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백합 35호> 청춘합창단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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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ecil 작성일12-02-14 00:00 조회3,5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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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음악회만이 아니었다.
그 너머 사람의 삶, 인생이라는 것이 새삼 분명히 보이는 자리였다.
그것이 끝났을 때, 모두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일찌감치 잃었거나 퇴색되어가던 각자의 참모습이 되살아났다. 청춘 - 정작 그것을 나이로 맞았을 때는 미래, 배우자 등 아직 결정되지 않은 현실적 삶의 무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찬란하고 행복하다고들 하는 그 시절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깊은 고뇌에 짓눌려 지내는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몸이 젊음과는 정반대 쪽에 서 있는 지금, 다시 찾아낸 청춘은 더욱 맑고 깊고 꽉 찬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청춘을 거쳐 되찾아낸 어린 시절은 모두에게 참된 기쁨과 자유, 그리고 순수를 맛보게 해 주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속에 들어있던 어린이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환성을 올리고 서로 껴안는 모습은 우리 모두가 돌아가야 할 고향을 힐끗 보여주었다.
부활.
지휘자가 이끌던 악단의 이름이다. 부활은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를 가리킨다. 청춘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 지원한 이들은 크고 작은 고통이나 일상의 답답함을 통해서 일종의 죽음을 체험하고 거기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 합창단을 꾸려 이끌어 갈 책임자는 처음부터 후보자의 음악성이 아니라 거기 들어오고 싶어하는 각자의 사연을 더 중요한 조건으로 설정하고 심사하였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합창단원들의 면면은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였던 운동선수도 있고, 현재 수많은 호텔을 경영하며 딸린 가족까지 합하면 2만 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업가도 있다. 그리고 이 합창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51세가 넘어야 한다는 조건은 일반적 흐름을 거슬러 간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울림이 된다. 대부분의 합창단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바로 그 나이를 여기서는 출발선으로 삼고, 그 이상에는 연령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84세 되신 할머니도 계시고, 평균 나이가 62세라고 한다. 그런데 무엇이 이들을 합창단으로 이끌었던가? 거기 들어온 한 사업가의 말이 모두를 잘 대변하는 것 같다. “이렇게 사업에 골몰하면서 바쁘게만 살다가 내 삶을 끝낸다면 그것은 너무 무의미할 것 같아서 여기 들어오고 싶었습니다.”
이분의 말을 들으니 몇 년 전에 만난 어떤 일본인이 생각났다. 그분은 미국 유명 회사에 취직해서 현지에서 사장까지 되었는데, 어느 날 오랜 친구와 만나 얘기하던 중에 그에게서 한 마디를 듣고 귀국해서 봉사활동으로 나머지 삶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여보게,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높은 사람도 되고 사장도 될 수가 있지만, 사장으로 죽으면 안 되네.” 내가 그분을 만났을 때, 그는 교토 지방에서 주로 외국인들로 이루어진 인력시장에 가서, 그들이 이곳저곳으로부터 와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자기 차로 그들을 현지에까지 데려다 주는 일을 봉사로 하고 있었다.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합창단에 들어온 분들은 한결같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시라도 떠나 각자가 속 깊이 담아 두고 있던 꿈을 펼치며,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몇 달 동안 함께해 온 과정을 통해서, 음악의 완성도를 높여갔고, 그와 동시에,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함께가 아니면 체득할 수 없는 인생의 다른 면, 참 삶의 기쁨, 산다는 것의 깊은 의미를 새삼 깨우쳐 갔다. 그리고 수천 명의 지원자들 가운데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 심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단원으로 뽑은 다음, 그들을 훈련시키는 과정 전체를 따라가며, 텔레비전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에, 수많은 시청자들도 비슷한 감격과 새로운 깨달음, 그리고 스스로 변화되는 체험까지를 공유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어디에서나 인간 교육이 크게 두 분야로 나뉘어 있었다. 먼저, 중국에서는 인간의 육체에서 시작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회생활의 전 영역을 담당하는 것은 예禮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정신생활 전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악樂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교육은 예와 악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오늘날의 분류법으로 하자면,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 교육 전체를 음악이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서양문명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인간 교육이 체육과 음악, 이 두 분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외면 생활은 체육이 담당하고, 그 내면 혹은 정신생활은 음악이 맡았던 것이다.
