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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합 43호> ‘사랑의 전당’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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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1-07 00:00 조회3,9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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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전당’을 위하여

 

 

1970년, 인류문명사 연구의 세계적 대가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효도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의 가족제도를 보고 크게 감탄하며, 이것이야말로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극찬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외계로 떠나면서 한 가지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바로 한국의 가족제도를 가지고 가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조금 더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족은 어떤 형편에 있는가? 이혼율 증가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르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수준이며, 가정이 파괴되는 데 따른 온갖 사회적 문제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통계를 보자. 2010년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은 전체 가구의 37.0%, 혼자 사는 집은 23.9%, 부부만 사는 가정은 15.4%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2035년에는 혼자 사는 집이 34.3%, 부부만 사는 가정이 22.7%,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은 20.3%가 되어, 혼자 사는 가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너진 가정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누구보다도 자녀들이다. 고아, 조손가정, 외짝 부모 밑에서 자라는 어린이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들이 전 국민의 27%가 넘는다는 조사 보고도 있다. 공황장애를 비롯한 온갖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국민 행복도에서는 세계 최하위권에 속한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내걸고 온 국민이 한 세대 동안 모든 노력과 희생을 기울여 이룩한 물질적 성과는 세상이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세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다가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가장 부자 나라 대열에 끼게 된 나라로서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통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을 이루었다고 자랑하고, 그 토대가 되는 과학기술 수준의 눈부신 발전을 내세우는데, 지금 대부분의 국민이 몸으로 느끼는 세상은 참된 의미의 “잘 사는” 나라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토인비는 자신의 대표적 저서 『역사의 연구』(12권, 1934-1961)에서 서구세계 위기의 뿌리를,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풍요를 소홀히 하는 데에서 찾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생활의 ‘밖’, 외부, 물질적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하고 거기에 온 힘을 기울이면서, 사람의 ‘안’, 내부, 정신적 측면을 소홀히 한 것이 화근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종교보다는 기술과 민족, 군사력을 숭배하는 세속주의가 유럽을 위기로 몰고 갈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이다. 여기서 외적이고 물질주의적인 현대 인간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길로서 종교를 내세울 때, 그것은 물론 지금 우리나라에서 많은 경우 종교계마저 빠져들고 있는 것 같은 물질주의 병폐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이 말이 의미하는 특유의 정신적 가치를 가르치고 실천함으로써, 사람들을 물신적 병폐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실제로 갖춘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토인비의 이 예언은 지금 서구에서보다도 더 심하게 한국 땅에서 적중되고 있다. 지구가 너무 오염되거나 황폐하여 외계로 떠나게 되더라도 한국의 가족제도 하나만은 꼭 챙겨가고 싶다고 말했던 바로 그 나라가 오늘날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신문, 잡지, 텔레비전 등 홍보매체는 계속 물질적 성취와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의 천박한 취향에 점령당하여, 지금 국민 가운데 놀랄 만한 수가 마음속 깊이 앓고 있는 이런 중병은 제대로 전해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외국의 매체에서 우리를 더 걱정하는 형국이다. 한 예로, 뉴욕타임즈는 2011년 7월 6일, 온라인 판 신문을 통해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에 관한 글을 실었다. 여기에서 이 신문은 “한국이 높은 이혼율과 직업적 스트레스, 공부 압박에 시달리는 학생, 남성 위주 문화에서 일자리 후 잦은 과음 등으로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나라다.”라고 평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대한민국 보건복지부는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에 한국의 정신보건 분야 전반에 대한 평가와 자문을 의뢰했다. 그리고 얼마 후 외국에서 전문가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정신보건 현황을 살펴보고 돌아갔고 곧 이어 열린 정신보건정책 포럼에서 그 중간보고가 발표되었다. 이 자리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자문관인 영국 국적의 정신과 의사가 우리나라의 정신보건 현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이어 향후 개선방향에 대한 권고를 발표했다. 이를 요약하면 우리나라의 정신보건 수준은 경제규모나 국제적인 위상에 비해 부끄러울 정도로 낙후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고는 당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국가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 오염된 공기에 노출되어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에만 온 힘을 기울이고, 그런 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결국 치료의 한계에 부닥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가 환경오염 자체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일 필요가 절실하다. 그래야만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욱 큰 효과를 보고, 마침내 건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이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은 각 개인이 인격체로서 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런 일은 주로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행복도 불행도 대부분 거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가정을 건강하게 하면 한 사회와 나라가 건강해진다. 그렇다면 가정은 또 어떻게 건강하게 될 수 있는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이 흐르고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부부 사이가 원만해야 한다. 부부간의 관계가 원만해지려면, 이들이 남자와 여자로서 특유의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사랑, 특히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 방향을 향해 어려서부터, 아니면 늦었더라도 실제적인 양성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런 순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濟家治國平天下라는 동양의 전통적인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평천하에까지 이르는 이 과정 전체를 떠받쳐 주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내고, 거기에 따라 각 개인의 삶에서부터 나라와 세계 전체의 구체적인 삶을 실제로 향도하고 꾸리는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줄리앙 그린Julien Green(1900-1998)이 한 말은 깊은 뜻을 담고 있다. 프랑스 태생 미국인 작가로서 당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 지성인은 이렇게 말했다.

