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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합 24호>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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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ecil 작성일09-04-08 00:00 조회3,6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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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순 마리아 할머니. 95세이시다. 연세를 보면, 우리 시대와는 사뭇 다른 세상을 살아오셨음을 바로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집안 형편은 넉넉한 편이어서 하자면 못 할 것은 없었지만, 여자를 공부시키면 일생을 망친다는 당시의 통념에 따라 학교 공부는 전혀 못하셨다. 그렇지만 그런 시대에도 처녀 시절에는 양장을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이북 대부분의 지역을 두루 구경하고 중국까지 가서 관광을 하셨다니 그 점은 또 놀랍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좀 늦었다 할 19세쯤에 강원도 어느 대갓집으로 시집을 가셨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9일장을 치렀고, 시어머님 때는 5일장을 했으니, 그 댁의 가세를 짐작할 만하다. 손님 접대 등을 위해서 담그는 술독이 큰 광을 가득 채웠고, 그런 일을 주도하자면 안주인이 술맛을 알아야 한다며 시어머님이 강요하다시피 해서 술까지 배우셨다. 남편은 동경 유학에서 갓 돌아온 유망한 청년. 처음부터 중앙정부 고위 관리로 발탁되어 어떤 부서의 책임자로 있었다. 결혼 후 4-5개월 쯤 되었을 때, 남편의 직장 따라 서울에 가서 살았다.


그런데 첫 아기를 임신해서 몸이 무겁던 어느 해 겨울, 남편 수하 직원의 부인이 양식도 땔감도 없어 굶주린 채 냉방에서 앓고 있다는 소식을 누군가가 전해 주었다. 당장 마차에다 장작을 가득 싣고 쌀을 서너 말 퍼서 그 집으로 달려갔다. 곧바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그러다가 부엌에서 한 번 넘어졌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얼마 후 아기를 낳아보니 이미 죽어 있었다. 한 번 이런 일이 있고 나서는 그 뒤에도 계속 아기를 유산하게 되었다. 몇 해 동안 그런 상태가 계속되던 어느 날 시어머님이 불러 말씀하셨다. “어멈, 우리 가문에 자손을 이을 수 있도록 저 사람에게 다른 아내를 얻어주어야 하지 않겠나?” 새댁 티도 벗지 못하셨던 할머니는 서슴없이 대답하셨다. “그래야지요.”
 


이 말과 함께 그 집을 나와 주위에서 주선해 주는 대로, 다른 집에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 가서 보니 어느 미국인 은행장 집이었고, 빨래방 일이 그의 몫이었다. 그런데 그 집에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약 2년 후, 그 미국인이 본국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게 되었는데, 빨래방에서 워낙 일을 잘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는지, 함께 미국에 가자고 했다. 거기에 가서 일을 하면 이 나라보다 돈도 더 잘 벌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여인은 따라 갔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식도 없는데 남의 나라에 가서 돈을 많이 번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어서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완강하게 거절하니, 그러면 구경이라도 시켜 줄 테니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따라갔다. 미국 구경 잘 하고 재미있는 데도 많이 가 보았지만 거기에서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일본을 거쳐 돌아왔다. 와서는 어머니의 고향인 전주로 내려와 살았다. 새 부인을 얻은 옛 남편에게서 다시 만나자며 전화가 오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그때마다 “그러면 못 써요.” 하는 한 마디로 끝내셨다. 그러면서도 옛 시댁에 초상이 났다거나 하는 큰 일이 생기면 올라가서 그 일을 다 보아주고 내려 오셨다.
성모병원 빨래방이 그분의 직장이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는 큰 집을 하나 빌려서 시골에서 전주에 와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과 전주에 살아도 아주 어려운 학생들 30-40명을 데려다 기숙을 시켰다. 그들 가운데에는 여러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학생들뿐 아니라, 누구든 주변에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는 것이 이분의 삶이자 유일한 보람이었다. 모시고 산 친정어머님께 대한 효성도 지극해서 신문에 그 이야기가 실리기도 하였다. 지금 사는 쪽방 한 칸은 40년 전부터 살아온 곳이다. 그 좁은 방을 고집하는 이유는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더 큰 집에 모시지 못한 것이 늘 후회스럽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일하던 성모병원에서 나올 때 받은 퇴직금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이웃 사람이 잠깐 빌려달라는 바람에 주었다가 떼였다. 이 대목을 말씀하실 때도 할머니께서는 남 얘기하시듯 섭섭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동안, 남의 밭 매기, 건축 현장에서 일 돕기, 공공 취로사업 현장 등을 찾아다니시며 말씀대로 “안 해 본 일이 없이” 다 하셨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은 대부분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쓰셨다.

