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각 교구 교구장 예수 부활 대축일 메시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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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0-04-08 00:00 조회7,4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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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복음 1장 4절)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온 세상에 풍성하게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세상에서 큰 부와 권력을 누린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허무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인물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코린토전서 15장3-4절 참조). 주님의 부활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다시 부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을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지닌 인간에게 가장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수 있다는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지 않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의 유한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의 씨앗을 간직하고 세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시대와 종교를 넘어서 우리 인생의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미래의 행복한 사회로 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도 바로 여기, 생명에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인간 생명의 가치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며, 인간의 생명을 도외시한 인간 사회의 발전과 행복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어떠합니까? 생명 경시의 풍조와 반 생명 문화의 위험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50년 동안 해마다 신생아 수의 두 배가 넘는 150만여 건의 인공낙태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산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모든 행위를 단호히 반대합니다. 이는 당장의 생명의 위협뿐만 아니라 미래의 잠재적인 위험과 악의 요소까지도 포함합니다. 우리 교회가 낙태를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태아 역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윤리적으로 태아는 아무 죄도 없이 가장 안전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살해당합니다. 따라서 인공낙태만큼 개탄스럽고 잔혹한 행위는 없습니다.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일부의 주장도 인정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민법에서 부친의 사망이나 실종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한 유복자도 당당히 유산을 받을 권리가 있고 법원의 판례에서도 태아의 인격과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태아도 수태된 때부터 인권이 국법으로 분명하게 인정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태아는 수태된 순간부터 엄연히 인격의 근원으로서 존엄성을 지닌 한 인간입니다.
다행히 인공낙태방지를 위한 일부 용기있는 의료인들의 활동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낙태방지의 진정한 효과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명의 가치를 인식하고 수호하려는 범국민적 의식의 변화와 함께 정부와 관계 기관의 효율적인 정책결정과 입법 등 실제적인 사회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생명 경시와 반 생명의 문화는 우리 사회가 물질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세상의 물질을 우선적 가치로 선택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가치인 생명이 훼손되고 파괴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교회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시대적인 소명은 무엇보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한 사람의 생명도 소외됨 없이 존중되고 보호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부활을 맞이하면서 이 세상 속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책임과 사명을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영원한 생명을 다시 얻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주님의 십자가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데 따르는 고통과 희생을 당연히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용기를 내어 주님이 가르쳐주신 진리와 생명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은총의 빛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대전교구]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희망과 기쁨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사랑, 평화와 기쁨이 충만하시길 빕니다. 특별히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결심과 희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 가난하고 외로운 분들, 고통받는 이들과 직장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 효율을 앞세워 약속과 신뢰를 깨려는 "세종시"에 대한 정부의 혼란스런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 부활하신 분의 얼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기까지 우리는 성 목요일에 피땀을 흘리시며 고뇌하시는 예수님을, 성금요일에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라고 울부짖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봄에 그치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얼굴에 집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 외아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게 하셨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에페 2,4-5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1코린 15,14 참조).
예수님께서 병사들의 손에 이끌려 가시며 고통을 받으시는 동안에 스승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요한 21,15-17) 라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며 새롭게 출발한 베드로의 발자취를 따라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교회는 또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만나 빛을 받았던 바오로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새 천년기」 28항 참조). 죄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씻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십니다.
