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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2007년 봄-옷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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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26 00:00 조회3,5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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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으로부터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에는 <옷밥집 신부님>에 관한 것이 있었다. 주인공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신부님은 강론 때마다 옷밥집 이야기(만?)를 하셨다고 한다. 지금 더 흔히 쓰이는 말로 표현하자면 의식주인 셈인데, 이 평범한 말보다 옷밥집이라고 하니 훨씬 몸에 와 감기는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그 말이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이만큼이나 또렷이 남아있는 것일 게다.

 

옷밥집. 그렇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을 얻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애를 쓴다. 이것이 없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에서 밥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그것을 지탱시키며 자라게 하고 힘을 주어 온갖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옷과 집은 우리 몸이 외부 환경 때문에 손상을 입거나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주고 감싸준다. 옷은 직접 몸에 닿게, 집은 좀 넉넉한 품새로 우리 몸을 지켜준다는 차이가 있지만, 하는 일은 결국 같다고 할 수 있다. 집은 옷의 연장, 큰 옷인 셈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집만 옷의 연장이 아니라, 옷 또한 몸, 더 정확히 말하자면 피부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옷밥집은 내 몸을 안팎에서 지켜주고 키워주니 그것들 자체가 거의 나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그것들은 한 사람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옷이나 집은 그 안에 들어가 사는 사람의 덩치와 취향에 따라 모양과 크기 그리고 질이 달라진다. 옷은 집과 함께 나름대로 그 사람의 사람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 교구가 구성원 전체의 힘을 기울여 교구의 큰집을 지었다. 교우, 사제, 수도자 등 교구민 모두가 각기 고유한 역할과 기여를 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직무상 이 일을 처음부터 총체적으로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본인은 참으로 많은 감회와 생각이 밀려옴을 느낀다.

 

1970년에 우리 교구는 신자 5만여 명에 사제는 48명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무렵에 가톨릭센터 한 구석에 임시로 마련한 교구청을 사용해 왔다. 이제 사제 수 180여 명에 교우 수는 약 18만에 이르는 규모로 늘어나 있다. 오랜 세월을 몸에 맞지 않는 옷, 집에서 살아온 셈이다. 그래서 본인이 1990년 교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가장 큰 과제의 하나로 늘 제기되어 온 일이 교구청 신축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적절한 부지를 찾지 못하여 이 일은 계속 미루어져 왔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신축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전동 성당 구내 한 쪽과 인근의 땅을 더 사 붙여서 거기에 짓자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제안들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만이 아니라 교구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며 필요에 따라 확장이 가능한 곳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적절한 땅을 찾아 일을 미루어 온 것이었다. 그러던 중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 끝에 2003년 마침내 현 부지를 매입하였다.

 

