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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2005 가을 영원으로 통하는 창문을 열어놓고 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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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26 00:00 조회3,2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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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치는 히로시마 기도하는 나가사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이 사는 도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져서 한순간에 수십만 명이 죽어간 곳이다. 그러나 똑같은 참상을 겪고도 두 도시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운 대조를 보였다.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히로시마는 신랄하고 소란스럽고 매우 정치적이고 좌파적이고 반미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그러나 나가사키는 슬프지만 고요하고 명상적이며 비정치적이고 기도로 충만하다. 전자가 분노로 꽉 움켜쥔 주먹이라면 후자는 마주잡고 기도하는 손이다.” 와세다 대학의 수학 교수였던 시게루는 이 차이를 아주 간단하게 표현한다. “고함치는 히로시마, 기도하는 나가사키.”

나가사키의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던가? 온갖 참혹한 박해를 당하면서도 400여 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져온 그리스도 신앙의 분위기와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나가이 다카시 박사는 장성하여 뒤늦게 그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실제로는 주로 아내를 통해서 나가사키 지역의 오랜 신앙 유산을 가장 잘 전수받아 충실히 살아낸 인물이다.

나가이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1945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나던 1951년까지 거의 대부분의 세월을 병상에 누워지내면서도 그 기간 동안 20권의 책을 썼는데, 이 모든 저작물과 다른 많은 자료를 기초로 하여 폴 그린 신부는 <나가사키의 노래>(폴 그린/김숭희 옮김, 2005.6.19, 바오로 딸)에서 이 인물을 우리에게 새롭게 소개하고 있다.

 

돌 같은 무신론

어머니의 죽음으로 허물어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위대한 다윈이 자연의 존재법칙을 증명해냈고 고집 센 무신론자요 사전에 ‘불가지론자’라는 단어를 수록한 장본인인 토머스 헉슬리가 모든 종교를 역사의 쓰레기더미에 버렸다고 이해하고 있던 선생들” 밑에서 나가이는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어서 입학한 나가사키 의과대학에서도 무신론적 분위기는 덜하지 않았다. 첫 강의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교수는 학생들에게 시체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제군들, 이것이 우리의 연구 대상인 사람이다. 신체의 각 부분을 지닌 몸이야. 말하자면 자네들이 관찰하고 무게를 달고 검사하고 측량할 물체지. 그리고 이것이 사람의 전부다.”

돌 같이 굳은 그의 무신론적 신념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머리맡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그때까지 숨을 쉬고 있었다. 잠시 후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생각의 틀을 단번에 허물어뜨렸다.

나를 세상에 내보내고 키워주신 어머니, 나에 대한 사랑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은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분명히 말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눈으로 단호히 말했다. ‘네 어미는 이제 죽는다. 하지만 어미의 살아 있는 영이 언제나 사랑하는 다카시 곁에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영혼 따위는 없다고 굳게 믿고 있던 내게 어머니는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영혼은 육신이 죽은 후에도 산다는 것을 어머니의 눈이 말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직관, 확신을 가져다주는 직관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생긴 무신론의 틈새 사이로 들어와 점점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으로써 나가이를 신앙의 문으로 이끌어 준 것은 파스칼의 팡세였다. “인간 이성으로는 최상의 객관적인 실재에 도달할 수 없으며, 다만 저급한 과학적 진리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단순한 과학적 사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더 높은 진리는 지혜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파악되기보다는 주어진다. 이성으로 파악되는 과학적 진리와는 달리 더 높은 진리는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간절히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충분한 빛이 주어지고, 그 반대의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주어진다.” 이런 파스칼의 말은 그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수학자요 철학자이며 신비가인 이 프랑스인은 나가이가 익숙해 있던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언어를 구사한다. “만일 여러분이 내가 한 말 가운데 매력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어떤 점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말들은 평생을 기도로 살아온 사람한테서 나온 것임을 잊지 말라. 여러분이 아직 믿을 수 없다고 해도 기도나 미사를 무시하지는 말라.”

 