2. 생명과 자연을 살리는 사랑의 문화를 향하여
우리가 숨 쉬며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물질만능과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죽음의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아동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처지에 이를 것입니다. 가장 약하고 스스로 방어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하는 어머니 뱃속의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 사회가 참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명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생명을 발전의 수단으로 삼고 파괴하는 행위는 자연환경에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 생명이 파괴되면 그 자연을 호흡하고 섭취하며 살아가는 인간 생명도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교회의에서 한국의 모든 주교님들께서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자연 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심각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주교님들께서는 정부 실무진의 설명을 들어보았지만, 우리 산하에 회복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규모 공사를 국민적인 합의 없이 법과 절차를 우회하며 수많은 굴삭기를 동원하여 한꺼번에 왜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욕심으로 인한 경솔한 개발의 폐해가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지워질 때, 이 시대의 책임을 누가 질 수 있겠습니까?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회칙 「진리안의 사랑」에서 "환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로서, 이를 사용하는 우리는 가난한 이들과 미래 세대와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자연환경은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원료 이상으로 소중한 창조주의 놀라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연에는 그것을 무분별하게 착취하지 않고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한 목적과 기준을 알려주는 공식이 담겨 있습니다."(48항)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기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눈앞의 이익을 얻으려다가 창조주께서 몇 만 년을 두고 가꾸어 오신 소중한 작품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신앙인들 자신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성찰과 회개를 촉구하며, 정부 당국자들과 국민 모두가 우리 자신과 미래의 세대에게 책임있고 양심적인 길을 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3. 서로가 통하는 친교를 위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라고 하신 말씀을 생활에 옮겨야 합니다. "새 계명"을 사는 것이 교황님께서 "교회를 친교의 원천이며 친교의 학교로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 천년기에 우리가 당면한 큰 과제"(「새 천년기」 43항) 라고 말씀하신 친교의 교회를 이룩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사랑의 관계를 이루고 계십니다. 한 분이시면서 삼위를 이루고 계시는 친교의 하느님, 공동체의 하느님, 관계의 하느님이십니다.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전화와 휴대폰, 문자 메시지, 화상 통화와 인터넷 등,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있습니다.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고독과 외로움이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고, 자신의 이익만을 찾는 이기적인 모습이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요, 나만 잘 되면 그만 이라는 풍조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나 혼자만 행복하려고 힘쓰면 모두가 불행해지고,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면 나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해져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 이웃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며, 이웃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4.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의 메시지를 주시기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죽을 때에만 부활의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미움과 불의를 조장하는 악의 세력에 무릎을 꿇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는 믿음 안에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34) 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주님의 일꾼이 되어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각자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평화를 나누어주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물질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님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항상 깨어있는, 준비된 사람으로 존재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청합시다. 우리가 즉시 예수님 얼굴을 알아보고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형제자매들에게로 달려가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 하며 기쁜 소식을 전하고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부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시다(「새 천년기」 59항 참조).
2010년 4월 4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인천교구]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루카 24, 5-6)
2010년 부활절을 맞아 부활하신 주님의 크신 축복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병상에 있는 분들, 멀리 고향을 떠나 외롭게 사는 분들, 소외된 분들, 힘겹게 살아가는 분들이 주님의 부활을 기쁜 소식으로 맞이하기를 기원합니다. 나아가 연초부터 지구촌을 안타까움과 두려움으로 물들였던 아이티 및 칠레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부활의 기쁨을 주시고 생존자들에게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큰 위로와 희망과 힘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오늘 유난히 더 반가운 것은 우리들 위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곧 ‘죽음의 문화’ 때문일 것입니다. 실로 환경재앙, 과중한 삶의 무게로 인한 자살의 급증, 인륜을 거스른 엽기적 범죄, 미혼모 낙태율의 급증 등 연일 보도되고 있는 전율할 소식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 바닥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이 인간의 탐욕이나 미움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도 합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처해졌던 죽음의 운명을, 예수님께서 청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당신의 부활로 끝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새 희망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의 부활하심은 곧 우리의 부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너무나 기쁜 날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날입니다. 알렐루야를 부르며 주님을 찬미하는 날입니다.
분명 초대 교회 최초의 복음 선포는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 5-6).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인들이 들었던 전대미문의 이 부활소식은 이후 곧바로 사도들의 목격담으로 이어집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이들로 베드로와 열두 사도(1코린 15, 5 참조)이외에도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1코린 15, 4-8 참조)이 있음을 성경은 신이 나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부활하시어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이 부활신앙이야말로 우리 신앙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 14)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먼저 있었기에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 25-26).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 부활의 근원이며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경축할 뿐 아니라 스스로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부활 신앙을 선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크게 보아서 ‘죽음의 문화’를 거슬러 ‘생명의 문화’를 퍼트리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즉, 온갖 유형의 불의에 저항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노력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소명인 것입니다. 올해 사순절을 맞으며 교황 베네딕도 16세께서는 정의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정의란 마땅히 각자에게 주어야 할 몫을 각자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적인 개념을 거듭 확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정의를 실천하여 서로 돕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사회를 이루도록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불의로 고난 받는 사람들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듣고 힘을 얻어 이 세상을 넘어서는 더 큰 꿈을 갖도록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꿈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하리라는 꿈, 그것은 이 세상이 꿈꾸지 못하는 원대하고 아름다운 꿈입니다. 이러한 부푼 꿈을 우리만 간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의 주변에 아직도 기쁜 소식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힘차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 해의 부활절은 더욱 뜻깊습니다. 인천교구가 50주년을 맞이하는 데 마지막 점검을 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지난 50년간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업적을 더듬어 보면서, 혹여 우리의 타성으로 인해 무덤 속에 묻혀버린 보화들은 없는지 성찰하고 또 우리 교회에 아직도 부활의 빛이 필요한 어둠의 지대는 없는지 둘러보는 기쁘고 희망이 넘치는 부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이 교구민들과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수원교구]
“주님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대로 죽음을 이기시고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교회는 오늘, “이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를 노래하며 주님의 부활 대축제를 성대히 지내고 있습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 가정과 본당 공동체, 그리고 교회의 각 분야에서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함께 하길 바랍니다.
