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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2005 겨울 영(0)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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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8-12-26 00:00 조회3,359회 댓글0건

본문

- 아기 예수의 데레사에게서 배우는 -

 

 

삶 자체가 바로 기적

 

‘교회학자’ 말만 들어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알아듣기 어려운데다 부피까지 커서 감히 펼쳐 볼 용기가 나지 않는 책을 여러 권 쓴 근엄한 얼굴의 장년 남자를 연상하게 된다. 당연히 교회 2천 년 역사를 통틀어 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분은 33명밖에 되지 않는데, 가장 최근에 거기 합류한 이는 여러 면에서 선배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1997년 요한 바오로 교황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언된 리지외의 데레사(1873-1897)는 24세에 삶을 마친 분으로 우선 가장 나이가 어렸고, 나이가 차지 않아 교황님의 특별한 윤허까지 받아서 일찍 들어간 수도생활이었지만 수도원 안에서 산 세월은 그래봐야 고작 9년이었다. 거기에다 1970년에 나란히 교회학자로 선언된 시에나의 가타리나(1347-1380) 그리고 아빌라의 데레사(1515-1582)와 함께 남자, 그것도 사실상 사제, 주교, 교황에게만 거의 유보되었던 오랜 전통을 깨고 여성으로서 교회학자의 동아리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겉에 드러나는 면면들보다, 리지외의 데레사를 선배들에 비해 더욱 크게 구별시켜 주는 것은 ‘학자’라는 말이 풍기는 의미가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데레사는 보통 의미에서 가장 학자답지 않은 인물이었다. 15세에 봉쇄 수도원에 들어갔으니 정식 공부는 그 이전으로 끝났고, 당시의 수도원 분위기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의 공부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눈은 어떤 학자 못지 않게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그 온 삶은 조금의 낭비나 헷갈림도 없이 과녁을 향해 올곧게 날아간 화살처럼 선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데레사와 관련해서는 어떤 기적 이야기도 없다. 그 삶 자체가 바로 기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기적이 필요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학자’들이 써놓은 박학하고 고답적인 책이 이 작은 영혼에게 어떻게 비쳐졌는지 본인의 말을 들어보자. 죽음을 앞두고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던 파리 외방선교회 룰랑 신부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데레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제가 어떤 영성 서적을 읽을 때, 저는 가끔 완덕이 수많은 함정과 착각의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는 말을 대하게 됩니다. 그런 책을 읽다 보면, 저의 모자라고 작은 정신은 금방 지쳐 떨어지게 되고, 저는 제 머리를 아프게 하고 마음을 삭막하게 하는 그 어려운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 ‘앞’에 있지 말고 ‘뒤’에 있어야

 

 

그런 데레사가 어떻게 해서 어울리지 않게 ‘학자’가 되었는가? 누구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기에 그런 경지에 올랐던가? 또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에게 어떤 진리를 확실히 가르쳐줄 수 있기에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는가?

 

룰랑 신부는 데레사에게 자신이 만일 선교지에서 강도들의 칼에 맞아 죽고 곧바로 천당 가기에는 자격이 안 될 경우를 생각해서 기도로써 자신을 연옥에서 좀 빼내 달라는 요지의 편지를 써 보낸 일이 있었다. 앞에 인용한 글은 그 편지에 대한 데레사의 답장 중 한 귀절인데, 이어지는 대목에서 우리는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는 성서를 집어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환해집니다. 말씀 한 마디가 내 영혼 속에 무한의 지평선을 펼쳐 보이고, 완덕은 아주 쉬운 것으로 나타납니다. 제 생각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어린 아기처럼 하느님의 가슴에 푹 안기기만 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 곧 ‘허무’임을 인정하고 어린 아기처럼 하느님의 가슴에 푹 안기기. 이것이 작은 데레사의 깜찍하고도 심오한 전략이자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데레사는 결코 작은 정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꿰뚫어 본 위대하고 큰 정신이며 길잡이로서의 면모가 드러났고, 그 길을 따라가면 누구나 하느님께 이를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교회학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데레사는 같은 편지에서 이 ‘허무’의 역할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는 해설까지 덧붙인다. 의사로부터 이미 사형선고를 받고 난 뒤라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데레사는 룰랑 신부에게 이렇게 쓴다. “삶은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으니, 이제 조금 있으면 제게 펼쳐질 복된 영원의 세계를 기다리는 동안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함께 일해요. 그런데 저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저 혼자로서는 철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그러나 신부님 곁에 서 있으면 저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위안을 받습니다. 영(0)은 자기 자신으로서는 아무 가치도 없지요. 하지만 어떤 수 곁에 있으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요. ‘방향’을 잘 잡기만 하면 말씀이지요. 절대 ‘앞’에 있지 말고 ‘뒤’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앞에 있으면 0·1; 0·01; 0·001 하는 식으로 1을 엄청난 속도로 줄여가고, 뒤에 있으면, 10; 100; 1,000 하는 식으로 1을 기하급수적 속도로 키워가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니까: 역자 덧붙임)! 예수님께서 저를 세워주신 곳이 바로 그 자리이고, 기도와 희생을 통해 멀리서 신부님을 따르면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죽기 4개월 20일 전에 쓴 이 편지는 룰랑 신부에게 사실상 데레사의 유언이었는데, 그 선교 사제에게뿐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 모두에게도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0의 영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데레사의 깨달음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뚫고 있는 것이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고 선언한 세례자 요한이 그것을 깨달았으며, 자신 안에 지진보다 더 큰 요동을 느끼며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1고린 2,9)는 사실을 체험한 바오로 사도가 깨달은 것도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 위대한 사도는 그 깨달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이 오히려 그 올바른 관계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법을 추구하였지만 끝내 그 법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믿음을 통해 얻으려 하지 않고 공로를 쌓음으로써 얻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로마 9,30-32).

