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백합 29호> 지구 - 무한한 우주공간을 외롭게 항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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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ecil 작성일10-11-09 00:00 조회3,5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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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달에서 본 지구의 모습입니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천체라면 해와 달, 그리고 까마득하게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별만을 보고 살던 우리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모습을 처음 본 다음부터, 세상을 보는 우리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이 땅도 외계에서 보면 달처럼 떠올랐다가 지는 우주 속의 작은 천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해와 달과 별을 품에 안고 있는 우주는 너무나 광대해서 크기의 단위도 보통 은하계로 통합니다. 우리가 속한 은하계만 해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로질러 가는 데에는, 1초 동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도는 빛으로도 10만 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 태양 정도의 별은 천억 개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은하계가 또 천억 개나 있다니 그 모두를 품고 있는 우주의 크기는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이 무한한 공간 속에서 생명체가 있고, 더구나 인간과 같은 고등 생명체가 있는 곳은, 지금까지의 과학이 아는 한, 이 지구 말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광대한 우주 공간은 칠흑처럼 까맣습니다. 거기에서 지구만 찬란한 색깔을 한 보석처럼 빛납니다. 우리는 인간을 싣고 달까지 간 로켓과 우주 공간에 띄워놓은 천체망원경 덕택에 그런 모습을 일상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구가 이렇게 파란 보석처럼 빛나는 것은 생명이 거기 있음을 말해줍니다.
모든 생명체들, 그리고 그 맨 꼭대기에 우리 인간을 태우고 있는 지구는 무한한 우주 공간을 외롭게 항해하고 있는 조각배입니다.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런데 이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너무 멀면 얼어버리고 너무 가까우면 타버립니다. 우리의 위성인 달이 지구로부터 너무 가깝거나 멀어도 조수 간만의 차이가 적절하지 않아 물의 흐름이 달라져 생태계가 지탱되지 못합니다. 거리뿐 아니라 그 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 지름이 달보다 400배 큰 반면, 태양은 달보다 400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는 해와 달의 겉보기 크기는 거의 같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달의 중력이 꼭 알맞게 조정되어 지구의 생명체들에게 물을 제대로 공급하는 데에 중요한 몫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의 눈에나 드러나는 현상 가운데 몇 가지 예일 뿐이고, 이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은 이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확률로 보아서는 몇 백만, 몇 천만 분의 일밖에 안 되는 요인이 용케 맞아떨어지고, 그런 요인들이 또 수없이 많이 모여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지구환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과학자는 이 놀라운 현상을 보고 <우주가 터트린 대박>(폴 데이비스)이라고 불렀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그렇게 많이 모여 생물이 살아가고 인간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이루어진 것 자체가 기적처럼 놀랍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구에 있는 수백, 수천만의 생물들은 하나의 줄로 이어져 있어서, 그 고리 가운데 어떤 것이 끊어지면 나머지도 큰 위협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추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안에 생물종의 3분의 1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과학자들의 예측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를 위협하는 까다로운 병들에 대한 약은 거의 모두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체 속에서 얻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생물들이 사라지면, 앞으로 어느 날, 정말 무서운 병이 발생했는데,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비밀을 간직한 생물이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진 다음이라면, 그 병을 저지시킬 방법을 영원히 찾을 수 없고,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희생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과 다른 생물들 사이의 끈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말해주는 수많은 예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프란치스코 성인이 생각하신 것보다 훨씬 더 물리적인 의미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같은 생명줄로 이어진 형제자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명체들과 우리 인간을 태우고 있는 이 작은 배는 너무나 아슬아슬한 모습을 하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주위의 조건이 조금만 변해도 이 배는 산산조각이 나거나 타거나 얼거나 말라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배를 사랑하고 잘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조각배에 몸을 싣고 항해하는 뱃사공이 자기 목숨이 걸려있는 배를 아끼고 돌보지 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탐욕스런 인간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원시림을 파괴하고 숲을 없애고 바다를 메우고 산하를 파헤칩니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인간들은 코앞의 편의를 위해서 자신이 타고 있는 배에서 널빤지를 떼어내 장난감을 만들고 있는 형국을 연출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인류는 제가 더럽힌 공기, 물, 파괴한 생태계 때문에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태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미 때가 늦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정신이 제대로 든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인류가 함께 타고 있는 배를 구하는 일에 모두 마음을 써야 한다며 이 일에 뛰어들어 외치고 있습니다. 