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백합 36호> 필리핀 세부에 지진이 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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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ecil 작성일12-03-27 00:00 조회4,0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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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현장에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부에서 배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이웃 보홀 섬에 있었다. 세부 한국인 천주교 공동체가 역대 주임신부님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근래에 와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어 견진자가 60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에 특강을 하고 주일에는 견진 미사를 봉헌한 다음, 월요일에 세부 다음으로 크고 필리핀 전체로서는 열 번째라는 보홀에 가서 1박 2일 예정으로 오래된 성당들과 유적지들을 둘러보고 있었던 것이다. 5년 전에 갔을 때에는 30명 정도의 작은 공동체였는데, 지금은 신자 총수가 120명이 되었고, 주일 미사에는 그 120명 전원이 참석하는 진기록(?!)을 세운 다음이기 때문에, 사목회원 세 분, 그리고 주임 이완재 신부님과 함께한 이 여행이 특별히 유쾌하고 뜻깊은 것이었다. 교회 역사가 오랜 지역이기 때문에 책으로만 알던 과거의 인물들과 관련된 장소를 둘러보는 것은 여러 면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마젤란이 원주민 대표에게 전해주었다는 십자가 이야기, 후에 스페인 장군과 원주민 추장 사이에 맺었다는 맹약 장면을 보여주는 조각상, 그리고 그런 역사와 관계가 깊은 2-3백 년 된 성당들이 간직하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월요일(2012.2.6) 오후, 200여 년 전에 지어졌다는 한 성당을 가니 우리에게 그 성당에 관해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성당 뒤쪽 이층으로 우리를 데려 가더니 벽에서 떨어져 바닥에 그대로 흩어져 있는 시멘트 조각들을 보여주며, 그것은 바로 그날 오전에 있었던 지진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진앙지가 세부 쪽이었다는 사실도 그에게 들어서 알았다. 그래도 사태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그날 오후 7시 반쯤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식탁이 상당히 흔들릴 정도의 여진이 감지되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그 다음날 세부로 돌아와 본당의 운영위원 십여 명을 만나 그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행정 당국에서는 사태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누는 비상사태 가운데 두 번째 등급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방송을 통해서 30분 안에 쓰나미가 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이들도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조금 높은 지대를 향해 급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한 자매님은 마침 남편이 외국에 출장을 가 있었는데, 방송에서 지진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왔는데, 이제 삶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마지막 할 이야기를 나누자며,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고 못했던 말들을 유언 삼아 주고받았다는 것이었다. 지하철에 화재가 났다든지,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는 중이라든지, 갑자기 붕괴된 건물의 잔해에 갇혀 살아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든지 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전화로, 문자로, 혹은 한 조각 종이로 마지막 말을 남기던 장면을 텔리비전을 통해 더러 보았는데, 바로 그런 일이 육백오십만이나 되는 세부 지역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친 것이다. 본당 운영위원들 가운데 서너 가정은 단층주택인 다른 교우의 집에 가서 저녁 늦게까지 피신해 있었다고도 했다.
쓰나미.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그것이 발생했을 때에는 삼십만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 갔고, 지난 해 3월 일본에서는 약 일만 오천 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희생자의 수도 엄청나지만, 거대한 세력으로 모든 건물과 인공물들을 한꺼번에 쓸어가던 그 광경을 영상 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지켜볼 수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쓰나미라는 말만 들어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한 순간에 모든 신경과 생각을 마비시킬 만큼 큰 공포에 휩싸였던 것이다. 그것을 경험한 어떤 사람의 말은 그런 사태가 몰고 오는 공포를 잘 대변한다. “갑자기 바다가 서서 덮쳐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고 의연하고 천연덕스럽기까지 한 태도를 보인 사람들이 있었다. 사제관에 모여 그날의 체험을 나누던 교우 한 분이 말했다. “마음이 순수한 아이들은 그런 때 뜻밖의 반응을 보이더군요.” “어떤 반응이었는데요?” 하고 묻자 그분이 대답했다. “14-5세 된 저희 딸 아이 둘이 미사에서 복사도 서고 신부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데,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지진이 나도 하느님이 우리를 잘 보호해 주실 테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러자 다른 애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으면 또 어때, 어차피 우리는 천당 갈 건데 뭐.’”