혼자 사시는 95세의 노인. 그렇게 생각하면 몸져누워 계시거나 아니면 하루 종일 쓸쓸히 앉아 먼 산만을 바라보고 계실 것 같은데, 실상은 지금도 놀러 오시는 분들로 작은 방이 늘 그득하다. 그분이 계시는 곳에는 남에게 베풀기만 하시는 그분 특유의 훈김에다가, 반듯하게 살아오신 그분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주옥같은 조언을 듣는 것도 큰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연세에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가셔서 일을 보시고, 동네 반 회합에도 꼭 참석하신다.  95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시고, 옛날 대갓집 맏며느님이셨을 때의 그 기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신다. 그리고 지금은 나라에서 주는 극빈자 생활 보조비로 사시지만, 당신을 위해서는 아주 조금만 쓰시고 당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웃 공사판이라도 찾아가 일꾼들에게 음료수 등을 나누어 주시는 데에 대부분의 돈을 쓰신다. 그 옛날 잘 사시던 때와 똑같이 남에게 베푸시니 그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여유롭고 넉넉한 모습이다. 살림살이, 가재도구를 정리해 놓으신 모습은 빈틈없는 그분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웃을 찾아보시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시고, 산보삼아 동네도 한 바퀴 돌아보시고, 미사 뿐 아니라 성당에서 벌이는 다른 활동에도 참여하시는 등, 바쁜 나날이지만, 방에 계실 때에는 텔레비전을 평화방송에 고정시켜놓고 항상 그것만 보신다. 할머님은 평화방송을 평화성당이라고 부르신다. 실제로 그분에게는 그것이 성당이어서 거기 미사가 거행되는 장면이 나오면 성당에 계실 때와 똑같이 십자 성호를 긋고 합장한 자세로 참석하시며 기도도 따라 하신다. 미사뿐 아니라 다른 모든 방송물도 이분에게는 성당에서 듣는 강론말씀이다. 서울에서 결혼생활 하시던 때 이웃을 따라 명동성당에서 교리를 배우고 세례성사를 받은 이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이분의 삶을 이끌어주는 빛이고 어떤 사태 앞에서도 특유의 밝은 모습을 견지하게 하는 힘이 되어왔다.


우리 지역의 극빈자들이나 경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큰 어려움 속에 사시는 분들을 찾아보며 필요한 도움을 드리기 위해,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가정방문실이 있다. 해마다 성탄을 앞 둔 시기에 날을 잡아 수녀님들과 함께 어려운 분들 가운데 몇 분을 찾아뵙곤 했는데, 그렇게 해서 이번에 만난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이 마리아 할머님이었다.
나는 이 할머님의 말씀을 들으며 말로 그릴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종횡무진으로 하신 말씀 가운데 어떤 줄거리가 됨직한 것만 뽑아서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애초에 전하려 했던 느낌이 제대로 전해지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분의 생생한 모습, 눈빛, 말씀하시는 품에서 느껴지는 확신과 당당함, 무엇보다도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이렇게 많은 변화 속에서 사시면서도, 본래부터 가지고 계셨을 그 기품을 조금도 잃지 않고 지켜오셨으며, 연세와 함께 오히려 그 폭과 깊이를 더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큰 경탄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마치 인간의 원형을 찾아낸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각박하다는 세태에 밀려 망가지기 전, 사람의 본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미국발 금융 위기에다 국내의 문제까지 겹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의 구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타락한 인간상을 한탄하고 세상이 못 쓰게 되었다고 슬퍼한다. 문제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온갖 풍상을 겪고도 사람의 본래 모습과 기품을 용케도 간직하고 계신 분들이 뜻밖에도 많다. 그분들이 잘 나타나지 않고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은 홍보매체가 그분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고, 오히려 나쁜 소식,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더 쉽게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그런 점에서 더 자주 신문이나 방송을 타기 때문이다.
 


찬찬히 보고 깊은 대화가 열려 내면의 세계를 나눌 수만 있다면, 우리 주변에 놀라운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많다. 바깥 세상과 생활환경이 아무리 극적으로 변해도 인간의 가치는 그 내면, 그 정신에 있기 때문에, 어떤 처지에서도 자신의 본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지켜 낸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시대 영원한 가치의 증인들이다. 그런 이들을 만나면 우리는 히브리서의 저자와 함께 새로운 빛과 힘을 찾아낸 기쁨을 안고 이렇게 외치게 된다.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무거운 짐과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생각하며 부끄러움도 상관하지 않고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내시고 지금은 하느님의 옥좌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죄인들에게서 이렇듯 심한 미움을 받으시고도 참아 내신 그분을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지치거나 낙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히브 12,1-3).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을 걸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동안, 한낮의 태울 듯한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구름기둥을 보내주셨다. 오늘 새 이스라엘인 우리가 세상이라는 사막을 걸어 영원한 도성 하늘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성실하게 믿는 이들을 많이 보내어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게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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