   밖, 외부, 물질세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E=mc²이라는 공식으로 표현되고,
   안, 내부, 정신세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신=사랑이라는 공식으로 표현된다.
현대 과학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핵의 엄청난 힘을 활용하는 일에서부터 거의 무한대의 크기를 가진 우주의 팽창 현상까지를 해명하는 아인슈타인의 저 유명한 공식(E=mc²)에 나타난 원리로 현대 물리학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었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은 사랑이라는 관념과 표현 자체는 신약성서(1요한 4,8.16.)에 이미 나와 있지만, 물질세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와 함께 정신세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서 그것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았다는 점이 새삼 눈길을 끈다. 이런 통찰에 따르면 사물의 <밖>과 <안>, <물질>과 <정신>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 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아인슈타인의 통찰이 발견해 낸 것같이, 공간과 시간이 손의 겉과 속처럼 같은 사실의 두 측면일 뿐인 것과도 비슷하다. 다만, 밖을 지탱해 주는 안이 무시되면,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는 모든 구조물이 쉽게 허물어지고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해 준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서 밖과 안의 관계가 가장 확실하게 나타난다. 사람이 육체적으로는 올림픽 선수같이 완벽해도 정신이 고장 났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인 조건이 아무리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어도, 사람이 정신세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인 사랑이 모자라거나 없으면, 인간으로서의 본 모습을 잃고 불행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상실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인간의 모든 불행은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나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 느끼는 각종 정신적 질병이나 심리적 장애의 특효약은 정신세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인 ‘사랑’이다.

성性, 남녀 사랑, 결혼, 부부관계, 가정, 부모와 자녀 관계 등, 이 모든 일들이 오늘날 큰 혼란과 병폐에 시달리고 있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여러 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 국가와 지역사회의 몫도 대단히 크다. 그러나 이 문제의 특성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바로 여기에 비정부기구, 특히 이런 일에 오랫동안의 경험과 지혜를 축적해온 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가운데 하나를 우리는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치명자산 기슭에 구상하며 이 주제에 관한 집중적 연구, 연수, 훈련, 체험의 중심 도장으로 가꿀 필요가 있다. 

치명자산이 이런 목적을 위한 공간으로서 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이 장소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 묻혀 있는 유중철(1779-1801)과 이순이(1781-1802)라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들은 사실상 수도생활을 원했지만 당시에 수도원이 존재하지 않았고, 일반적 통념은 양반 가문의 과년한 젊은이들이 독신으로 사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인 결혼을 한 다음 4년 동안이나 같은 집에서 동거하면서도 실제로는 완전 순결을 지켜내면서 인간 사랑의 극점을 실현해 내었다. 그리고  함께 추구하던 이상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역사는 이들을 ‘동정부부’라고 부른다. ‘동정’과 ‘부부’라는 말이 하나로 묶여진 이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 속에는 이 젊은 남녀가 함께 지녔던 영원한 이상을 당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한마디로 나타내 보려는 고뇌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삶에서 종교적 요인을 괄호 속에 넣고 볼 때에도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사랑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와 감동을 전해 준다. 그것은 마치 성춘향과 이도령이 엮어내는 이야기가 당대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잠시 고려考慮에서 제외시키더라도 하나의 사랑 이야기로서 사람들에게 큰 빛과 감동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성춘향과 이도령이 문학작품에만 나오는 허구의 인물들인데 비해 이순이와 유중철은 전라북도 전주 인근 초남리에서 살다가 200여 년 전에 순교한 역사적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이미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드러난다.

