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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합 30호> 전례-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아름답게, 기쁘게 거행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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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ecil 작성일10-11-09 00:00 조회3,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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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에  작은 본당이 있습니다. 신자 총수가 250명인데, 주일 미사 참석자 수도 250명. 어느 농촌이나 산간 지역의 사정이 그렇듯, 젊은 사람은 다 도시로 떠나고 거의 노인만으로 이루어진 이 본당이 주일미사 참여율이 100 퍼센트라는 점에서만 놀라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본당으로서 자체 살림을 충분히 꾸려갈 뿐 아니라, 불우 이웃을 돕는다거나 외국에라도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딱한 일이 벌어졌을 때, 모금을 하면 얼마나 많이들 희사를 하는지, 도시의 큰 본당들도 놀라곤 한다는 것입니다.

냉담률의 증가, 주일미사 참석 신자 수의 감소 등의 현상 때문에, 걱정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점점 크게 들리는 마당에, 강원도 산골에 있는 이 본당의 비결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눈과 귀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확 들어오는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미사 때, 주례 신부님과 함께 참석자 전체가 미사 전례기도를 아주 천천히 큰 소리로 또박또박 바친다는 점입니다. 처음 참석한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천천히 기도를 외우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신자들이 거의 다 노인들이시기 때문에, 기도를 조금만 빨리 바치면 따라오지 못 하시는 분이 생기고, 한 분이라도 처지거나 포기하면, 공동체 기도인 미사가 그만큼 빈약해지고 힘을 잃는다고 생각하신 본당 신부님께서, 그 점을 대단히 강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미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의 기본 정신을 아주 잘 구현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바칠 수 있는 개인기도나 묵주의 기도 등은 바치는 사람의 형편과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상을 준비하여 촛불을 켜놓고 하시는 분들도 점점 불어나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때로는 자리에 누워 잠이 들 때까지 바칠 수도 있습니다. 장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에서, 산에서, 길을 걸으며, 또는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는 얼마든지 바칠 수 있고 실제로 많이들 그렇게 하시지요. 예수님께서 가끔 혼자 산에 가셔서 기도드리시고, 중대한 일을 앞두셨을 때에는 밤을 새워 기도하신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때때로 혼자서 하느님만을 마주하고 있을 때가 필요하고, 그것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드리는 기도도 더욱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전례기도,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표적 위치를 차지하는 미사는 개인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이기 때문에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참석자 가운데 한 분이라도 구경꾼처럼, 혹은 이방인처럼 몸이나 마음으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한 몸 한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전례기도, 여럿이 하나가 되어 드리는 기도는 혼자 개인이 드리는 기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드리는 전례기도는 교회생활을 떠받쳐주는 가장 기본이 되는 기도입니다.
  더구나 미사에서 기억하며 재현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는,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교 전체를 서있게 하는 받침돌입니다. 십자가의 신비가 말해주는 특별한 지혜에 관해서 사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느님의 심오한 지혜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천지 창조 이전부터 미리 마련하여 감추어 두셨던 지혜입니다. 이 세상 통치자들은 아무도 이 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1고린 2,7-9) 부활에 관해서도 사도께서는 더할 수 없이 간단 명료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1고린 15,14).


  그러니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지금 여기서 재현하여 거기에 담긴 은총을 오늘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미사가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미사를 어떻게 준비하여 그 깊은 뜻에 실제로 걸맞게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너무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이 신비를 파고들자면 한이 없겠지만,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며 쉬운 점만 개선하고 마음을 써서 드리면, 미사가 확 달라지고, 본당 공동체가 당장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십여 년 전부터 사목교서에서 이 점을 비롯한 전례 전반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본당에 따라서는, 미사전례가 대단히 활기차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있는 공동체의 면모를 잘 드러냄으로써, 본연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 데가 많고, 그 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반갑고 기쁜 일입니다. 그런 본당은 하나같이 냉담자가 감소하고 미사 참석률이 증가합니다. 그리고 예비자가 계속 늘어납니다. 미사전례를 제대로 거행하면, 강원도 산골 성당의 예는 어디에서나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미사전례를 제대로 거행하는 것인가?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교우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 가운데 제일 긴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1. 성당에 가기 위해서 준비할 때부터 이미 미사는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 일찍이라면,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깨끗한 것으로 갈아입고, 주님의 축제에 초대받아 가는 사람답게 마음을 써서 산뜻한 차림을 하는 일이 모두 축제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2. 미사는 본당 공동체의 구체적인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기회입니다.
   따라서, 사목회, 각종 신심 단체 등 본당의 구조와 거기서 각자가 하는 역할이 가능한 대로 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수 있도록, 전례 안에서도 여러 가지 역할을 나누어 작은 일이라도 분담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주인으로서 적극적인 자세로 미사와 공동체의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3. 미사에 오시는 분들을 환영합시다. 본당의 사목회원들과 전례위원들이 앞장서서, 정장을 하고 어깨띠를 둘러 그 역할을 분명히 한 뒤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본당이 많은데,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성당에 들어가서도 앞에서부터 차례로 앉을 수 있도록 자리에까지 인도해 드리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4. 미사 해설자는 꼭 필요한 때에만 발언을 함으로써, 미사의 자연스런 흐름이 잘 유지되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부터 말씀의 전례를 시작하겠습니다.”
             “제1독서는 이사야 몇 장 몇 절부터 몇 절까지입니다.”
             “화답송”
해설자는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독서 하시는 분이 독서대에 올라가서 독서집에 나와 있는 대로,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하고 바로 봉독하시면 됩니다. 이때, 몇 장 몇 절부터 몇 절까지라는 말을 해설자나 봉독자 자신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1독서가 끝나고 하는 화답송도 “화답송” 하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그날의 화답송을 하면 됩니다. “복음환호송”과 “영성체송”도 마찬가지입니다.  