본래 산의 한 자락이었던 곳을 학교 부지로 조성하여 한때는 고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4개 학교가 들어서 있던 땅이기 때문에, 도시 미관을 고려하여 전주시가 그 지역에 새로 지을 건물의 고도를 5층으로 제한해 놓는 바람에 지가가 오르지 않아 우리가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주교가 되어 자주 치명자산을 찾다가 10여 년 전부터는 아예 매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돌아오는 길에 그 터를 스쳐 지나면서도 그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전주 남 지구 회의에서 구입 의견을 제출하여 사제평의회에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자리는 우리 교구민을 위해서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치명자산과 전동 성당 등 순교 선열의 숨결이 감도는 자리라는 그 신앙적 의미, 전통 문화의 고장 전주에서도 가장 유서 깊은 구역에 속한다는 그 향토문화적 의미, 그리고 기린봉 등 어머니의 품처럼 전주시를 감싸고 있는 산줄기의 한 자락을 끼고 있다는 그 자연적 의미가 한데 모아진 곳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한 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운데서도, 믿음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친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이 지역 복음화의 기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 가족, 특히 동정부부 유 요한과 이 루갈다,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의 숨결이 감도는 지역이라고 하는 사실의 깊은 의미는 따로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는 앞으로 우리 교구의 역사와 함께 언제까지나 지키고 가꾸어야 할 터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땅을 확보하게 된 것은 어느 모로나 뜻 깊은 일이며, 만사를 안배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집을 짓는 일에 관해서는 생각이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설계도를 놓고 교우와 사제 대표, 건축 전문가 등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던 단계만 해도, 경제적 부담을 제외하면 일 자체는 단순명료해 보였다. 각 분야의 대표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필요한 공간을 확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설계회사에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수정 과정을 거친 다음, 시공회사를 선정하여 일을 맡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설계 단계만 되돌아보아도 그것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이 지역이 전주시의 조례상 고도 제한 지역임을 감안하되, 교구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앞으로 추가해서 지어나가게 될 다른 건물들을 염두에 두고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법이 허용하는 한 가장 높이 짓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당시 최고 허용 높이가 5층이었는데, 사무실동은 일부가 우리의 뜻대로 5층으로 되었지만, 사제관동은 한 쪽 날개를 4층으로 다른 쪽 날개는 3층으로 결정되었다. 건물의 전체 미관상 가장 적절하게 하자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종교 목적으로 땅을 샀기 때문에 구입일로부터 2년 안으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다, 몇 달 안으로 고도 제한이 더욱 엄격한 방향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까지 있어서, 우리는 일을 좀 서둘러서 진행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십여 년을 미루어 오던 일인데다, 이렇게 시간적 제약까지 받다 보니, 설계도 검토에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데, 이 부분은 단순히 시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종이에 그려진 그림과 그것이 실물로 나타날 때의 차이를 충분히 실감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한계도 곁들여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림이 건물로 바뀌어 가면서, 본인은 마치 약간 몸에 맞지 않는 옷이 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무실동은 너무나 높아 드나드는 이들이 위압감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내가 거기 앉아 있으면 건물이 주는 무거운 느낌 때문에 사람들이 필요 없이 거리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이 어려운 시절에 교구 공동체의 큰 희생과 정성으로 마련된 집이 너무 사치스러운 것은 아닐까.

 

처음부터도 이런 점들이 마음에 쓰여 여기저기 알아본 것은 사실이다. 먼저, 세계적으로 수많은 집을 짓고 우리 교구에서도 큰 집을 지은 바 있는 가난한 이들의 자매회 수녀님들의 경험을 들었다. 그분들에 따르면 집은 지을 당시에 크기나 질에 있어서 상당히 앞을 내다보며 짓지 않으면 얼마 못 가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삶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약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어도 조금 지나면 범상한 것으로 느껴지고, 그렇지 않으면 불편하게 생각된다는 것이었다. 교회의 여러 인사들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그분들의 말씀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제들의 숙소와 사무실은 따로 지어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본인의 마음이 좀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고, 그만큼 새 집과 사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은 본인의 생각이고 주변의 다른 분들은 대체적으로 좋다고 하시니 다행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그 동안 기도해 온 대로 새로운 땅에 둥지를 틀고 교구의 새 역사를 만들어갈 시점에 와 있다. 무엇보다도 신부님들이 이 집을 짓는 데 기대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적극 협력해 주시고 희생을 치러 한 마음을 보여 주신 점이 소중하게 생각된다. 앞으로 교구청, 특히 교구 사제관은 신부님들의 본집이 되어, 이 집을 중심으로 쉬고, 재충전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고, 형제애를 나누고 하면서, 언제나 개인적으로는 힘을 얻고, 사제단으로서는 일치를 더욱 돈독히 하는 중심점으로서 역할을 다 하게 될 것이다. 사목자들이 하나가 되고 늘 새로운 빛과 힘으로 충만하게 되면 그것이 그대로 교우들에게 전해지고 교회 전체가 활기를 얻어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교구민 전체를 위해서도 교구청이 단순히 사무 행정의 중심일 뿐 아니라, 교구의 심장으로서, 매일 거행될 성체성사(미사)에서부터 각종 현대적 매체를 통한 재충전의 역할까지 아울러, 모두가 삶에 새로운 활력을 얻고, 주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터전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온갖 희생과 정성을 모아주신 교우 여러분과 신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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