그날은 마침 정월 대보름이었다. 그러니까 설 기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이런 반응을 전해 들으면서, 설날(양력 1월 23일) 미사에서 들었던 복음 말씀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돌아보니, 이번의 설 기간에는 개인적으로도 삶과 죽음을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김종길 라파엘 신부님이 아주 아름다운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시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고, 세 살 아래의 바로 밑 동생이 마지막 시간을 나와 함께하며 역시 잘 준비한 끝에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도 그렇다. 또 이번에 필리핀 세부 한인 공동체를 방문했다가 설 기간의 마지막 날에 지진 사태가 발생하여, 갑자기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 현지인들의 반응에서 느낀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겪는 동안 마음속에는 이번 설날 미사의 복음 말씀이 늘 중심에 있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마치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라.” 평소에 늘 대해왔던 이 말씀 가운데에서도 이번에는 그전에 눈길이 가지 않던 곳에 생각이 멈추었다. “마치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주인이 다녀올 데는 참 많다. 움직일 때마다 우리는 어딘가에 갔다가 돌아오고, 그 어딘가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나 많을 수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안다. 예수님 시대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교통수단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발로 걸어서 갔다 온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농장에 다녀올 수도 있고, 어부들의 농장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다에 고기잡이를 갔다 돌아올 수도 있고, 그때 흔히 있었던 대로 전쟁터에 갔다가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갔다 돌아왔느냐에 따라, 그곳의 분위기, 냄새를 가지고 돌아왔을 것이다. 고기잡이에서 돌아왔다면, 생선 비린내가 온 몸에 배어있을 것이고, 밭에서 일하고 왔다면 옷에 땀 냄새가 흥건히 배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돌아왔다면, 비록 상대방을 제압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고 해도, 죽기 살기로 싸우는 과정에서 옷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가 흥건히 배었을 것이며,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가능성을 다 젖혀두시고, 주인이 “혼인잔치”에서 돌아왔다고 말씀하신다. 무엇 때문일까? 주인이 바로 그 잔치의 분위기, 잔치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 생명의 잔치인 혼인잔치에서 돌아왔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분이 오시는 이유가 바로 그 잔치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실제로 차려주기 위해서라는 점을 넌지시 보여주시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이어지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한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 그 주인은 띠를 띠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어 줄 것이다.” 이 세상의 주인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등장하는 주인, 우리의 주님, 그분께서 알려 주시는 하느님은 그렇게 하시는 분이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신다. 요한은 그날 저녁의 일을 이런 말로 시작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겨 주신 것과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여기서 보면, 예수님께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고,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분이 보여주신 모습은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 그 주인은 띠를 띠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어 줄 것이다.” 이것은 그저 비유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발을 씻겨주는 일은 유다인들이 동족에게는 비록 종이라 해도 시킬 수 없을 만큼 비천한 일로 여겼는데, 그 일을 주님이 하시는 모습은 제자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는 당연히 말한다.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그때 예수께서는 아주 뜻깊은 말씀을 하신다.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베드로가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한층 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주님,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는 말로 이 장면은 이어진다.
그렇다.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종이 되시어 우리를 섬겨 주신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일은 현실이 되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태 20,27-28).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하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에는 깊은 뜻이 있다.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 “나중”은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그 다음날, 예수님께서는 대야에 든 물로가 아니라 당신 몸속에 있는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쏟아, 그것으로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이 아니라, 당신의 몸뚱이 전체로 닦아 주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영원한 천상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해 주셨다. 죄 때문에 하느님과 아무 상관도 없을 뻔한 우리를 깨끗이 씻어 주시어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다. 히브리서 9장의 말씀 그대로다.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 가셔서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당신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9, 12).
한 삶을 살고 난 다음에 뒤를 돌아보면, 우리는 모두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죄로 더러워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한과 후회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더럽힐 수는 있지만, 깨끗하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 그분의 용서가 없으면 희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다. 로마서 8장(3절)이 말하는 그대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는 과거의 삶 전체가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여기서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라고 할 때, 그 ‘모든 일’속에는 우리의 공로뿐 아니라 부족, 심지어 죄악까지 포함된다. 하느님의 절대적 능력 속에는 죄악까지도 은총의 기회로 바꿔주시는 힘이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에게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부르실 때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다. 영원한 잔치에 초대받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설 교구청 아침 미사에서부터 여러 기회에 많은 사람들과 이런 식의 묵상을 나누었다. 특히 오랜 동안의 병상 생활로 몸이 많이 쇠약해지고 그만큼 표정도 초췌해진 동생을 찾아가 똑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까지 듣고 있던 베드로는 점점 얼굴이 밝아지면서 마지막에는 활짝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죽음 자체는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어려움도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러면서 옆에 있는 아내에게 지금 들은 성서 말씀을 잘 적어서 다음에도 들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베드로의 반응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속 모든 근심의 구름이 한 순간에 걷히고 찬란한 햇빛이 비쳐오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렇게 베드로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베드로의 나이가 아마 다섯 살쯤 되었던 것 같다. 나와는 세 살 차이니까 나는 그때 여덟 살쯤 되었을 것이다. 베드로에게는 처음으로 동네를 벗어나 내 손을 잡고 이웃 동네에까지 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길을 가다 보니 철로에서 2-3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기차를 만났다. 우리 동네 나바위에서 보면 철로가 2킬로미터도 채 안 될 만큼 가까이 있기 때문에 기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더러는 보았을 텐데, 갑자기 시커멓고 기다란 괴물이 큰 소리를 지르며 오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깜짝 놀라 울면서 도망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불러서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저건 가까이 가서 보면, 방도 있고 그 안에 의자가 있어서 사람이 거기 앉아 있으면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멀리까지 갈 수 있는 것이란다. 베드로는 설명을 들으며 표정이 편안해지더니 마지막에는 활짝 웃는 얼굴이 되었다.
이제 인생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죽음이라는 낯선 현실을 앞두게 되니, 아무리 하느님을 믿는다 해도 약간의 두려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깊은 의미를 깨달아 가면, 우리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나라에서 이미 거기에 가 계신 부모님과 형제, 친척, 친구 등 세상에서 알았던 모든 분들을 만날 생각에 기쁨과 희망이 영혼을 채우게 된다.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베드로의 모습이 걱정에서 기쁨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희망을 북돋아 주다가, 후에 영원한 나라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렇다. 죽음을 하루 앞두고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종이 되어 우리의 발을 씻어주신 주님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그분께서 들려주신 말씀과 보여주신 모범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살면 이 세상 삶이 이미 영원한 삶으로 바뀌어가고 현세의 삶이 끝나면 영원한 사랑의 품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 믿음 속에서는 아프리카의 어떤 금언이 현실이 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주변 사람들은 웃고 나는 울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주변 사람들은 울고 나는 웃을 것이다.” 그러니 쓰나미의 위협 앞에서도 태평했던 열네 살 소녀의 말은 우리 모두의 말이기도 하다. “죽으면 또 어때, 어차피 우리는 천당 갈 건데 뭐.”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다”(로마 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