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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2005 여름 여자와 어머니, 노을을 연상케하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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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26 00:00 조회3,2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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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무덤은 저 산자락 정확한 위치에 있지만, 내가 어머님을 생각할 때 흔히 실제로 떠오르는 것은 저녁 노을이 곱게 물든 서쪽 하늘이다. 왜 그런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땅 보다는 하늘이 더 어울리고, 좁은 공간보다는 확 트인 곳이 지금의 어머님께는 더 걸맞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내가 가는 곳마다 항상 같이 따라다니고 어디에서나 나를 감싸안는 그 넓이가 어머님의 가슴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몸으로 나와 함께 계실 때보다야 그 온기가 더 직접 전달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안 계신 지금도 나름대로 넓은 하늘과 거기를 가득 채우는 바람처럼, 어떤 의미로는 가까이 또 자유롭게 어머님의 사랑과 나에게 익숙해진 그 특유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자신의 삶이 따로 없는 어머니

 

그런데 왜 저녁 노을인가? 노을에는 어떤 향수, 한 줄기의 슬픔이 있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뗄 수 없이 따라오는 정감이 그런 것이다. 나의 기억 속에 어머님은 한가하게 쉬시거나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한가라든가 무료라는 말조차 어머님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담고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눈길도 부엌에서, 마당에서, 밭에서 땀 흘려 일하시다가, 또는 하루만 신어도 구멍이 숭숭 나곤 하던 우리 형제들의 그 많은 양말을 기우시다가, 머리를 들어 바라보시면서 주시던 것이었다. 아, 아! 어머님께는 당신의 삶이 따로 없었다.

 

 

 

태양처럼 따스한 어머니

 

하루 온종일 자신을 태워 살아 있는 것들을 먹이고 따뜻하게 보호해 주다가 이제 일을 끝낼 때쯤에는 서쪽 하늘을 찬란한 빛깔로 물들여 우리의 가슴에 감동을 주고 사라지는 태양. 어머님을 회상하는 데 왜 이런 영상이 떠오르는 것일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도 내 발길을 밝혀주고, 온 몸을 따뜻이 감싸주는 그 솜씨가 어머니의 사랑, 그것을 가득히 실어 나에게 전해주던 그 눈길을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잉태 순간부터 아름다운 꿈 품어

 

애 가진 여자의 상상력이라는 말이 있다. 여자가 아기를 잉태하면 어머니가 되기 시작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이 그 정신 속에서 뿐만 아니라 그 몸 속에서도 커간다. 몸 속에 자라고 있는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기고, 귀엽고,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엄마는 그 상상력과 바람, 기도, 아기와의 대화를 통해서 몸 속에 자라고 있는 생명을 그렇게 만들어간다. 도공이 진흙을 이겨 온갖 아름다운 작품을 빚어 만들듯이, 엄마는 자신의 뱃속에 이제 막 들어선 생명을 그렇게 해서 빚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신비롭고 놀라운 자연 속에 들어가 아기에게 그 경치를 말해주고, 장차 보게 될 세상의 희망찬 모습을 이야기해 주면, 아기는 몸 속에서 점점 더 훌륭한 모습을 띠어 간다.

 

 

하느님은 창조적 사랑의 원형

 

아직 꼴을 갖추지 않은 진흙덩이 속에서 벌써 걸작품을 보아내는 것은 실력 있는 도공의 창조적 눈길이다. 어머니도 똑같은 의미에서, 아니 이 세상의 어떤 도공보다 더 참된 의미에서 창조적 눈길을 지닌다. 지금으로서는 거의 아무 것도 없는데, 거기서 이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을 상상하며 그것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서 기울이는 애정과 노력, 그것을 우리는 창조적 사랑이라고 한다. 하느님은 이 창조적 사랑의 원형이다. 그분은 본래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 재료도 없이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께는 망가진 것이라도 무엇인가 있는 것을 가지고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창조주께서는 망가진 인간을 새로 만들어 내셨다. 복음서는 그런 이야기들로 짜여 있다. 망가졌던 사람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하였다”(루가 15,1-2).

 

 

잃었던 양 비유 맑은하늘 천둥소리

 

그런 사람들, 무언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상대방끼리만 주고받는 습관과 생각에 늘어붙어 있는 우리에게, 잃었던 양, 잃었던 은전, 잃었던 아들의 비유는 맑은 하늘의 천둥소리다. 같은 내용을 다른 비유를 들어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우리의 머리와 정신 속에 못을 박듯이 박아주려고 하신 것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가장 감동적인 사례이다.

 

 

어머니의 눈길은 사랑 그윽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을 제일 잘 보여주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에 찬 눈길이다. 아버지의 사랑도 물론 마찬가지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모두 여성인 편이다. “씩씩한 젊은이가 깨끗한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듯이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아내로 맞으신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반기신다”(이사 62,5).

 

 

모성애 심각하게 위협받아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세대에 사람들은 어머니의 사랑, 모성애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여인이 어머니이기보다 여자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남자는 여인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여인들은 그 요구와 일반적 흐름에 떠밀려 어머니보다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결혼 후 사고·가치기준 바뀌어

 

결혼 전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맘에 드는 상대를 찾는다. 그리고 상대를 맘에 들어하는 기준도 다분히 외적 생김새, 여자 혹은 남자로서의 매력에 맞춰진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일단 결혼을 해서 남자와 여자가 아빠와 엄마가 되면 처녀 총각 때의 사고와 가치 기준은 당연히 바뀌어야 하고 실제로 바뀐다. 성숙한 인간으로서 이제는 부모의 역할에 걸맞게 안으로 생각하고 내면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없이 자란 아기 정신 허약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이처럼 자연스런 변화와 성장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차단되어 인류 문화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깊이 침투하고 있다. 결혼을 했는데도 처녀, 총각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에게도 그것을 요구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사람의 몸에 함부로 칼을 대고, 출산 과정에도 과도하게 개입하여, 결과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자연스런 성장이 교란되고, 자녀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도 자신의 젖을 주지 않고 짐승의 그것을 먹이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렇게 한 결과 아기의 몸에 면역체계가 무너져 피부병을 비롯한 각종 질환에 쉽게 걸린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육체의 질병이 아니다. 아기 때에 엄마의 따뜻한 몸에 밀착해서 온몸으로 그 사랑을 한껏 받아들였어야 할 아기가 그것 없이 자라고 나면, 몸은 멀쩡해도 정신이 허약하고 마음에 공허가 생겨서 그것이 일평생 상처로 남아 고생하는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를 갖지 않거나 적게 낳으려는 오늘날의 추세가 그대로 계속될 경우, 앞으로 450년 후에는 지구상에 인류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자신을 희생해야 자기 실현 가능

 

처녀 총각이 만나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 자녀가 태어나 가정 공동체를 이루며, 거기에서 진정한 사랑을 먹이고 먹으면서 자랄 때에만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사람으로서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여성은 결혼을 해서 아기를 가질 때부터 여자에서 어머니로 바뀌어야 한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그만한 변화가 그 몸과 정신에 이루어져야 만 사람은 참된 성장을 경험한다. 진정한 자기 실현은, 역설적으로, 자기를 버리고 희생할 때에만 이루어진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마태 16, 25-26).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

 

사람은 사랑을 먹고서만 성장하고 자신의 진정한 키에 도달한다. 그리고 사랑은 받는 것과는 반대로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진정한 사랑을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배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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