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뉴스자료

신문뉴스자료 목록

이병호 주교-그리기엘 교수 대담 - ‘몸의 신학’을 말하다[가톨릭신문 2010-05-30]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0-06-03

본문

이병호 주교-그리기엘 교수 대담 - ‘몸의 신학’을 말하다

 
몸 이해로 깨닫는 헌신적 사랑의 기쁨
발행일 : 2010-05-30 [제2699호, 11면]

 

     

 
▲ 이병호 주교 - “몸, 하느님 축복의 창조물. 타인에게 ‘모두 내어 놓는’ 사랑 실현의 도구”
 
▲ 그리기엘 교수 - “몸을 바로 이해하게 되면 타인도 ‘사랑할 대상’ 인식. 그 관계 안에서 신뢰 창출”

 

 

 

 

전 세계가 성(性)의 남용과 오용,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을 왜곡해 바라보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성’에 관한 대화 자체를 금기시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가톨릭신자는 물론 성직·수도자들도 인간의 몸과 성에 관해 올바로 배울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생전에 남자와 여자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배우자적 사랑을 인간 이성으로 옹호하는 가르침을 적극 제시해왔다. 인간의 몸과 성을 왜곡한 기존 관념을 무너뜨리고, 가장 온건하고 적극적인 교회의 가르침을 전한 것이다. 이 내용들은 ‘몸의 신학’이라 불리며 확산되고 있다.

‘몸의 신학’을 주제로 전 세계적인 강연을 펼치고 있는 스타니슬라오 그리기엘(Stanislaw Grygiel) 교수가 지난 11~21일 한국교회를 찾았다. 가톨릭신문은 인천에 이어 대전·전주교구에서 각각 특별강연을 펼친 그리기엘 교수와 이병호 주교(전주교구장)와의 대담을 통해 ‘몸의 신학’에 관해 더욱 폭넓게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병호 주교는 최근 한국교회 내에서 ‘몸의 신학’에 대한 강연과 확산에 투신하고 있다. 오는 11월부터는 ‘몸의 신학’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가는 TV 특강도 이어갈 예정이다. 그리기엘 교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직제자로서 ‘몸의 신학’ 전문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교황청립 라테란 대학교 혼인과 가정 연구를 위한 요한 바오로 2세 대학 창립자이며, 현재 ‘철학적 인간학’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이병호 주교(이하 이 주교) : 교회는 수많은 계명과 금령 등을 동원해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인 사랑(남녀 간의 사랑)을 쓰디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미 신적인 어떤 것을 맛볼 수 있게 해주셨는데 교회가 들어서서 ‘접근금지’라는 딱지를 붙인 것과 같지요.

스타니슬라오 그리기엘 교수(이하 그리기엘 교수) : 인간 사랑의 문제는 창조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처음 하신 말씀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열매는 바로 남녀 간의 사랑으로 얻어진 자녀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력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 자녀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주교 : 삶과 신앙의 괴리는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는 세상과 몸, 마귀를 무턱대고 나쁜 것으로만 가르쳤죠. 몸과 성을 하느님의 축복이 아닌 음습한 것으로 왜곡하는 인식이 생겨난 겁니다. 물론 몸이 물질세계를 대표하는 것이기는 하지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좋은 것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의 몸도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기엘 교수 : 그렇습니다. 인간은 몸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주시해야 합니다. 몸이 가진 아름다움을 올바로 인식하면 아름다운 생각과 행동을 발견하고, 그러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생각과 행동을 잘하게 됩니다.

이 주교 : 몸은 바로 자기 자신인데, 그 자신을 나쁘게 보라는 것과 같은 겁니다. 신앙과 삶의 가장 큰 괴리가 바로 몸을 인식하는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기엘 교수 : 자신의 몸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질문하고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주교 : 남자와 여자의 알몸을 보면 생김새가 서로 주고받게 되어 있습니다. 남녀의 사랑 또한 서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기엘 교수 : 네, 사랑은 쾌락을 찾는 것만을 일컫지 않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몸을 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 주교 : 성은 가장 예민하고 깊고, 다른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자 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을 접근하는데 있어서는 조심하고,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 준다는 것에는 알몸이나 그 무엇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스스로 사랑해서 드러내면 성은 가장 활짝 피어나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도 있지만, 억지로 드러내게 되면 인간이 파괴됩니다.

그리기엘 교수 :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서로를 선물로 보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서로에게 서로를 온전히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도 남자는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며, 사람과 그 아내는 둘 다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주십니다. 인격들 간의 친교를 이루라는 부르심은 몸을 통해 실현돼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혼인적 관계는 인간이 사랑으로 불리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주교 : 성직·수도자들도 실제 성을 원수로 생각하거나 겁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몸조차도 밝게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원칙적으로 성이 아름답다는 의식이 분명하면 심리적으로 먼저 해방됩니다. 나아가 독신으로 살든 혼인성사 안에서 살든 사랑은 남에게 내어주는 것임을 알면, 남녀가 서로에게 내어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기엘 교수 :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인식할 때, 하느님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을 남에게 내어줄 수 있습니다. 타인을 이용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할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성욕은 원래 자신을 타자에게 선물로 주려는, 하느님의 모상 안에서 서로 일치하고픈 욕망을 말합니다. 하지만 죄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이 주교 : 그런 의미에서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을 배울 절호의 기회죠.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진정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을 체득하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내어놓는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몸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만연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과 같이 만드는 행위입니다. 아름다움을 올바로 인식하면, 남녀가 서로 우주를 다시 발견하는 것 만큼 큰 체험을 할 수 있지요. 하느님께서 주신 것 중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그리기엘 교수 : 몸의 신학은 인간 몸의 본성과 존엄성을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행복한 혼인 관계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줍니다.

이 주교 : 그리스도교는 타인이 없으면 내가 없다고 강조하지요. 삼위일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관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것이 다 당신의 것이라고 하셨고, 아버지께 자신을 완전히 내어드리면서 다시 사셨습니다. 인간도 이러한 하느님을 닮게 창조된 공동체적인 존재입니다. 남이 있어야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삽니다. 즉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을 바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기엘 교수 : 우리는 영원히 또 처음부터 관계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을 하면 둘이지만 하나인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즉 다른 사람 안에 현존하면서 신뢰를 창출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서 존재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을 혼동한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파괴합니다.

이 주교 : 인간은 흔히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인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요한 1서 3장 16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합니다. 사랑은 바로 주는 것, 목숨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기엘 교수 : ‘인간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완전한 해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의 죽으신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아버지 하느님께 내어 맡기셨습니다. 이것을 보고 바로 우리 자신 또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남에게 선물로 내어주는 것은 바로 자신을 다 주는 것입니다.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