빈 무덤은 부활의 징표
1.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1) 안식일이 다가오기 때문에 성금요일 저녁에 서둘러 무덤에 묻히셨던2)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 무덤을 찾았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여인들은 처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3)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첫 번째로 목격한 마리아 막달레나와 여인들은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고, 그들은 주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였습니다.4)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죽음으로 인해 침통한 표정으로 모여 있던5) 제자들에게도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6) 거룩한 여인들과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들로서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함으로써 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의 직접적인 증언에 의해 확고하게 되었습니다.7)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 안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 하였고, 우리나라의 선조 순교자들도 이 복음의 증언자들입니다.
교회의 믿음인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
2. 교회가 매일 같이 전례 거행을 통하여 기념하는 파스카 신비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 말씀대로”8) 구약의 약속과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며 하신 약속의 실현이며,9) 그 약속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 선포의 사명을 명하신 교회 안에서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도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면서 “오늘 외아드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으니, 부활 대축제를 지내는 우리가 성령의 힘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빛을 받아 새로 태어나”10) 그분의 사명을 수행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제도 오늘도 항상 영원하신 그리스도께 무한한 찬미를 드리는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매일같이 성체성사를 거행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라고 고백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성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심인 파스카 신비
3. 교회는 초대 교회부터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없애시고 부활로 생명을 되찾아 주신”11) 이 사실을 성경과 사도들의 증언을 통해 확고하게 믿으면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결합되어 주님께서 명하신 교회의 구원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12)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희생 제사와 성사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면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 안에 현존하시며 가르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생활 안에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계명을 가르쳐 주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예수님의 부활 축제를 지내는 우리로 하여금 이 기쁜 소식을 접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요청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사회의 여러 소외 계층과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뿐만 아니라, 특히 오늘부터 50일간 거행될 부활 축제 시기를 지내며 우리 사회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외국인들과 새터민(탈북 주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의 이방인 : 하느님의 새 백성이며 우리의 가족인 이주민
4. 현시대는 국제적 경제 관계의 변화와 정보화 세계로의 전환으로 인해 모든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인종과 문화를 뛰어넘어 서로 협력하는 시대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교통의 발전은 인류의 이동을 가져오고 있으며,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와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해 국경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진출하여 살고 있으며, 그 반대로 많은 외국인들도 구직이나 혼인,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로 국내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들을 <이주민>이라 부르고 있지만, 이들은 이미 우리와 함께 사는 ‘우리의 이웃’이 되었고, 내국인과 혼인한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주민은 120만여 명으로 경기도 지역에만 33만여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수원교구 관할 지역인 안산대리구에 4만 2천여 명, 수원대리구에 3만여 명, 그리고 화성시에 2만 5천여 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이 외에 나머지 세 개 대리구에도 각각 1-2만여 명씩 고르게 분포되어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사는 새 백성이며 가족이 되었습니다.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5.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원교구 관할 지역에 사는 이주민들의 심각한 인권문제를 해결하고,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하여 다문화 가정을 이룬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도움을 베풀고 있습니다. 현재 이주사목위원회에서는 각 대리구에 이주사목센터인 <엠마우스>를 설치하여 그 산하에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여성쉼터, 남성쉼터, 어린이집,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12개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원교구 내에 나날이 외국인들이 늘어가면서 도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으며, 특히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이주민들의 사회 적응과 그들의 자녀를 위한 특별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부활 축제를 지내는 교회는 이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따뜻한 배려의 손길을 펼쳐 이들이 우리 사회의 건실하고 건강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과 새터민들에게 삶의 희망을(민족화해위원회)