이렇다는 사실을 듣고 알면서도 음악이 인간의 정신생활에 그렇게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점은 늘 일말의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청춘합창단 현상을 지켜보며, 그 사실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히 큰 발견이자 기쁨이었다. 더구나 옛날 같았으면 거기 직접 참여했던 몇 사람들에게만 엄격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일을,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며, 어떤 의미에서, 그 과정을 함께 걸었기 때문에, 그 효과도 그만큼 크고 넓게 확산되어 갔다. 독창과는 달리,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사람들의 정신이 열리고, 각자 자기의 목소리를 조정하고 가다듬어 다른 사람들과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 내려는 그들의 마음 씀과 태도는 함께하는 삶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개성이 뚜렷하고 자기주장이 분명하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 방향으로 마음을 모으고 조화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모습은 대단히 감동적인 인생 수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 참여한 단원들은 물론이고, 옆에서 도와 준 이들, 그리고 시청자들까지도 각자의 삶에서 큰 감동과 성숙의 기쁨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기쁨과 해방 그리고 변화를 겪은 이는 다름 아닌 이 합창단의 모든 것을 독창적으로 기획하고 이끌고 나간 지휘자 자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이렇다.
내가 김태원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5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필리핀 사목 방문 기회였는데, 본당 신부님이 그분을 소개했을 때, 어떤 음악인 그룹의 지도자라는 말만 듣고도 나와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서 사시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경, 그리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에 시선이 가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그분을 만나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내 눈은 금세 그분의 외관에서 내면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러면서 그분이 얼마나 순수하고 선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어떤 세계나 분야라는 테두리를 설정해 놓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인지를 새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특히 마닐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자리를 나란히 잡고 앉아 4시간 넘게 그분이 들려 준 지난 삶의 이야기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신문 잡지를 통해서만 더러 접하던 세계를 탐색해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여러 면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때 그분은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중이었고, 나에게 그 각 골목을 소상히 펼쳐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한국방송에서 진행하는 ‘남자의 자격’에 참석해서 적절한 단계에서 그 동안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대중 앞에서 밝힐 때마다, 그것이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청춘합창단의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분이 한 말은 그 모든 여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저는 20여 년의 연예계 생활에서 그 대부분을 그늘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3년 전부터 여러분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그 그늘에서 벗어나 지금은 이렇게 기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며칠 전에 위문 공연차 청춘합창단과 함께 어떤 소년원을 방문했을 때는 그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저도 여러분만 한 때에는 여러분과 똑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씩이나…” 거슬러 올라가면, 이뿐 아니라, 자녀 중의 하나가 자폐 증세를 보임에 따라 부모로서 겪었던 어려움도 그대로 토로하였다. 이런 식으로, 김태원 씨는 살면서 통과한 여러 겹의 고통과 어두운 터널들을 하나씩 사람들에게 드러내었고, 그렇게 해서 자신이 거기에서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 나온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이제 그의 삶에서 둘도 없이 귀중한 자산이 되어 그 인격의 깊이와 넓이를 확대시켜 주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이런 궤적은 여러 면에서 청춘합창단을 계기로 해서 활짝 꽃피었다. 우선, 일반 상식과는 정반대로, 합창단에 들 수 없는 연령대의 사람만을 뽑았다는 점이 그렇고, 난생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합창곡과 노랫말을 직접 썼다는 점에도 그러하며, 역시 해 본 적이 없는 합창단 지휘를, 한편으로 어떤 노 대가에게서 배워가며, 해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합창에서 나오는 마지막 독창 부분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점을 두고, 음악성이 아닌 의미에 더 큰 무게를 두어 단원 가운데에서 가장 연로하신 84세의 할머니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감으로써, 본인 스스로의 표현대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훨씬 뛰어넘어 각자 안에 숨어 있어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던 능력을 밖으로 이끌어 내는 솜씨를 보여주었다는 점도 그렇다. 많은 어려움과 깊은 체험에서 나오는 그의 지혜는 입에서 나올 때마다 어록에 추가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삶의 멘토로 삼고 싶은 인물 가운데 세 번째로 꼽힌다는 것이다. 고칠 수 없는 비음 때문에 결정적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던 백청강 씨를 최정상의 가수로 인정받게 한 그의 솜씨와 배려에서 그의 자질은 잘 드러났다. 그뿐 아니라, 음악계에 진출하기 위해서 도움을 요청해 오는 사람들에게 깍듯이 경어를 쓰며 정중하게 대하는 그의 태도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그 세계에 일종의 새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과 성실성 또한 가히 전설적이어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 점에서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창곡의 노랫말은 평탄치 않았던 그의 삶, 몇 겹으로 둘러쳐 있던 아픔과 어려움, 다른 말로 하자면, 일종의 작은 죽음의 조각들이랄 수 있는 것들을 뚫고 헤쳐 나온 그의 개인적 체험을 잘 드러낸다. 대부분의 노래가 사랑을 주제로 하지만, 거의 모두가 이루지 못한 사랑이나, 아쉬운 이별, 혹은 그것으로 해서 받은 상처를 주제로 하는 데 비해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이 노래는 철저하게 긍정적이고 무한으로 열려있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우선 특이하다. 연로하신 어머님께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지었다는 이 시가, 당장에는 노인들로 이루어진 이 합창단원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런 점에서 그분들의 참된 청춘을 되돌려 놓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뿐 아니라, 삶이라는 여정의 끝자락에 와 있는 다른 사람들, 나아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어린 시절은 끝난다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나이와 상관없이 근원적인 희망의 문이 열려 있어야만 매일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 노래는 똑같이 중요한 의미를 띤다. 노랫말을 가까이 들여다보자.