서양 여러 나라들이 장비가 덜 발달했던 옛날에 만들어져서 규모가 별로 크지도 않은 댐을 헐고 보를 철거해서 자연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등, 그렇게나 많은 비용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때 미국의 부통령이었다가 지금은 지구 살리기의 전도사로 나선 엘 고어를 중심으로 만든 영상물 <불편한 진실>은 수많은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편한 진실>이라는 그 제목이 잘 말해주듯이, 지구와 거기 살고 있는 생물들이 놓여있는 큰 위험을 정확히 보고 알면, 우리 마음은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의 이익이나 편리함을 포기하고 불편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우리가 그런 불편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 자신의 생명이 중대한 위험에 놓이게 되고, 우리 자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큰 불편을 겪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이상 생존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오염된 세상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둘러 이런 이치와 진실을 받아들이고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 일은 아주 시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강을 재창조하겠다며 수백, 수천만 년에 걸쳐서 자연이 만들어놓은 물길을 따라 산하를 파헤치는 굴착기 소리. 그것은 법도 절차도 생략한 폭거이며, 이상하게 통과시켰다는 관계법령은 날치기라고 성토하는 소리. 이런 소리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2010년 3월 11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춘계 총회에서 이른바 4대강 사업에 관해 정부 측과 반대 측의 주장을 들은 다음, 이 일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그것이 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을 걱정하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불교계에서도 같은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고, 4월 3일에는 기독교 목회자 1천여 명이 또 같은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주요 종교계가 한 목소리로 4대강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그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일이 그대로 추진될 경우 그 폐해가 자연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하여 그 영향이 앞으로 수백 수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 세대뿐 아니라 앞으로 이 땅에서 살게 될 후손 대대로 그로 인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렵거나 무슨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은 흐르지 않으면 썩게 되어 있고, 흐르기 위해서는 막힘이 없고 바닥도 제대로 조성되어야 하는데, 엄청난 규모의 둑을 막고, 바닥을 파헤치면 그 자연스런 흐름이 방해를 받고 습지와 모래가 사라져 물이 정화되지 못하고 생명의 고리에서 한 부분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도 금년 평화의 날 담화에서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라>고 하시며, “인간이 하느님의 협력자로 행동하는 대신에 하느님을 대신한다고 자처한다면, ‘인간의 지배보다 더욱 폭력적인’ 자연의 반란을 불러오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인류사회는 근래에 들어 기후변화, 사막화, 오염물질을 포함하는 황사, 산성비, 그로 인해 잘 썩지 않는 낙엽, 줄어드는 꽃과 열매, 산불, 홍수, 가뭄, 우리나라의 여섯 배 크기로 태평양 한 가운데 만들어져 있는 쓰레기 섬과 그와 비슷한 섬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현상, 그 쓰레기를 먹은 물고기를 인간이 먹고 생기는 질병, 지구상에서 급속도로 사라져가는 여러 종류의 생물 등 대규모로 나타나고 있는 자연의 대반격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이 대반격은 그것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인간에게 원한을 품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그것이 잘 돌아가도록 그 안에 장치해 놓으신 법칙을 어긴 데 대한 자연스런 반응일 뿐입니다. 교통법칙을 무시하고 운전을 하면 누가 그 사람을 벌하지 않아도 스스로 교통사고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중력의 법칙을 어기고 고층 빌딩에서 뛰어 내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 영원한 진리, 법칙, 이 모든 말들이 우리말에서는 이처럼 다르게 나타나지만, 성서 속에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되는 로고스 곧 말씀이라는 한 마디로 나타납니다.
바로 그분께서 전 세계적으로 우리 가톨릭 교회라면 어디에서나 같이 읽고 묵상하게 되어 있는 오늘(2010.4.28.) 미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세상 끝날에 그를 단죄할 것이다”(요한 12,47-48).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성령을 보내 주신 때부터 세상 끝날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끝날에 살고 있고, 자연 속에 그 법칙, 로고스로 들어 있는 그 말씀이 그것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고 있습니다.