나가이는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부터 이미 작은 원자폭탄의 공격을 계속 받고 있었다. 의과대학의 방사선과 교수로서 초보적인 엑스레이 기재를 이용한 각종 실험과 학생들의 훈련을 도맡아 하다 보니 죽음의 빛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큰 위험을 안고 살았지만, 그것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그는 말하곤 했다. “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학생들을 훈련시킬 책임이 있고 궁극적으로는 결핵을 발견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 모든 국민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제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저도 위험을 피할 수 없지요.” 결국 그는 몸에 큰 이상을 느꼈고, 진단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환자 나가이는 불치의 백혈병에 걸렸음. 예상 수명은 앞으로 2,3년.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게 됨.”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본인은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 큰 어려움은 자신이 죽은 다음 아이들을 맡아 길러야 할 아내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숨막히는 순간이 다가왔고, 나가이의 시선이 아내의 눈과 마주쳤다. 저자는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마침내 그가 사실을 털어놓았고 미도리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듣고 있는 듯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녀는 조용히 식탁에서 일어나 가족 제단에 촛불을 켰다. 그리고 나서 그 앞에 꿇어앉아 그녀의 가문이 250년 동안 박해를 견디면서 지켜온 십자가상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도 그녀의 뒤에서 똑같은 자세로 무릎을 꿇었는데, 바로 그 때 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흔들렸다. 그녀는 감정의 동요가 가라앉을 때까지 그렇게 기도하면서 앉아 있었다. 아내의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목표만 추구해왔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우린 결혼 전에, 그리고 당신이 두 번째로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말했지요.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삶도 죽음도 모두 아름다운 것이라고요. 당신은 중요한 일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어요. 당신의 수고는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어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갈 때 그는 절망적인 마음이었으나 아내의 이런 반응을 보고, 그 다음날은 ‘새 사람이 되어’ 엑스선과로 돌아왔다고 일기에 썼다. “아내가 비극적인 사실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어떤 말도 못하게 막음으로써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런데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나가이가 일하던 병원을 포함한 온 도시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다친 사람들을 돌보다가 뒤늦게 집, 더 정확히 말해서, 집이 있던 자리에 돌아와 폐허 속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던 순간을 그는 이렇게 적었다. “저쪽에 있는 저 검은 덩어리는 무엇일까? 바로 아내였다. 검게 타버린 아내의 두개골과 엉덩이뼈, 척추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아내의 오른손 뼈마디 사이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저것은 무엇일까? 비록 구슬은 모두 녹아버렸지만 줄과 십자가는 흔적이 남아 있어 그것이 아내가 자주 손가락으로 굴리며 기도하던 묵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흐느끼며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게 가장 소중하신 하느님, 아내가 기도하면서 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통의 어머니시여, 죽는 순간까지 신실한 아내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걸어가야 할 길은 하느님의 섭리

 

이제 어머니라는 ‘파랑새’를 기억 속에서 밖에 만날 수 없게 된 어린 딸 가야노와 그보다 몇 살 위인 또 하나의 자식을 돌볼 책임이 온전히 나가이에게 떨어졌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너무나 일찍부터 울지 않는 습성을 터득해 버렸다. 그 점을 염려하면서 나가이는 이렇게 쓴다. “어린 시절이 행복한 것은 우리가 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울면 어머니가 달려와 달래줄 것을 우리는 안다. 가야노야,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눈이 붓도록 울고 싶을 때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어른은 그렇게 행동할 수 없고, 오직 어머니가 있는 어린이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가야노가 여덟 살, 마코토가 열네 살이었을 때, 특별히 아이들을 위해 쓴 책에서 그는 말한다. “너희는 곧 고아가 될 테고 따라서 가파르고 거칠고 외로운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너희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고통을 잠재우는 약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너희가 걸어야 할 외로운 길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너희를 위해 택하신 것이다! 그 길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도록 하여라.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갈 것인지 자주 하느님께 기도로 물어보아라. 기도란 불행을 떨쳐버리기 위한 심리 전술도, 현명한 방법도 아니다. 기도는 오직 삶의 신비를 드러내는 진실한 자세다. 너희가 행복하면 그것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행복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기도하여라. 질병과 고난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있다거나 그분이 우리를 버리셨다는 표지가 아니다. 이 시대의 위대한 성인들, 예컨대 리지외의 예수 아기 데레사와 루르드의 벨라뎃다 같은 분들의 삶을 보아라. 절대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국가와 인류를 위해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만일 그래야 한다면 이 세상의 병자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예를 들어 남의 도움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는 나를 보아라. 병상에 누워 지내는 환자들을 이 세상에 ‘쓸모 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쓸모가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선하신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위대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너희가 받은 몫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너희가 각료든 가구 제조업자든, 선장이든 선실에서 일하는 급사든 더 유리할 것도 더 불리할 것도 없을 것이다.”

 

“기도하시오. 제발 기도하시오”

 

자연이라는 바다 속에 숨쉬고 살면서도 초자연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놓고 살아라. 연구를 하든,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든, 사랑을 하든, 그렇게만 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영원의 빛깔을 띠고 삶은 기쁘고 희망차고 자유로워진다.

나가이는 그렇게 믿었다. “인간이 아메바에서 우연히 진화된 존재라고 말하는 과학자들은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가엾은 일입니까!” 사람들 사이의 사랑도 초자연에 통해 있으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무한의 색채를 띠는지를 그는 잘 알았다. “나가이는 성 프란치스코가 글라라 성녀에게 느꼈던 사랑, 곧 순수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았습니다. 새카맣게 타버린 미도리의 유골을 발견하고도 그가 절망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초자연에 창문을 열어놓고 살아라. 그래서 저자는 책을 끝내며 말한다. “나가이가 죽어가면서 남긴 마지막 한 마디에 이 땅의 순례자들을 위한 그의 충고가 담겨 있다. ‘기도하시오. 제발 기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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