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

Home > 글모음 > 글모음

SNS 공유하기

<쌍백합 28호>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11-09 00:00 조회3,545회 댓글0건

본문

주님! 해외선교사 파견 미사입니다.
골롬반회에서 운영하는 한 달 간의 연수를 마치고 이제 떠나실 수녀님, 수사님, 신부님, 그리고 몇몇 교우들에게 주님께서 적절히 무장을 시켜 보내주십사 하고 새삼 간청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실상 바다 건너 먼 땅을 향해 가는 분들만이 아니라, 이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심지어는 함께 사는 가족에게까지, 당신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우리 모든 신앙인들을 함께 생각하며, 그들을 당신의 무기로 무장시켜 주시기를 청하는 마음도 같이 있습니다. 

1985년에 사제품을 받으신 우리 교구의 한 신부님도 골롬반회의 준회원 자격으로 해외에 파견되기 위해서 이번의 연수회를 마치고 다른 분들과 함께 이 자리에 계십니다. 이 신부님이 제일 연장자이신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분들도 거의 모두 종신서원이나 사제품을 받으신 지가 꽤 오래 되신 분들이십니다. 그만큼 각자 주님의 일꾼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일해오신 분들이지요. 모여 있는 이분들을 흘끗 보고 성당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주님! 복음선포를 위해 제자들을 파견하시던 때 들려주신 당신의 심정과 말씀이 조금은 제 마음속에 옮겨오는 것을 느낍니다.   

- 그 뒤 주께서 달리 일흔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 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말라”(루가 10,1-4). -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지금 제 마음도 조금은 그렇습니다. “어린 양” 이들은 물론 수도자로서, 사제로서, 신앙인으로서,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이고, 그동안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낸 말하자면 백전노장들이니,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을 것입니다. 양이라면 어미 양이겠지요. 하지만 지금 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제품을 받던 40여 년 전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느낌에는 늘 어린 양일 뿐입니다. 그런 저를 비추어 보면 이분들 가운데에서도 같은 심정을 가진 이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들이 파견될 땅과 문화, 기후 풍토, 언어, 해야 할 일, 극복해야 할 어려움 등을 생각하면,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신 주님의 심정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깊은 측은지심, 불쌍한 마음이 드신 주님께서 그들을 준비시키신 방법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말라.” 그 반대가 상식에 맞고 누가 보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주머니는 그 동안 저축한 것까지 두둑하게, 비상식량은 더 많이, 그리고 옷과 신발도 여벌을 충분히 챙겨가지고 가라. 거기 가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아쉬울 테니.”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찌하여 정 반대의 주문을 하십니까? 주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따랐다가 여비가 떨어져서 도중에 꼼짝달싹도 못 하고, 심한 경우 굶어 죽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런 저의 항의에 당신께서는 골리앗을 상대로 어린 다윗이 싸우던 장면을 떠오르게 하시는군요. 

- 사울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힌 다음,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혔다. 그리고 자기 칼을 다윗의 군복에 채워 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것을 입어 본 일이 없었으므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이런 것은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하고는 그것을 모두 벗어 버렸다. 그리고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집어 들고 개울가에서 자갈 다섯 개를 골라 목동 주머니에 넣은 다음 돌팔매 끈을 가지고 그 불레셋 장수 쪽으로 걸어갔다. 불레셋 장수도 방패당번을 앞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다윗에게 다가 왔다. 불레셋 장수는 다윗을 건너다 보고 볼이 붉은 잘생긴 어린 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습게 여겨, “막대기는 왜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리고 불레셋 장수는 다윗에게 을러메었다. “어서 나오너라. 네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그러나 다윗은 불레셋 장수에게 이렇게 응수하였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어 주셨다. 나야말로 네놈을 쳐서 목을 떨어뜨리고 네 시체와 불레셋 전군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모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하에 알리리라.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야훼께서 몸소 싸우시어 네놈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불레셋 장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다가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불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리하여 다윗은 칼도 없이 팔매돌 하나로 불레셋 장수를 누르고 쳐죽였다(1사무 17, 38-50). -