금년은 자연 진화의 법칙을 발견한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국제연합이 세계 진화론의 해로 선포한 해입니다. 그와 동시에 금년은 생물다양성의 해이기도 합니다. 하찮은 모습으로 잠깐 날아다니다가 죽는 파리와 우리 인간이 생명체로서의 기본 암호(DNA)에서는 거의 같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만, 살아있는 것들이 근원적으로는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암시하는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것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온갖 생물종, 그 다양성 사이를 이어주는 하나의 끈을 생각하게 하여,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넌지시 말해줍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진화론이 이제 더 이상 가설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받아들여야 하는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일각에서는 창조론이냐 진화론이냐 하는 식으로 이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대 가톨릭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는 피조물 안에 완성을 향해 갈 수 있는 능력과 경향을 심어 놓으심으로써 당신께서 이끌어가고자 하시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하신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영혼을 불어넣어 인간을 지어내시는 단계에서는 하느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는 하느님께서는 우주 만물과 대자연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자연환경의 문제가 우리 신앙인에게 더욱 민감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생명의 집이라 할 수 있는 자연환경의 문제는 종교나 신념체계와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 전 인류에게 똑같은 중요성을 띱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나 단체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4대강 사업 현장을 돌아보고 크게 걱정하며 세계적으로 연대하여 이를 저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2009년을 마감하는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지구 살리기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우리 대통령을 포함하여 100여 개국의 정상 등 192개국의 대표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또 현대과학기술을 손에 쥔 오늘의 인간이 그 힘으로 얼마나 무서운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가 확실히 드러난 오늘날, 인류 사회를 위해서 그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두고 숙고하기 위해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등을 중심으로 1999년에 세계 과학 포럼이 설립되었고, 그 네 번째 회의가 2009년 11월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렸습니다. 전 세계에서 600여 명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참여한 그 회의의 주요 결과를 의장 폐막 연설에서 간략하게 소개하였는데, 거기에 주로 두 가지가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첫째, 사회정치 상황이나 주변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다 해도, 과학은 그 고유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속성상 당장의 이익이나 실용가치만을 주로 생각하게 되어있는 (실용주의) 정치와는 달리, 과학은 그런 면도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과 함께, 자연을 지긋이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과 깊은 신비까지를 관조할 수 있는 (관상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 이 두 번째 특성을 포기한다면, 인간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의 방향과 기준을 잃게 될 것이다. 과학은 정치적 행동을 규제하고 선도하며, 정치에 토대와 방향을 제공해야 한다. 반대로, 과학이 정치에 맹목적으로 협력하거나 정치세력을 확대하고 연장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위험을 미리 알리고 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과학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둘째,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전 지구적으로 위기에 놓인 자연환경에 관해서 최소한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누구나 지녀야 할 윤리적 의무다.”
지구의 한 구석에서 저질러지는 반 생명, 반 자연, 반 환경적 행위는 그 영향이 곧바로 온 인류에게 미치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 가족의 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환경문제에 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인 자격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옳은 말입니다. 이제는 무력으로 남의 생명을 해치는 것만이 살인이 아닙니다.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오염시킴으로써 수많은 생명체와 인간이 살아가는 집인 환경 자체를 해치거나 그 생명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것은 더 심각한 살인행위일 수 있습니다. 남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은 오늘날에 와서 자연을 아끼고 잘 가꾸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까지, 인간뿐 아니라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처신하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당신이 만드신 이 대자연을 잘 돌보고 관리하라고 맡기셨는데, 정치인, 과학자, 일반 국민 등 우리가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태오복음 24장에 나오는 불충한 관리인과 같은 신세가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떤 주인이 한 종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어떻게 하여야 그 종이 과연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인이 돌아 올 때에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이 아니겠느냐? 그런 종은 행복하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주인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만일 악한 종이어서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려니 생각하고 다른 종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만 한다면 생각지도 않은 날, 짐작도 못한 시간에 주인이 돌아 와서 그 꼴을 보게 될 것이다. 주인은 그 종을 자르고 위선자들이 벌받는 곳으로 보낼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마태 24,45-51). 창조주의 벌은 그분 말씀, 그 법칙에 따라, 자연의 대반격이라는 모습으로 이미 인류에게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태환경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4대강 사업을 중지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정부가 하는 일에 왜 교회까지 들고 일어나서 반대를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홍보매체들이 이 문제와 관련한 진실을 충분히 알려주지 못하고 정부 측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전해 주는 현실에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홍보 매체 가운데에는 진실을 알리려고 큰 희생을 치르며 노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예만 들어 봅시다.
