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뉴스자료

신문뉴스자료 목록

전주 전동본당 순교자현양위, 윤지충·권상연 학술 심포지엄[가톨릭신문 2010-05-16]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0-05-19

본문

전주 전동본당 순교자현양위, ‘… 윤지충·권상연’ 학술 심포지엄

 
“신앙 선조 정신·생애, 한국교회 자긍심”
발행일 : 2010-05-16 [제2697호, 24면]

- 전주 전동본당은 7~8일 전주교구청에서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권상연’ 주제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신앙 선조의 정신과 생애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베드로)·권상연(야고보)의 신앙과 사상을 조명하고, 그 시대적 의미를 짚어보는 학술 토론의 장이 마련됐다.

전주교구 전동본당(주임 김용태 신부)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안득수)는 지난 7~8일 전주교구청 4층 강당에서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권상연’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두 순교자가 살았던 조선후기의 정치적·사회경제적·사상적 배경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들의 순교가 한국종교문화에 끼친 영향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한국천주교회 순교 1번지’로 불리는 전동성당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의견을 나눴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에는 최기섭(가톨릭대)·이대근(대전가톨릭대) 신부를 비롯해 금장태(서울대)·조광(고려대)·배항섭(고려대) 교수, 허태용(성균관대)·조현범(한국교회사연구소)·서종태(호남교회사연구소) 박사와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등 교회사와 한국사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각 주제별 발제자와 토론자로 나서며 보다 풍성한 학술의 장이 됐다.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는 7일 인사말에서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신앙 선조들의 정신과 생애를 다시 선명하게 살릴 수 있다면, 오늘날 신앙 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는 ‘윤지충·권상연 다시보기’란 제목의 기조강연에서 “전동본당뿐 아니라 전주교구와 한국교회는 오로지 이 루갈다 한 분에게 관심을 쏟느라 이 땅에 뿌리 깊은 믿음의 밑바탕을 닦아 놓은 윤지충과 권상연은 뒷전에 세워놓았다”고 지적한 뒤, “한국의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하느님 신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한 윤지충의 믿음은 한국교회의 자긍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심포지엄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 윤지충·권상연의 천주사상과 영혼관 - 금장태(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확고했던 천주신앙·내세관


윤지충과 권상연이 받아들였던 천주교 신앙의 중심개념은 ‘천주’의 존재였다. 주자학 교육을 받은 유교 지식인이었던 이들은 정약전과 정약용 등 신서파 지식인들과 접했고,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통해 ‘천주’ 사상의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면서 천주교 신앙에 입교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교 경전 속의 ‘상제’와 천주교의 ‘천주’ 사이에 아무런 차별이나 간격을 의식하지 않고 ‘천주’ 개념을 쉽게 받아들였다.

즉 윤지충은 ‘천주’와 ‘상제’를 동일시한 마태오 리치의 해석을 인정하면서도, 유교의 ‘상제’가 아닌 천주교의 ‘천주’를 자신의 유일한 신앙적 중심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천주’에 대한 신앙은 ‘천주’의 존재와 유교의 ‘상제’를 일치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적 선교논리를 매개로 삼아,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주’를 유일의 궁극존재로 확인하는 신앙의 선언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준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형장으로 가는 길이나 순교하는 순간까지 ‘예수’와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것은 「천주실의」에서 제시된 ‘천주’ 존재 중심의 보유론적 교리체계에 대한 이해를 넘어 천주교의 고유한 교리체계와 기도문에 이미 익숙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곧 ‘상제=천주’의 보유론적 교리체계에서 ‘천주=예수’의 교리내적 교리체계로 전환한 것이요, 마태오 리치가 열어놓은 「천주실의」를 건너 천주교 신앙으로 향한 통로를 통과했음을 보여준다.

윤지충은 1791년 5월 모친상 때 조문객의 조문을 거절하고 ‘축하할 일’이란 발언을 했다. ‘천당에 올라가셨으니 축하할 일이지 위로할 바가 아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의 사실유무는 확인할 수 없으나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윤지충의 ‘천당지옥설’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줄 뿐 아니라 유교의 상례(喪禮) 자체에 대한 거부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내세중심의 세계관을 확고하게 수립하고 있었다.

■ 윤지충·권상연의 순교가 한국종교문화에 끼친 영향 - 조현범(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신앙 결단 통한 순교 개념 형성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를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한국종교문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살펴볼 때, 대략 네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천주교와 전통종교, 특히 유교와의 관계 단절이다. 진산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와 유교는 적대적 관계로 돌아서고 말았다. 특히 천주교의 교리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성리학자들은 윤지충과 권상연의 폐제분주(廢祭焚主)를 바라보며 천주교가 반인륜적 성격의 가르침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둘째, 천주교는 한국종교문화 내에서 핍박받는 종교집단으로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그 핵심에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로부터 비롯한 제사 거부의 신앙적 결단이 자리했다. 진산사건 이후 양반층 신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교회 구성원들이 중하층 서민들로 재편되면서 천주교는 주류의 종교문화로부터 완전히 이탈했다. 그러면서 반체제적 민중종교운동으로서의 성격이 부각됐다.

셋째, 한국종교문화에서 새로운 역동성이 출현한 것은 주류 종교의 영역이 아닌, 소규모 신앙생활을 유지하던 천주교 내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종교적 혁신이라 부를 만한 징후가 천주교 내부에서 감지된 것이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이후 천주교는 제사문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신자들이 영위하는 종교문화의 영역에서는 제사금지령의 확고한 원칙 준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제사를 폐지하는 대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상장예식과 추념의례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연도(煉禱)라는 독특한 종교문화의 출현으로 나타났다. 종교적 융합과 혁신이 발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천주교를 통해, 좀 더 직접적으로는 윤지충과 권상연을 매개로 순교(殉敎) 개념이 한국종교문화에 새롭게 등장했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죽음 이후에 순교라는 관념이 천주교를 통해 한국종교문화에 새로운 에토스로 도입됐다는 의미다. 한 개인이 종교적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받아들인다는 의식은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이후 한국종교문화가 새롭게 발견한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곽승한 기자 (paulo@catimes.kr)
이관영 전주지사장 (lky1004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