 

 

 

 

곧고, 짧고, 작은 새로운 길

 

 

 

 

데레사는 어떻게 해서 이런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서도 본인의 말을 들어보자. “원장 수녀님, 아시다시피 저는 성녀가 되겠다는 열망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인들 앞에 서면 저는 그분들과 저 사이에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산과 오가는 사람들의 발 아래 짓밟히는 모래알 하나만큼이나 큰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기소침하기는커녕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 실현 불가능한 원의를 내 안에 불어넣으셨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성덕을 추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를 크게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온갖 결점을 그대로 다 안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곧고, 짧고, 작은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싶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발명품들이 계속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층계를 오를 때에도 모든 계단을 하나하나 다 힘겹게 올라갈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부잣집에는 승강기가 있어서 계단 대신 사용된다. 나도 예수님께 올라갈 수 있는 승강기를 하나 찾아내야겠다. 완덕이라는 계단을 내 힘으로 올라가기에는 내가 너무 작고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성서에서 승강기의 실마리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영원한 지혜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읽게 되었다. ‘누가 작다면 내게로 오너라.’

 

저는 찾으려 했던 것을 찾아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한 작은 영혼에게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알고 싶어서, 저는 계속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찾아 낸 것이 이것입니다. ‘젖먹이들은 그의 등에 업혀 다니고 무릎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이사야 66장12-13).

 

오, 이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한 말씀이 내 영혼을 기쁨에 넘치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를 하늘까지 올려다 줄 승강기는 예수님, 당신의 품입니다. 거기 올라가기 위해서 제가 커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저는 작은 그대로 이렇게 머물러 있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작아질 일이었습니다.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저의 기대보다 훨씬 넘치게 저의 원을 채워주셨으니, 저는 당신의 한없는 자비를 노래하겠습니다.”

 

중요한 성서대목 줄줄 외워

 

 

 

 

이런 깨달음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길은 무엇이었던가?

 

앞에서도 이미 나타나듯이 성서, 하느님의 말씀이 그것이다. 고쉐 주교의 말마따나, 데레사는 “하느님 말씀을 읽고, 쓰고, 비교하고, 반복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살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서 말씀을 외웠다. 말하자면 성서를 먹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너 사람아, 내가 주는 이 두루마리를 배부르게 먹어라.’ 그리하여 그것을 받아 먹으니 마치 꿀처럼 입에 달았다”(에제키엘 3,3)한 말씀이 데레사에게서도 그대로 실현되었던 것이다.

 

 

 

 

데레사가 중요한 성서 대목들을 다 외우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원장 수녀가 죽음을 불과 며칠 앞두고 대단히 심하게 앓고 있는 데레사를 문병갔을 때, 환자는 그 주일의 복음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의 장면을 원장 수녀는 이렇게 증언한다. “그 때 그 방에는 미사책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복음을 읽어주지 못하고 다만 그 내용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라고만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데레사 수녀는 마태오 복음 6장 24절부터 33절까지를 모두 외우는 것이었다.” 또 다른 동료 수녀의 증언에 따르면, 데레사가 대화할 때마다 입에서는 그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성서 말씀이 샘솟듯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많은 성서 대목들을 암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서 말씀은 데레사의 영혼 속에 늘 살아 있었고, 성령의 비추심 속에서 그 깊은 의미가 드러나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 대한 연구도 별로 없었고, 성서 공부를 도와줄 만한 책이나 다른 도구도 없었던 시대와 환경 속에서도 성서에 대한 데레사의 이해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 가운데 하나인 폰 발따사르는 이렇게 말한다. “데레사는 이런 환경 속에서도 젊은 나이에 신약뿐 아니라 구약 성서에 관해서도 깜짝 놀랄 정도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데레사는 복음성서를 작은 글씨로 써서 손 안에 들어갈 크기로 만들어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래서 상징적 의미로나 물리적으로나 주님의 말씀이 늘 그 가슴에 있었으며, 그것을 외움으로써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대로 그분의 참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너희가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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