“네가 나가 저 불레셋 놈과 싸우다니,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싸움으로 몸을 단련해 온 자인데, 너는 아직 나이 어린 소년이 아니냐?”(17, 33) 어린 다윗이 맞서 싸우겠다는 상대는 누군가? “그는 갓 출신으로서 장신이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쓰고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오천 세겔이나 나갔으며, 정강이에는 놋으로 만든 정강이받이를 찼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 그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 굵었고 창날은 쇠로 되어 있었는데 그 무게는 육백 세겔이 넘었다”(17,4-7). 사울이 보기에 이런 골리앗 앞에 다윗은 그야말로 이리떼와 맞서 싸우겠다고 나서는 어린 양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우기는 다윗을 보내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도 자신의 갑옷과 투구, 그리고 칼을 채워주는 사울의 조치는 극히 상식적인 것이었습니다. 다윗도 상대방이 쓰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해 보았지요. 하지만 결국에는 무기가 아니라 야훼의 이름에 의지하기로 하고는 목동으로서 평소에 쓰던 돌팔매만을 가지고 적장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야훼께서 몸소 싸우시어 네놈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골리앗 앞에서 선언하는 다윗의 이 말은 사탄의 세력에 맞서야 할 당신의 정신에 칼처럼 꽂혔습니다. 당신께서도 “요르단강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돌아오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 사십 일 동안”(루가 4, 1) 악마와 대결하실 때, 그들을 쳐 이기기 위한 무기로 “세상 모든 왕국”을 떠올리시며 그들과 똑같은 “권세와 영광”을 쓰는 것이 어떨까 하는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고심하셨던 적이 있었지요. 당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무서운 세력으로 덮쳐오지 않았다면, 그것이 “유혹”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착각에 빠질 수 있었던 그 위기의 순간 당신을 구해 준 것은 “성령의 칼”(에페 6,17)인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기대어 결국 그것이 “거짓말의 아비”(요한 8,44)가 던져놓은 함정일 뿐임을 깨닫고, 그 무기로 악마를 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리떼를 상대로 대결하기 위해서 나갔던 당신의 제자들이 어떤 전과를 올렸는지에 관해서 성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 일흔두 제자가 기쁨에 넘쳐 돌아와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까지도 복종시켰습니다” 하고 아뢰었다. 예수께서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너희에게 뱀이나 전갈을 짓밟는 능력과 원수의 모든 힘을 꺾는 권세를 주었으니 이 세상에서 너희를 해칠 자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보다도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을 받아 기쁨에 넘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루가 10, 17-21). -

다윗은 <야훼의 이름을 믿고> 싸워 골리앗을 이겼듯이, 다윗의 자손이신 당신의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까지 복종시키고 쫓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제자들을 떠나보내실 때까지만 해도, 당신께서는 이 사람들이 과연 해낼까 하는 일말의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으셨겠지요. 그만큼 그들이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당신의 기쁨은 더 컸습니다.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무기는 이 세상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당신의 이 찬미가를 듣고 있노라면 당신의 정신을 가장 충실히 이어받은 바오로 사도의 말이 떠오릅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성서에도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없애 버리고 똑똑하다는 자들의 식견을 물리치리라’ 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고 학자가 어디 있습니까? 또 이 세상의 이론가가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1고린 1,18-21).

마르코는 당신께서 열두 사도를 뽑으시는 장면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마음에 두셨던 사람들을 부르셨다. 그들이 예수께 가까이 왔을 때에 예수께서는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시고 당신 곁에 있게 하셨다. 이것은 그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3-15).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당신께 와서 소원이 성취되면 떠나갔습니다.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군중 속에서 당신께서는 몇 사람만을 뽑아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당신 곁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의 말씀을 들려 주시고, 군중과는 달리 그 깊은 뜻까지 일일이 풀이해 주심으로써 당신의 정신, 당신 안에 있는 그 힘, 성령을 그대로 이어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후에 “그들을 <보내어>(사도로 삼아)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말씀이신 당신 <곁에 있고> <말씀 안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당신의 <정신>을 이어받고, 후에 당신의 <일>을 물려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신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주님의 이름, 당신의 영, 성령. 보이지 않는 그 힘. 보이지 않아서 복음선포자 자신도 보이는 무기, 손에 잡히는 수단에 더 기대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하게 들 수 있는지. 당신께서는 몸소 겪어서 잘 아십니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수단과 무기를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복음선포자가 참으로 기대야 할 무기, 성령의 칼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문제임을 당신께서는 잘 아십니다. 그러다가 아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도 당신께서는 잘 아십니다.
주님, 저희가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저 밖에 있는 이리떼만이 아니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저희 안에 있는 늑대임을 당신께서는 잘 아십니다. 이 시대 이 땅에서는 바깥의 원수보다 안의 그것이 훨씬 더 무섭습니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에페 6,12). 악령은 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 속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므로 주님, 당신의 종들로 하여금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게”(에페 6,11) 하여 주십시오. 바오로 사도께서 알려주는 6가지 무기 가운데에서도 단 하나의 공격 무기이며 당신께서도 악마와 맞서 싸우실 때 쓰셨던 그 성령의 칼, 하느님의 말씀을 언제나 외우고 기억하여 전사의 전동 속에 들어있는 화살처럼 늘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이들이 승리를 거둘 때마다 당신과 함께 온 교회가 기쁨에 넘쳐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100 우편번호 : 55036
  • 대표전화: 063-230-1004 | 팩스: 063-230-1175 | 이메일: catholic114@hanmail.net
  • copyright 2015 천주교 전주교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