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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2007 겨울-어떤 상본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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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26 00:00 조회3,6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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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년 전, 로마에 갔을 때 한 독일인 젊은 사제가 자기 서품 기념이라며 내게 준 상본이 한 장 있다. 그 이후 이 상본은 내 기도서에 끼워져 가끔 내 시선을 스쳐 가곤 했지만, 크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이 상본이 내게 확 다가와 내가 본 그림 가운데 가장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림이 주는 감동이라면 렘브란트의 그 유명한 탕자와 아버지가 최고였는데, 이 그림을 다시 발견하고 나니 이거야말로 그리스도교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당장에 화구상에 가서 물감 등 필요한 물품을 사다가 실로 오래간만에 그 작은 상본을 큰 종이에 옮겨 그렸다. 앞으로도 나는 어느 정도 마음에 들 때까지 이 그림을 계속 그리게 될 것 같다.

 

이 그림에는 십자가가 보통보다 크게 그려져 있고, 예수님은 거기 못 박히신 모습이 아니라 그 위에서 한 사람을 껴안고 계시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양 팔로 감싸안고 계시고, 그 사람은 허리를 안긴 채, 기쁨과 승리 그리고 마침내 얻은 자유의 몸짓으로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불길처럼 붉은색으로, 사람은 그와 반대인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다. 마치 불길이 얼음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별로 눈에 띠지 않다가 이제야 갑자기 내 눈에 확 들어왔을까? 그것은 아마 내가 이만큼 나이가 들었고 그동안에 사람과 하느님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배경 위에, 그것이 눈에 띠던 그 날, 미사의 성경 말씀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듯하다.

 

그날 성경 대목은 이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루가 12,49-50, 공동번역성경)

 

예수님께서 세상에 지르러 오신 불은 사랑의 불, 성령의 불이다. 그리고 이 불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인간을 위해 피범벅이 되실 때, 곧 피세례를 받으실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십자가 죽음은 그분에게도 고통의 극한을 의미해서, 거기 달리시기 전부터 땀구멍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공포와 고뇌를 겪으셨지만, 결국 그 고난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셨고, 그렇게 해서 인간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더 할 수 없이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요한의 말 그대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사랑의 불을 지르는 데 성공하셨고, 사랑이신 성령을 건네주실 수 있었다. 요한은 이를 이렇게 증언한다.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이제 다 이루었다.’ 하시고 고개를 떨어뜨리시며 <숨을 거두셨다>.”(요한 19,30) 여기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번역된 말을 더 정확하게 옮기면 <영을 건네주셨다>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비로소 성령을 사람들에게 건네주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신 당신의 목적을 실현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 8. 16 참조)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불길을 세상에 댕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멀지 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신다”(루가 2,16)고 한 세례자 요한의 예고가 비로소 실제로 나타났다. 그런데 요한의 행적에서 보듯이 세례는 본래 요르단 강물에 들어가 거기 푹 잠기는 것, 온몸에 물을 뒤집어쓰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시되 요한과는 달리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불에 잠기게 하는 방식을 쓰시게 될 것이라면, 남에게 그것을 베푸시기 전에 먼저 그분 자신이 성령과 불에 잠기고 그것을 말하자면 뒤집어쓰셔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성령과 불이란 같은 의미이고,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불길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뒤집어쓰셨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성령(불)을 건네주실 수가 있게 되었고, 실제로 그때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건네주셨던 것이다.

 

한편, 고장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랑할 능력이 망가져서 흔히 사랑과는 정반대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새 마음, 새 기운을 받을 때까지는 가까운 사람과도 흔히 얼음처럼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된다. 그러므로 이 그림 속의 인간은 얼음을 닮은 파란 색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다가 활활 타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불길에 닿을 때 비로소 얼음은 녹고 사랑의 열기가 그 속으로 스며들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 안에 하늘의 불길이 댕겨지고, 그렇게 해서 인간도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 사랑의 나라 색깔을 지니고 그 하늘나라로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십자가. 예수님께서 피의 세례를 받으셨던 자리. 그렇게 해서 사랑의 불길을 세상에 댕겨 주셨던 자리. 이것이 그리스도 신앙의 정점이다. 사랑의 결핍증으로 죽어가고 있는 우리 인간들에게 하느님께서 구원의 깃발처럼 치켜세워 주신 것도 바로 이 십자가다.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 생활을 벗어나 에집트를 떠나던 때만 해도 그 해방감과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계속된 사막 여행은 그 기쁨의 기억마저 완전히 지워버릴 정도로 혹독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다. “어쩌자고 우리를 에집트에서 데려내 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죽일 작정입니까?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습니다. 이 거친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민수 21,5) 그들의 이런 불평에 하느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셨고, 그것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이자, 백성들은 모세에게 와서 잘못을 고백하며 뱀이 물러가게 기도해 주시라고 간청한다. 모세가 기도드리자 하느님께서 대답하신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 놓고 뱀에게 물린 사람마다 그것을 쳐다보게 하여라. 그리하면 죽지 아니 하리라.” 그래서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 기둥에 매달아 놓았고 “뱀에게 물렸어도 그 구리뱀을 쳐다본 사람은 죽지 않았다.”(민수 21,9)

 

우리는 인생이라는 사막 길을 걷고 있다. 지금은 옛날처럼 불뱀은 아니지만, 그것 못지않게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위험은 여기저기 깔려 있다. 상처. 어렸을 때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일생 아픔으로 남는 일도 있고, 그 뒤로도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이런 우리에게 가장 좋은 처방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십자가. 그것을 쳐다보는 일이다. 그러면 상처가 아물고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물러간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거기서 사랑의 불길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그분의 품속에 안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그 불길을 더욱 분명히 느끼고, 소화 데레사와 함께 확신에 차서 외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세상의 온갖 죄악을 다 저질렀다 해도,

 

하느님께 대한 나의 신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라는 용광로 앞에서는

 

아무리 많은 죄도 물 한 방울에 불과할 테니까요.

 

 

이제야 나는 찾아냈습니다.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을

 

언제나 내가 기댈 수 있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내 안의 모든 것, 내 약점마저 사랑하는 마음

 

밤이나 낮이나 나를 떠나지 않는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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