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백합] 2호 (2003년 가을) - 유요안 이루갈다를 통해 본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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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26 00:00 조회2,98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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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요안 이루갈다를 통해 본 약속
“제가 전주로 온 후 평소에 항상 마음에 두고있던 일을 마침내 이루어, 9월과 10월에 저희 둘이서 맹서 하였습니다. 이후 4년을 함께 지내면서도 실상은 남매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유혹을 당했고, 열 번 정도는 그것이 특히 심하여 하마터면 무너질 뻔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그것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일을 궁금히 여기실 것 같아 이렇게 적어 보내 드리오니, 이 글을 보시면 저를 보신 것으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1801년 9월 27일, 이순이 루갈다가 죽음을 바로앞두고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드린 편지의 한 대목이다. 원래 유중철 요안과 이순이 루갈다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는 수도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신앙이 도입된 지도 몇해 되지 않은데다가 박해가 한창인 당시에 수도원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당시 사회는 적령기에 이른 젊은 남녀가 결혼을 하지않고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 젊은이의 원의를 알고있던 주문모 신부님의 주선으로 유요안과 이루갈다는 형식상 결혼식을 올리고 사실상은 동정을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이렇게해서 다블뤼 주교님의 표현대로 ‘한국 순교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진주’의 삶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동정부부 진주에 비유
그런데 다블뤼 주교가 이 동정부부를 ‘진주’에 비유한 것은 대단히 적절한 것 이었다. 양식진주를 만드는 과정은 잘 알려져 있다. 다른 조개껍데기를 구슬모양으로 만들어 진주조개 속에 넣으면 조개의 상피세포가 자기 몸 속에 들어온 이 이물질을 둘러싸고 진주층을 분비하여 아름다운 진주를 만드는 것이다. 진주조개편에서 볼 때 자기 몸 속으로 들어온 이물질은 말 그대로 이물질일 뿐 원래 자기 몸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역겨워 바로 뱉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물질로 그것을 계속 감싸서 마침내 놀라운 구슬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진통의 과정을 거쳐서 아름다운 진주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조개는 죽어도 진주는 그 아름다움과 함께 오래 남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요한 12,25). 예수님의 이 말씀을 진주조개는 그 나름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동정부부는 자유를 지닌 인간으로서, 하느님 앞에 그리고 서로 상대방에게 한 약속에 끝까지 충실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뿐 아니라 실제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진리를 감동적으로 살아내었다. 진주조개에게 있어서 이물질을 몸 속에 받아들인 이후 자기 내부의 진수를 거기에 쏟아붓는 과정은 동시에 자신의 생명을 깎아바치는 죽음의 과정이기도한 것처럼, 동정부부에게 있어서 서약 이후의 삶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 할 정도로 고통스런 것 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삶은 점점 더 빛을 내는 모습으로 바뀌고 사랑 또한 더욱 순수하고 굳건해져갔다.
이루갈다가 죽기 약 한달 전에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한다. “작년 12월에는 유혹이 극심하여 불안한 마음이 마치 살얼음을 밟고 서 있는 듯, 바닥모를 구렁텅이 끝에 서있는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유혹을 이길수있게 해 주시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어 가까스로 몸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이 일을 겪고나니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강철과 바위처럼 굳건해지고, 미쁨과 사랑이 태양처럼 확실해졌습니다.” (1801년 11월경 두 언니에게 쓴 편지에서)
약속은 풀릴수 없는 끈
약속(約束). 끝으로 묶는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렇다 약속의 당사자들은 풀릴수 없는 끈으로 묶여 하나가 된다. 그런데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다른 모든 하나됨의 토대가 되는 약속은 남녀의 결혼이다. “처음부터 창조주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는 것과 또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몸을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마태 19,4-6).
과연 창조주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남자와 여자의 몸과 마음의 구조자체를 둘이 합해서 하나를 이루도록 꼴지우셨다. 그래서 남자가 자기 아내가 될 여인을 처음 보았을 때,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 하고 외치며 기쁨의 황홀경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첫 기쁨은 불씨처럼 가꾸어야만 지속되고 점점더 활활 타게되는 것이어서, 방치 해두거나 다시 “너는 너 나는 나”의 마음으로 돌아가버리면, 한순간의 꿈으로 끝날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여기에서야말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될 것이다”(요한 12,25) 하신 말씀의 진리가 에누리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초의 부부는 다음 단계에서 서로 상대방을 고발하는 처지로 바뀌었고, 그렇게해서 벌어진 틈은 사회 전반으로 퍼져 인류 전체가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향해 치닫게 되었다. 바벨탑이야기(창세기 11장)는 그 과정의 결론이다.
이런 추세가 거대한 바다처럼 큰 세력을 이루어 마냥 흘러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다시 하나를 향해 흐르기 시작한 것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리시면서 부터였다(사도 2장).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패망의 바다에서 건져내시는 일은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완성의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해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지고,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그 엄청난 능력을”(2고린 4,7 참조) 지닐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동정부부에게서 우리 자신과 똑같이 질그릇처럼 연약하고 부스러지기 쉬운 몸을 지녔으면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능력이 실제로 활동함을 본다. 부부 사이의 약속이 쉽게 깨어지고, 그렇게해서 사회 전체의 결속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지금,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의 이 능력을 받으면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바오로 사도와 함께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는것을 안다. “우리는 아무리 짓눌려도 찌부러지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으며, 궁지에 몰려도 빠져 나갈 길이 있으며, 맞아 넘어져도 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몸 안에 살고있다는 사실 입니다”(2고린 4,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