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호-2006년 겨울-사마리아여인에게서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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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ecil 작성일08-12-26 00:00 조회3,4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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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샘이 저만치에서 보였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웬 남자가 먼저 와서 샘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사람 꼴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제일 더운 이 시간을 택해서 왔는데, 하필 이 때 여자도 아닌 사내가 먼저 와서 앉아 있다니! 저는 한 순간 돌아갔다가 다시 올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그 남자를 보니, 제가 그 동안에 보았던 어떤 사람과도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뭐랄까. 상대방에게 일체의 경계심이나 털끝만한 의구심도 가질 수 없게 하는 그런 눈빛과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경계심보다는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행색이었습니다. 샘에서 물 긷는 사람들이 흘려 움푹 파인 돌 사이에 조금 깔린 물을 겨우 핥아먹고 있는 어린 양을 조금 닮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저는 그 사람을 못 본 체하고 우물로 다가가서 두레박을 내리려 했습니다.
바로 그 때 그 사람이 제게 말을 붙였습니다. “물 좀 한 모금 주시겠습니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행색이나 말씨로 미루어 유다인임이 분명한데, 사마리아인에다가 여자인 저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민족 사이에는 어떤 모양의 거래나 접촉도 용납되지 않았지요. 더구나 먹을 것이든 마실 것이든 같은 그릇을 사용해서 입에 무엇을 가져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저의 이 말에 대한 그분의 대꾸는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당신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를 당신이 알았더라면 오히려 당신이 나에게 청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그분과의 만남 그리고 오고간 대화는 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먼저, 저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물이 이렇게 깊은 데다, 선생님은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그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이 우물로 말하자면 우리 조상 야곱님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들까지 이 물로 살아왔습니다. 우리로서는 이렇게 좋은 우물을 우리에게 물려주신 야곱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데, 그래 선생님은 그분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그분이 대답삼아 주신 말씀은 알아듣기가 점점 더 어려웠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시오.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입니다.” 저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이상한 물이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 물을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기상천외.” 이 말은 그 때 그분이 제게 불쑥 던진 반응을 위해서 생겼다고 할 것입니다. “가서 남편을 불러 오시오.” 아, 이러지 않겠습니까? 물, 목마름,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무슨 남편이야기로 말꼬리를 돌린단 말입니까? 또 남편 이야기라면 제가 세상에서 제일 꺼내기 싫은 화젯거리였기 때문에 저는 거기서 말을 끝낼 요량으로 다소 퉁명스럽게 내뱉었지요. “남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주질 않았습니다. “남편이 없다는 말은 솔직한 고백입니다. 당신에게는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실은 당신의 남편이 아니니 바른대로 말한 것입니다.” 이러질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기가 막혔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저의 과거를 다 알고 있다니 이 사람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다. 신통력이 있던가, 하느님 하고 쉽게 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예언자? 그렇지. 틀림없는 예언자다. 종교 문제의 전문가를 만났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는 유다인과 우리 사마리아인 사이에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어왔던 종교적 문제를 꺼내 들었습니다. “보아하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우리 사마리아인들은 조상 대대로 저 그리짐 산에 가야 하느님을 만나 예배나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믿어 왔는데, 선생님네들은 그분을 만나려면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고 하시니,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겁니까?” 저는 실제로 어느 쪽이 맞는지도 몰랐고, 따라서 어디로도 가 본 적이 없이, 하느님하고는 말하자면 담을 쌓고 살았던 것입니다.
“내 말을 믿으시오.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입니다. 당신네들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저는 알 듯 모를 듯한 이 말을 들으며 머리가 좀 혼란스러워 말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시겠지요.” 이 때, 그분이 저에게 하신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저의 온 존재가 뒤집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벼락을 맞은 듯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하늘이 갈라졌다. 천둥이 울렸다. 땅이 흔들렸다. 불마차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눈에서 명태껍질이 벗겨지며 처음으로 확실히 보게 되었다. 비슷한 체험을 한 다른 사람들이 썼던 이런 말들을 다 합해도, 아직 그것을 적절하게 나타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제가 불길 속을 거쳐 온 듯, 온 몸이 타는 듯한 느낌에서 겨우 깨어나 정신이 들었을 때, 저는 더 이상 조금 전까지의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얼었던 몸이 풀리고 닫혔던 감각 기관이 다 열렸으며, 굳었던 마음이 녹고, 온 몸의 피와 공기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말하자면 굳고 말라서 움직임이 정지되었던 제 안의 모든 숨결과 피와 물이 비로소 그 신비한 열기로 풀려 모든 것이 막힘없이 흐르게 되었음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메마르고 이리저리 찢어졌던 마음이 흡족하게 내린 단비에 젖고, 온갖 풀과 나무가 그 위에 솟아나 시원한 바람결에 춤을 추듯, 내 마음은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향기와 기쁨으로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돌아보니 지금까지는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맛보는 것, 만져지는 것, 냄새 맡는 것, 그 어느 것도 고장 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그것들이 어떤 묶임에서 풀려나 제대로 움직이고, 그 통로를 거쳐 들어오는 이 세상이 그대로 천국의 문턱임을 깨달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 모든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그분이 남편을 불러 오라고 말씀하시던 순간이었습니다. 처음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목마름과 물을 이야기 하다가, 왜 아무 상관도 없는 남편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 보니, 목마름과 남편 사이에는 놀라운 관계가 있었습니다. 샘에서 길어 올리는 물로 달랠 수 있는 목마름이 분명 우리 안에 있지만, 그런 것은 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소나 양과 같은 짐승도 가지는 목마름이었고,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물이 아니고는 해소할 수 없는 목마름을 속 깊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를 낳아 주신 부모를 비롯해서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그 이름에 어울리는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그래서 저는 그 목마름을 안고 사랑을 찾아 많은 남자를 상대했지만, 만난 것은 제 몸뚱이에만 관심이 있는 남성들뿐이어서, 속 깊은 갈증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소갈증에 걸린 사람처럼 상대를 바꿔가는 일만 계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이 왜 그렇게 되었던가?