- 삶이란 지평선은 끝이 보이는 듯해도 가까이 가면 갈수록 끝이 없이 이어지고 -
하늘과 땅 사이에 뚜렷이 그어진 지평선. 인간은 하늘에 머리를 두고 땅을 발로 디디고 살아가는 그 외적 모습만으로도 이미 동물과는 다른 특성을 느끼게 한다. 그러다가 삶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음을 의식하면, 지평선 위에 있는 하늘과의 인연을 뒤로하고 그 아래에 있는 땅 속으로 내려가는 자신을 상상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보자면 그것이 자기의 운명임을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죽음이 사람의 육체적 시각에는 몸이 땅에 묻히는 것으로 영원히 끝나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렇게 보일 뿐, 실제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이것은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타당한 말이 아니다. 사람의 삶이 무덤에서 완전히 끝나는 것이 분명하다면, 인간의 모든 문화 활동, 인간 특유의 행동 양식은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
- 눈사람이 녹은 자리 코스모스 피어있네 -
이것은 위의 진리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일상적 경험이다. 한 사람의 삶이 끝나고 나면, 눈사람이 녹은 자리처럼,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세월이 흐른 다음에 보면, 그 자리에 기적처럼 아름다운 새 생명이 돋아난다. 이것이 머리로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조차, 그 몸과 마음속에 꿈의 형태로 막연하게나마 남아 사람을 사람으로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신비스런 현상이다.
- 그리움이란 그리움이라는 이름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 서로를 간직하며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기에 -
사람의 삶에서 영원히 남는 것은 그 사랑뿐이다. 그가 얼마나 진정한 사랑을 했는가 하는 것이 한 사람의 삶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결정한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말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1요한 4,16).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말한다. 몇 가지만 들어보자. “사랑하며 보낸 한 순간이 사랑 없이 보낸 70년(한평생) 동안의 종교생활보다 낫다”(야하 아르-라지). “가장 육감적이고 저질이라고들 말하는 사랑 속에도 하느님의 흔적이 있다”(성 베네딕토). “시간을 멈추게 하고 상대방에게 영원을 느끼게 하는 진정한 사랑의 한 순간을 아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엘쉥제 추기경). 실개천에서부터 큰 강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은 바다를 향해 가서 그 물과 합류함으로써 그 여정이 완성되듯이, 사람의 모든 활동과 삶 자체는 사랑에 가서 닿을 때, 완성을 이루고 영원의 세계에 진입한다.
-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 -
그래서 일단 거기에 뿌리가 닿으면, 세월은 이제 허무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그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과 희망은 점점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사람을 당당하게 해 준다.
- 모든 순간이 이유가 있었으니 세월아 가려무나 아름답게…다가오라 지나온
시간처럼 -
어두움의 터널에서 빠져 나온 지금 되돌아보면, 기쁨과 희망, 꿈과 사랑뿐 아니라, 슬픔과 절망, 아픔과 상처, 그리고 때로는 미움과 환멸의 경험까지 포함한 지난날의 삶 전체가 한 톨도 버릴 것 없이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다가오는 시간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떠오른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이렇게 해서 죽음을 뚫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삶 속에서 경험하는 작은 죽음과 작은 부활들의 의미를 분명히 해 주신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가 여기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한다.
모든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세상 속의 자기 자리에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각기 특유한 방식으로 증언할 사명을 띠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