남원에 춘향에게 바쳐진 사당이 있고,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기념하는 광한루와 부속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정기적으로 축제가 거기에서 열리고 있는 것은 문화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역사적 실존 인물인 동정부부가 살아낸 삶과 남긴 말 그리고 글은 거기에 비할 수 없는 감동과 함께 남녀 간의 관계에서부터 가족 그리고 여러 모로 인연을 맺고 살던 주위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점점 넓게 퍼져나가는 사랑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치명자산에 있는 그분들의 묘와 기념 성당은 전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의 하나가 되어 있다. 몇 년 전에는 주한 외교관 부인들이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 동정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만 듣고서도 모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세상 거의 어디에서나 성윤리가 너무나 혼란스럽게 되자 서양에서 종교와 민족, 언어와 피부색을 초월하여 젊은이들이 스스로 혼전 순결 지키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들이 깃발로 내세울 수 있는 인물이 흔히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이상적 사랑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이 이순이와 유중철의 실제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이보다 더 적합한 본보기가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이분들과 그 가족의 무덤, 그리고 기념 성당이 있는 치명자산 성지는 앞으로 부부사랑과 가정의 본래 모습, 나아가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인간관계의 참모습을 배우고 되찾는 수련의 장으로서 더없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교황청에서는 한국 교회사 초기의 순교자들을 중심으로 시복 시성 절차를 밟고 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질 날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전동성당 터에서 한국교회 최초로 순교하신 윤지충(1759-1791)과 권상연(1751-1791), 그리고 동정부부와 그들의 가족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뚜렷한 분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시복 시성을 위한 조사보고서의 제목이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로 되어 있고, 내용에 있어서는 동정부부 이야기가 단연 돋보인다. 그래서 한국 초기 교회사의 전문가였던 프랑스인 다블뤼 주교는 이 동정부부를 두고 “한국 순교사의 가장 찬란한 진주”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들의 사랑에 관해서 이순이가 감옥에서 죽음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았을 때 어머니와 언니에게 쓴 편지의 일부를 보자. “제가 여기로 온 후, 평소에 마음에 두고 걱정하던 일을 이루었습니다. 구월에 와서 시월에 우리 두 사람이 (동정을 지키기로) 발원맹세하고 사 년 동안을 실제로 남매처럼 지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대략 열 번이나 심한 유혹을 당하여 (서약을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피를 흘려 이루신 공로의 힘에 의지하여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 마음을 쓰실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리니, 저 자신을 대하시듯 이 글을 반갑게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천 길 낭떠러지 같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던 그 고비를 통과한 다음,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확실해졌는지에 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때, 우리 두 사람의 상대방에 대한 믿음은 금석과 같이 굳건하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마음은 태양처럼 확실해졌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장 마음으로 복종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요한 오라버니(유중철)이고 여자로서는 아가다 성녀(귀족 가문의 어린 소녀로서 3세기에 로마에서 순교한 성녀)”라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이순이의 이런 사랑은 상대방이나 가족의 테두리에만 갇혀 있지 않고 주변의 모든 어려운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무엇보다도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그것을 확인한다. “저희 두 사람은 약속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재산과 가업을 물려주시면, 재산을 서너 몫으로 나누어서 한 몫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한 몫으로 시동생에게 넉넉하게 주어 시부모님을 모시도록 하고, 세상이 좋아져서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면 각각 헤어져 살자고 약속하고, 서로 이 약속을 저버리지 말자고 다짐했지요.”

젊은 남녀가 4년 동안이나 한집에 살면서 처음의 서약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보다 상대방이 꿈꾸는 이상을 향해 충실히 걸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사랑은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의 욕망을 죽이는 것,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모두 내주는 것이며, 하느님은 바로 그런 뜻에서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그들은 온몸으로 깨닫고 실천했던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들이 많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경치가 좋은 곳,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 정신에 깊은 감동을 주는 곳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종교 관련 명소를 우리는 흔히 넓은 의미의 성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성지 가운데에서도 감동을 주는 요인이 무엇이며 그 감동의 크기가 얼마인가에 따라 그 성지를 찾는 사람들의 규모나 방식이 정해진다. 그런 의미의 성지 가운데 세상에 잘 알려진 것들만 해도 여럿이다. 북반구에서는 프랑스 루르드, ‘산티아고로 가는 길’로 잘 알려진 스페인 콤포스텔라의 성 야고보성당, 포르투갈의 파티마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남반구에 가면 찾는 이들의 규모나 시설의 크기에서 북반구의 것들보다 훨씬 더한 성지들이 많다. 멕시코의 과달루페, 브라질의 아파레시다, 아르헨티나의 싼 루한 등이 대표적이다.

동정부부를 포함한 한국교회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 절차가 마무리되어 그들이 성인으로 선포된다는 것은, 그때부터는 이분들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인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분들이 잠들어 계신 치명자산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장소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순례자들이 몰려오게 될 것이다. 오늘날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6백만에 이르고,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전동성당을 들른다. 이런 가운데 전동성당 터를 비롯하여 전주 지역에서 순교하신 다음 치명자산에 묻혀 계신 분들이 시성되면 전 세계에서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느끼기 힘든 감동과 함께 삶의 깊은 의미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의 몸과 성, 부부, 가정 등에 관하여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지니는 역할과 의미를 깊이 성찰하고 본래의 모습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이론 및 실천적인 연구와 방법을 개발해 왔다. 그리고 이런 문제와 관련하여 어려움이 발생하고 병리적인 현상이 나타날 때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면에서 연구하고 축적해 왔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은 가장 대표적인 예의 하나이다. 그리고 위기에 처한 부부관계를 치유해 주는 프로그램으로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부부 주말Marriage Encounter’과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택choice’, 그리고 실제로 약혼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약혼자 주말Engaged Encounter’ 등은 이 분야에서 놀라운 효력이 입증되고 있다. 그 외에도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도하여 좋은 효과를 보고 있는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과 자료들을 모아 연구, 연수, 교육, 훈련의 도장을 마련하면, 각급 학교의 학생들을 비롯하여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제를 특화해서 거기에 관련된 도서, 영상물, 디지털 환경을 활용한 여러 가지 방식의 전시 및 교육 방법을 동원하면, 이 지역이 자랑하는 문화의 한 축을 확실하게 담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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