5. 몸가짐 : 전례 동안에는 외적 몸가짐도 중요합니다. 몸가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종교에서나 신 앞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합장>의 자세입니다. 이 자세는 언제 어디에서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종교적 자세이며, 그 자체가 본인에게나 함께 있는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을 향해 몸을 모으고 성령의 움직임에 가장 예민하게 감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몸가짐입니다. 각종 형태의 종교 심성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짙게 스며들어 있는 아시아,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합장이 한층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례자는 물론이고 공동집전 미사 때에는 모든 사제가 꼭 반듯한 합장의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 하느님 백성 전체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위를 향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회중도 합장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함께 이루는 경건한 분위기 자체가 상승작용을 하여 모두 하느님 성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6. 밝은 목소리 : 주례, 성서 봉독자, 미사 해설자, 기도 선창자는 목소리를 약간 높이고, 끝까지 처지지 않게 유지하기 위해서 각별히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회중 전체도 목소리를 거기에 맞춰 높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사가 참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경축하는 생명의 축제임을 그 목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7. 성서 봉독자 : 우리나라 각급 학교의 국어교육에서는 시험지에 나온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실제 살아있는 말을 훈련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은 이라도 성서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 구강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말이 마이크를 통해서 나갈 때, 회중이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이들도 있습니다. 또, 성서는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아주 다르게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를 읽는 일은 그 대목을 해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 봉독자는 엄격한 시험과정을 거쳐서 선발한 뒤에도 여러 번 읽어서 충분히 연습한 뒤에 봉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천천히 똑똑하게 발음하고, 의미 단위로 잘 띄어서 읽어야 합니다.


8. 보편지향 기도 : 전례기도가 좋지만, 책에 기록되어 있는 글을 그대로 읽음으로써 기도가 마음속 깊이에서 나오지 못하고 자칫 습관적으로만 바치고 말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때가 보편지향 기도 시간입니다. 이 기도만은 그날 성서 말씀,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한 강론을 듣고 깨달았거나 느낀 것을 가지고, 주변 사회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각하며, 마음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기도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느낀 것을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는 기회도 될 것입니다.

9. 예물 준비 기도 : 사제는 성반에 올려있는 빵을 하느님께 들어올리며 기도하십니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나서, 포도주가 담긴 성작을 같은 모양으로 들어 올리며 기도하십니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이 기도의 말마디에서 잘 드러나듯이, 미사 때 우리는 각자가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와 자신의 노력을 들여서 한 모든 일들을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합니다. 여기서는 옛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사했던 농사일을 떠올리지만, 농사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일은 하느님의 도우심과 각자가 드린 노력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을 미사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제물에 덧붙여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삶에서 이루어낸 것들은 성반에 놓인 제물에 보태져서 예수님의 몸이 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드린 수고와 희생, 땀과 고통은 성작에 담긴 포도주에 더해져서, 그리스도의 피로 변해 하느님께 봉헌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노력과 희생,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한 마디로 우리의 삶 전체가 예수님의 몸과 피에 섞어져 하느님께 봉헌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뜻깊은 일입니까? 따라서 주례 사제는 이 부분을 큰 소리로 하고, 회중은 역시 큰 소리로 응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의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가서는 성가도 너무 길지 않게 하여, 이 중요한 기도를 사제와 회중이 함께 드릴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0. 성가대 : 한 번 성가를 부르면 두 번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번이 아니라 열 번이나 그 이상 기도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말에 곡을 붙여서 노래로 바치는 기도인 성가는 신앙생활 특히 공동체의 기도인 전례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가는 성가대만이 아니라, 회중 전체가 함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가는 가능한 한 회중 전체가 쉽게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선택하고, 그것을 몇 달 동안 계속 불러서, 신자들이 어렵지 않게 함께 부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성가대는 영성체 도중이나 제물봉헌 시간 등 여유 시간이 있을 때, 따로 준비한 곡을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가대 지휘자는 전례의 흐름을 잘 따라가며, 해설자가 따로 “성가 몇 번”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흔히 마련된 표지판에 표시되어 있는 곡을 적당한 시점에 부르도록 해야 합니다.
  시작 성가와 마침 성가는 끝까지, 아니면 적어도 2-3절까지는 불러야 합니다.

이 몇 가지를 기억하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면, 미사 분위기가 크게 달라질 것이며, 본당 공동체도 따라서 활기차고 한 몸 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신앙 공동체다운 모습으로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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