 방식을.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성전이 무너지면서 그들의 자신감도 무너졌고 낯선 땅으로 강제 이주해 가면서 이제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이민족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치관과 삶의 방식의 변화는 기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성전을 잃고 유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고통 속에서, 그들의 기도는 지난날의 불충실함에 대해 용서를 빌면서 하느님께서 이 참상을 기억하시어 다시 회복시켜 주시도록 희망하는 절절한 호소가 됩니다(애가 5장 참조). 에제키엘 예언자는 ‘새 성전에 대한 환상’(에제키엘서 40-48장 참조)으로 이 희망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공통된 지향을 모든 백성이 마음을 모아 바쳐야 했으므로 이 시기의 기도는 제관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적 예배에 적합하도록 그 형식이 다듬어졌습니다. 또한 기도가 끝나면 온 회중이 마음을 모아 ‘아멘’이라는 말로 응답을 하였고 율법을 낭독하기 전에 기도를 드리는 관례가 생겼습니다(느헤 8,6 참조).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으로서의 지위와 품위를 잃어버린 가장 큰 이유가 하느님께 대한 불충실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은 철저한 공동체 의식과 제물과 제사의 강조(레위 22,17-25 참조), 안식일 준수 등과 같은 종교적 규정을 통해 다시금 충실한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기도가 이러한 종교적 규정 안에서 형식적으로 경직되기는 하였지만, 정해진 틀 안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진 기도(에즈 7,27-28; 느헤 2,4 등 참조)는 백성들에게 다시 거룩한 자유와 위엄을 가져다주었습니다(레위 22,31-33 참조). 

이처럼 신앙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고 그에 걸맞은 기도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전에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원래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 한마음으로 하느님께 충실해야 한다는 기본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위기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상욱 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