6. 올해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복잡한 남북의 정치적 이유와 한계로 인하여, 오늘날 남한의 민간 대북 지원 사업은 거의 끊긴 상태이고, 많은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희망의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제 3세계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만여 명의 새터민들이 살고 있으며 그중 30% 정도인 6천여 명이 수원교구 관할 지역에 살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기 정착 과정에서 오랫동안 격리되어 살아온 이들이 우리 사회에 적응하며 사는 일은 매우 험난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들 중에는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하여 크고 작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주교회의 산하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해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 나눔’의 실천으로 북한 주민과 새터민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7. 수원교구의 민족화해위원회(민화위)는 주교회의 민화위와 깊은 결속으로 다른 교구의 민화위와 연대하여 미래의 통일 한국을 준비하며 북한 주민을 위한 의료지원과 영유아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수원교구 관할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새터민을 돕기 위해 그룹 홈 프로그램13)을 운영하고 있고, 수원과 안산 지역에 새터민 아동들을 위한 <나르샤>14)를 운영하여 새터민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에서 잘 적응해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수원교구민은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최근 북한에 결핵이 만연하여 주민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는 보도를 듣고, 사회복음화국 한마음운동본부에서는 민족화해위원회와 함께 <북한에 긴급의약품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수원교구민은 우리에게 새 생명의 희망을 주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비를 묵상하며 이 ‘생명 살리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원교구의 새복음화를 향한 노력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세상 구원의 완성’에 대한 희망과 기쁨이 있기에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수원교구에 풍성한 은총을 내려 주시고,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는 일에 항상 함께 하실 것입니다.
평화의 모후이시며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2010년 4월 4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1) 루카 24,5-6.
2) 요한 19,31. 42 참조.
3) 마태 28,9-10; 요한 20,11-18 참조.
4) 요한 20,1-9; 마태 28,1-10 참조.
5) 루카 24,17 참조.
6) 1코린 15,5 참조.
7) 가톨릭교회교리서, 641항 참조.
8) 1코린 15,3-4.
9) 가톨릭교회교리서, 652항 참조.
10) 예수부활대축일 <본기도> 참조.
11) 성 아우구스티노, 시편 상해, 138, 2 참조.
12) 전례헌장, 6항 참조.
13) 새터민들이 신자 가정에 며칠 간 머물며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체험하게 하여 적응훈련을 시키는 프로그램.
14)‘날다’의 순수 우리말.
[원주교구]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사순시기가 끝나고 부활을 맞이하였습니다.수난에서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는 과연 당신의 말씀대로 당신의 몸과 피,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면서까지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그분은 생명을 이루어내시는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확신으로, 두려움과 고통을 이기고 죽음 앞에 자신의 전 삶을, 전 생명을 내어던지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순시기 동안의 예수님에 대한 묵상은 우리에게 하나의 커다란 질문을 던져줍니다.
“과연 그분이 하신 일은 그처럼 생명을 내던질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은 하나의 도전입니다.“고통은 무의미하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요, 결국은 인간의 어떤 진실된 노력도 허무하게 끝장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어차피 죽으면 끝장인 인생 내 마음대로 즐기다 가자”라고 주장하는 세상의 믿음 앞에 예수님께서 하나뿐인 생명을 걸고 행하신 도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물음, 곧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의혹 속에 십자가 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전 삶을 걸고서 뛰어드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내려오기만 하면 당신을 믿겠다는 그럴 듯한 유혹 앞에서도 침묵으로 대답하시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고 당신 생을 완성하시며 모두가 맞이하는 죽음에 도전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바로 그 도전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입니다.당신이 살아오신 사랑의 삶으로 모든 것을 끝장내 버리는 죽음에 도전했던 그 결과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였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쳤던 하느님은 없다고 주장하며 그분을 비웃고 조롱하였고, 그분은 마침내 숨을 거두셨고 모든 것이 끝장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분을 거두어 당신 안에 살려 놓으셨습니다. 과연 하느님은 그분의 미래로 살아 계셨고, 죽음의 심연을 넘어서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당신 안에, 그리고 세상 안에 다시 살려 내십니다. 그래서 그분 예수님은 오늘 하느님 안에, 세상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까지도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도 부활은 현실입니다.죽음은 이제 절망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미움도, 우리의 실패도, 모든 사람이 우리를 외면하기에 겪는 우리의 고독도, 이제 우리에게는 절망이 아닙니다.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면, 그런 것들 안에 새로운 생명이 보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미움이 있고, 실패도 있고, 여럿이 함께 사는 가운데 느끼는 고독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롭게 사시고, 온 몸을 내던지며 사랑하셨던, 예수님도 겪으신 미움이요, 실패요, 고독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 모든 것을 넘고, 건너 뛰어 부활하셨습니다.