2009년 9월 8일에 방영된 MBC, PD 수첩에서는 대학 교수와 실무 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이 등,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조사연구하고, 그 결과를 <4대강 살리기의 허구>라는 제목으로 이 일에 따른 진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지적된 간단한 통계만 들어봅시다. 임진강 유역에 군남 홍수조절지라는 데가 있는데, 그 토목공사는 평소의 원칙과 법을 따라 정상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같은 분야의 일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군남 공사를 <4대강 살리기>와 비교하면 이 일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예산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군남은 2500억원, 4대강은 22조이니 백 배나 많습니다. 예산의 규모는 그대로 사업의 규모와 그것이 가져올 환경적 영향의 크기를 말해주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시간도 거기에 비례해서 늘어나야 할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군남이 환경영향평가에 3년이 걸린 데 비해 그 백 배인 4대강은 4개월이 걸렸습니다. 정상적이라면 300년이 걸렸어야 할 일을 넉 달 만에 해치워버린 것입니다. 공사기간도 군남이 6년 걸렸는데, 같은 비율대로라면 600년이 걸려야 할 4대강은 2년에 끝내겠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여당의 어느 책임 있는 인사의 말대로, 전광석화같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입니다. 과연, 몇 가지 통계만 보면 이 거대한 사업이 실제로 얼마나 번개같이 빠르게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단 6개월 만에 예산은 14조에서 22조로, 보의 수는 4개에서 16개로, 수심은 1-2미터에서 4-6미터로 조정되었으니, 경부운하 계획에 대해서 국민적 반대가 워낙 거세니까, 운하에서 4대강으로 이름만 바꾸었지 실제로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1970년대 사실상의 산아제한 자유화법인 모자보건법이 입법 예고되었을 때, 우리 주교단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정부는 우리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그래서 불과 한 세대만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어, 국가의 미래 자체가 큰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하며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각종 지원책을 내놓지만, 한 번 바뀌어버린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양식을 되돌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만 확인하고 있을 뿐입니다. 환경문제를 두고 우리 교회와 거의 모든 종교에서 이렇게 강한 반대 입장을 밝히는데도 현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면, 우리나라는 다시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셈이 될 것이며, 그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는 이는 없이, 거기 따른 폐해를 우리와 우리 자손이 대대로 떠안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일찍이,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탓이니, 그렇지만 않다면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 서서 마침내 나한테 온전하게 고침을 받으리라’고 말하지 않았더냐?”(마태 13, 13-15) 예수님께서는 진리인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당대의 지도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끝에 보면 바오로 사도 역시 당신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당시의 지도자들에게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국자들은 진실 앞에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을 뿐 아니라, 국민의 눈과 귀인 언론 매체를 손에 쥐고 자기네들의 주장만 듣고 보게 함으로써, 그들까지 눈과 귀를 멀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의 주장에 자신이 있으면, 찬성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을 한 자리에 앉혀놓고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주장을 펼치는 공개토론회를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앞에 언급한 <MBC, PD수첩>에서 지적된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국민이 양 쪽의 말을 듣고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책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한편, 우리 하나 하나가 매일의 삶에서 생태계를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불편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은 시대에 우리나라가 지금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몸살을 앓게 된 데에는 당장의 편의와 물질적 안락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선택한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양심과 신념을 존중해야 하는 종교인으로서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책임 있는 이들이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깨달아 잘못 들어선 길을 버리고 돌아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어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마음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가 말한 대로 되리라고 믿기만 하면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마르 11,22-23).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으며,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또 믿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의 빛이 쳐이겨야 할 어둠과 허위의 한 자락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매일의 삶에서 에너지를 낭비하거나 환경오염을 유발시키는 일을 줄이고, 이를 습관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창조주를 믿는 신앙을 실생활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거기에서 같은 방향의 잘못을 발견하면 그것을 먼저 고치지 않는 한, 우리는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활태도부터 고쳐나갈 때,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대목 앞에 나오는 요한복음 12장 25절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