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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바쳐 신앙 지킨 세 순교 복자 초남이성지 교리당에 안치[가톨릭평화신문 202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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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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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바쳐 신앙 지킨 세 순교 복자, 초남이성지 교리당에 안치

복자 윤지충·권상연·윤지헌 유해 안치식

2021.10.03 발행 [16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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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와 사제단이 순교자 유해 안치식과 축복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그들에게 첫 번째는 항상 하느님이었다. 신앙을 지킬 수만 있다면 그들은 모든 것을 내어줬다. 그것이 자신들의 목숨일지라도.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신앙 선조들의 삶은 그러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 신앙 후손들을 위한 신앙의 새 씨앗을 흩뿌렸다.



순교자들과의 만남

푸른 가을 하늘과 선선한 바람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2021년 9월 16일. 순교자들을 초남이성지에 모시기에 전주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었다.

오전 7시 40분, 순교자들을 초남이성지로 모셔올 전주교구 사제 7명이 교구청에 모였다. 사제들의 얼굴에는 설렘, 긴장감, 기쁨이 가득했다. 사제들은 순교자들의 유해를 담을 상자를 싣고 교구청을 출발했다. 오전 8시, 순교자들의 유해가 임시로 모셔져 있는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실에 사제들이 도착했다. 순교자들의 유해 앞에 선 사제들은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각각의 유해를 정성스레 상자에 모셨다. 전북대를 출발한 사제들은 8시 50분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실 초남이성지에 도착했다. 순교자들을 기다리던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순교자들을 모시다

오전 8시 55분, 호남교회사연구소장 이영춘 신부와 전북대 의과대학 송창호(벨라도) 교수, 전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윤덕향(안토니오) 교수 등이 순교자들의 유해 안치를 시작했다.

유해는 공기 노출을 막기 위해 한지로 감싼 다음 지퍼백에 넣어 밀봉했다. 각각의 유해는 지퍼백 그대로 관 안에 모셨다. 지퍼백 안에는 제습제를 넣었다. 관 안에도 많은 양의 제습제를 넣었는데 제습제를 넣은 이유는 최대한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신 관은 오동나무 관이다. 석관은 안과 밖의 온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결로현상이 생기면서 습기가 발생한다. 하지만 나무는 통기성이 뛰어난 데다 안과 밖의 온도 차이가 크지 않아 결로 현상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송창호 교수는 “유해 보존을 위해 해마다 유해를 확인하고 제습제도 교체하며 앞으로 잘 보존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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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충, 권상연, 윤지헌의 묘에서 발견된 백자 사발 지석(위)과 백자 제기 접시(아래).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유해 안치식과 축복 미사 중 성수 예절을 통해 유해를 모실 안치소와 유해함, 순교자들의 유해가 담긴 유해성광 3개를 축복했다. 이어 유해함 모서리에 교구장 문장이 있는 스티커를 붙여 봉인한 후 유해성광 3개를 안치소로 모신 후 분향했다.

유해 안치식과 축복 미사가 끝난 뒤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은 안치소를 찾아 순교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가족과 함께 안치소를 찾은 전주 우림본당 이진재(사비나)씨는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잘 선포하는 신앙후손이 되겠다”며 “이 자리에 초대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전임 교구장 이병호 주교는 “이곳(순교자들의 유해가 모셔진 교리당)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동이 터오는 것 같다”며 “순교자들의 유해 발견은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權公墓在左(권공묘재좌), 尹公墓在右(윤공묘재우)


“왼쪽에 권공(권상연)의 무덤이 있습니다.”, “오른쪽에 윤공(윤지충)의 무덤이 있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의 묘에서 발견된 백자 사발 지석에 새겨진 명문으로 훗날 후손들이 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전주교구는 9월 24일 초남이성지에서 유해 진정성에 관한 보고회를 진행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백자 사발 지석에 새겨진 명문이다. 지석에는 이름과 세례명, 출생연도 등 인정사항과 무덤 조성 연대 등이 상세히 적혀있다.

윤지충 묘에서 발견된 지석에는 윤지충의 묘라는 ‘尹公之墓(윤공지묘)’, 당시 성균관의 과거시험 중 소과(小科)인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인 ‘成均生員’(성균생원), 세례명 바오로를 뜻하는 ‘聖名保祿(성명보록, 보록은 바오로의 한자 표기)’ 등이 적혀있다. 1792년 10월 12일에 무덤이 조성됐다는 ‘乾隆 五十七年 壬子 十月 十二日(건륭 57년 임자 10월 12일)’도 적혀있다. 건륭 57년은 서기 1792년, 간지로는 임자년, 음력 10월 12일은 양력으로는 11월 25일이다.

권상연 묘에서 발견된 지석에는 권상연의 묘라는 ‘權公之墓(권공지묘)’, 권상연의 생전 이름을 뜻하는 ‘諱尙然(휘상연)’, 안동 권씨를 의미하는 ‘本安東(본안동)’ 등이 적혀있다. ‘乾隆 五十七年 壬子 十月 十二日(건륭 57년 임자 10월 12일)’은 윤지충의 묘와 같은 날 조성됐음을 의미한다.

윤지헌 묘에서는 백자 제기 접시 2점이 포개진 상태로 발견됐다. 접시에는 인적사항과 무덤 조성 연대 등이 표기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와 고고학적 검사 등을 통해 윤지헌임을 확인했다.

한편 교구는 이날 △세상에 드러나다 △첫 순교자를 만나다 △순교자를 따르다 등 크게 3부로 구성된 보고서를 발간했다. 치명자산성지 담당 김영수 신부는 “보고서에 담긴 교회사적, 문화사적 성과의 기록이 앞으로 순교자들의 신앙 연구와 현양에 이바지하리라 기대한다”며 “첫 순교자들의 신앙 증거와 정신, 그리고 호남의 사도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초남이 신앙공동체의 믿음살이에 대한 연구와 신앙적인 성찰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쇄신하고 성화의 길을 찾는 기회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