그분을 만나고 나서 저는 처음으로 그 원인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분을 만나던 날 우물 주변에 흘린 물기를 핥고 있던 짐승들을 바라보며, 그것이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인간이 동물에서 나왔으며 따라서 이 둘 사이에 별로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이 저에게도 그럴듯하게 들렸고, 그래서 이성을 대할 때도 동물들을 흉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눈빛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제 안에서는 자신조차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나>가 깨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짐승을 닮은 ‘나’가 아니라 하느님을 닮은 ‘나’가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수많은 남자들이 내 안에 있는 동물을 깨울 뿐이었는데, 그분은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을 깨웠던 것입니다. 하느님이 일단 일깨워지고 그분이 내 정신을 채워주시니 저는 난생 처음으로 흡족히 채워졌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나니, 저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 안에 하느님이라는 물로 밖에 채워지지 않는 또 하나의 갈증, 사람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목마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갈증은 저의 온 존재에 퍼져 있었고, 샘에서 길어 올리는 물, 다른 사람의 사랑이라는 이름의 갈증도 그 앞에서는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갈증의 뿌리라고 할 그 목마름을 채우고 나니 다른 것들은 저절로 해소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지고 갔던 물동이를 깡그리 잊은 채, 물통이 아니라 저 자신이 넘치도록 채워진 느낌을 안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8) 그분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저는 온 몸으로 직접 겪어서 그것이 얼마나 참인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하느님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는 시선이 저에게도 생겨났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 역시 영원의 넓이와 깊이 그리고 색조를 띠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1요한 4;8,16) 그분을 만나 크게 깨달은 이는 이렇게 말했지요. 사랑이 제자리를 지키는 한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을 담고 있습니다. 남녀 사이의 사랑도,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남에 대한 희생적 사랑도, 모두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샘에서 물이 솟아 나오듯, 사랑이신 하느님에게서 사랑의 작은 물줄기들이 여러 갈래를 이루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분이 저에게 그것을 알려 주셨지요.
저는 이 기쁨을 자신 안에만 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동네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저의 지난 일을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가서 봅시다. 그분이 메시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자기네들을 만나기조차 꺼려하다가 한 순간에 돌변하여 자기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모두들 그분께 몰려갔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들은 제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저에게 일어난 일이 그들에게도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저는 저의 기쁨이 그 사람들의 수만큼 불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와 함께, 이런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러 오신 그분의 심정이 얼마나 절박한지도 깨닫게 되었지요. 아직 시간이 안 되었다. 상황이 무르익지 않았다.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끝없는 핑계의 숲 속을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내 말을 잘 들어라.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추수하게 되었다. 거두는 사람은 이미 삯을 받고 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알곡을 모아 들인다. 그래서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 과연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는 속담이 맞다. 남들이 수고하여 지은 곡식을 거두라고 나는 너희를 보냈다. 수고는 다른 사람들이 하였지만 그 수고의 열매는 너희가 거두는 것이다.”
이제 겨우 씨앗에 싹이 터져 나온 봄철이었는데, 그분은 벌써 그것이 다 자라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있는 가을의 성숙한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의 그런 시선이 죄로 형편없이 망가진 저를 보고 이미 당신의 솜씨로 성인이 되어있는 저를 보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만나면 누구나 자신 안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하느님의 모습을 다시 찾아내게 되지요. 저의 귀에 그분의 말씀이 아직도 크게 울리고 있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내 말을 잘 들어라. 곡식이 이미 다 익어 추수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