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

Home > 글모음 > 글모음

SNS 공유하기

17호 2007 여름-새터전에서 새역사를 시작합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26 00:00 조회3,593회 댓글0건

본문

존경하는 뽈 체릭 교황대사님, 정진석 추기경님, 주교님들, 사제, 수도자, 교우 여러분!

 

지금부터 223년 전, 온 나라가 혼돈과 어둠에 싸여 있던 시절, 생명의 말씀이 이승훈님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해 그 말씀은 유항검님의 몸에 실려 우리 지역에까지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도 시대로부터 온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가는 말씀의 거스를 수 없는 달음질은 우리에게까지 도달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선택된 민족, 왕의 사제,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소유인 백성”(1베드 2, 참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말씀의 힘찬 달음질 덕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지금 이렇게 함께 모인 것은 “어두운 데서 우리를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하기 위함”(1베드 2,9 참조)입니다.

 

전주 교구민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하여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선열들의 숨결이 감도는 땅에 숨 쉬고 있음을 대단한 긍지로 여깁니다. 전동성당, 숲정이, 초록바위, 초남이, 서천교, 그리고 치명자산 등 전주 지역만 해도 수많은 장소가 순교자들이 흘린 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순교자들이 묻혀계신 치명자산은 말없는 가운데 이 모든 역사를 외쳐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치명자산의 한 자락 끝에 교구의 중심 터를 마련하였습니다. 동시에 교구 설정 70 주년을 맞이하여 우리가 달려 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달려야 할 길을 내다보면서 새로운 역사의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는 길목에서는 수많은 선현들을 만납니다. 그분들 가운데서도 순교자들은 가장 뚜렷한 모습으로 우뚝 서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순교자들의 후예임을 내세우며 조상 자랑만 하고 있으면,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그분들처럼 우리도 우리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이신 그분을 바라보며 앞을 향해 달리기 위함입니다. 달리기 위해서는 목표, 꿈, 비전, 마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방금 들은 에제키엘서 47장은 그것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에제키엘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주님의 성전 오른쪽에서 가늘게 흘러나온 물이 점차 큰 강물을 이루어 사막을 적시고, 죽음의 바다인 사해의 물까지 단물로 바꾸며, 가는 곳마다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천사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 물은 동쪽으로 가다가 메마른 벌판으로 흘러내려 사해로 들어간다. 이 물이 짠 사해로 들어가면 사해의 물마저 단물이 된다.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온갖 생물들이 번창하며 살 수 있다. 어디로 흘러 들어가든지 모든 물은 단물이 되기 때문에 고기가 득실거리게 된다.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생명이 넘친다.”

 

이 장면은 옛날 아주 먼 곳에서 한 번 있었던 일이 아니고, 오늘 여기서 나에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약성서의 한 대목을 읽으신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여러분이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루가 4,21).

 

성전 오른쪽에서 가느다랗게 흘러나온 물이 거대한 강이 되어 온 사막을 적시고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물로 바꾸어주었다고 하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겠습니까? 그런 물이 흘러나오는 성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히브리서 10장 처음 부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구약성서)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고 실체가 아닙니다”(히브 10,1). 에제키엘이 본 성전과 거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그림자라면 실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에제키엘이 본 성전은 그림자일 뿐, 그 실체는 이제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에제키엘이 보았던 것과 같이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 나와 모든 것을 다시 살려 주는 물은 그림자일 뿐, 실제로 사람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꿔주시는 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 장면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군인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 지금까지 많은 교부들과 성서학자들은 이 피와 물이 성령을 가리킨다고 해석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바쳐 우리에게 건네 주신 성령이야말로 모든 죽은 것들을 다시 살게 해주는 물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죽음에 갇히셨다가 성령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증인>. 순교자란 바로 이 증인이라는 말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목숨을 바쳐야만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고 그 힘으로 사는 사람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 간에, 더불어 사는 사회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의 순교자, 이 시대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주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이, 곧 사도라고도 부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의 장면을 우리는 복음에서 들었습니다. 이 역시 오늘 우리 각자에게 해당되는 장면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제자들을 보내시며 제자들이 그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넣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에제키엘이 본 장면, 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온 물,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은 거기에서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서도 흘러나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사가는 여기에 해설까지 붙였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 때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으셨던 것이다”(요한 7,39).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교구설정 70주년을 기해서 우리는 치명자산의 한 자락에 자리 잡은 교구 본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힘, 성령의 능력을 지니고, 죽음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오늘의 세상풍조에 생명의 물이 흘러들어가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20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오늘 나에게까지 흘러온 물이 점점 더 널리 퍼져나가게 해야 하겠습니다. 살림살이가 특히 어려운 이 시기에 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교구민이 하나가 되어 온갖 희생과 정성을 기울여 주신 데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마련하신 이 터전은 앞으로 언제까지나 남아 여러분의 희생과 정성을 증언하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더욱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한 도장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더욱 하나가 된 우리가 이제부터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가지고 함께 달리면, 에제키엘이 본 장면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 사람의 꿈은 물 한 방울처럼 허공으로 증발해 버릴 수가 있지만, 많은 사람의 꿈과 생각이 한데 모아지면, 그것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 만드는 거대한 강물처럼, 땅의 얼굴을 바꾸는 힘으로 나타납니다. 이제부터 펼쳐지는 새 역사의 여정에서도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히브리서 12장의 한 대목을 깃발 삼아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근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내시고 지금은 하느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히브 12,1-2).
  •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100 우편번호 : 55036
  • 대표전화: 063-230-1004 | 팩스: 063-230-1175 | 이메일: catholic114@hanmail.net
  • copyright 2015 천주교 전주교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