지난 춘계주교회의에서 주교단은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반생명적인 문화, 특히 낙태의 무분별한 허용에 대해서 “가장 약하고 스스로 방어할 수도 없고 저항할 수도 없는 어머니 뱃속의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경고하였고 이와 더불어 무분별한 4대강 개발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명하였습니다. 그 경고와 우려를 우리 모두는 새겨들어야 합니다.
“보아라.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행복과 불행을 너희 앞에 내 놓는다......너희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너희나 후손이 잘 되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신명 30,15.19)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는 수난과 십자가라는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은 참된 생명을 선택한 것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입니다.
부활, 그 참된 희망 앞에서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2010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김지석 야고보 주교
[의정부교구]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부활 삼종기도)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경축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믿음의 핵심이며 우리 희망의 바탕입니다. 문명은 더 편안하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더 행복하기보다는 더 큰 불안과 실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아도 제 2차 세계 대전 후에 독립된 100개가 넘는 나라 가운데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대열에 들고 민주화를 성공시킨 유일한 나라로 전 세계가 감탄하며 우러러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아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불안함과 실망의 밑바닥에는 나 또는 우리만을 생각하고, 너 또는 타인을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의 불편함이나 불행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타인의 소유나 인권까지도 망설임 없이 침범하는 사례를 너무나 자주 대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사조는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까지 무섭게 파도쳐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파도에 휩쓸려서도 안 되고 익사를 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반드시 우리 눈앞에 모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인류 역사상 아무도 죽음에서 살아났거나 죽은 사람을 살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하신 분은 오로지 우리 주 예수님뿐이십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도, 또 아무리 큰 재벌가라도, 아무리 위대한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죽음에서 구해 줄 인간이나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을 부당하게 재판하고 고문하고 끝내는 처형까지 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원수를 갚지 않으셨습니다. 재판할 권한도 없는 한나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판단한 카야파, 황제를 두려워하고 군중심리를 두려워하여 무죄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사형에 처한 빌라도, 호기심에 가득 차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은 헤로데, 군중심리에 휩쓸려 예수님의 고통을 가중시킨 무식한 군중…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앙갚음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을 잃고 절망 속에 헤매는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빈 무덤가에서 외롭게 울고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하여 실망 속에 걸어가고 있는 두 젊은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도 하시고, 잡혀갈까 두려움에 싸여 문을 잠그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와 평화를 빌어 주기도 하시고, 밤새도록 헛수고만 하고 빈 배로 돌아오는 제자들을 위하여 따뜻한 아침 식사까지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시며 아둔한 제자들을 자상하게 보살피시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신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실 때 키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을 고맙게 받아들이셨고, 베로니카에게 피땀으로 얼룩진 당신의 얼굴을 대주기도 하시고, 십자가에 못을 마구 박는 병사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간절한 기도를 바치시고, 뉘우치는 강도를 한없는 자비로 위로를 해 주시며 함께 죽음을 맞이하신 분이십니다. 또 성모님을 사도 요한에게, 요한을 성모님께 맡기시며 부탁하기도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고통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동시에, 이 세상 고통은 반드시 끝이 있음을 일깨워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도 몸소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모범을 따라 모든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때, 우리가 받을 상급인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확실하게 보증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을 하셨을 때도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현안들이 많았고,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영향력을 이용해 보려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협박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부활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사이 우리 교회도 정치적 이슈들로 여러 가지 형태의 유혹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교회가 (특히 성직자들이) 현실 정치에 어디까지 관여할 것인지 많은 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바로 지금이 우리 모두가 혹독한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 부활하신 주님의 가신 길을 깊이깊이 묵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과 처신을 잘 살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예수님의 마음과 분별력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도록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드려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예수 부활 아니시면 구속사업 헛되도다!
(가톨릭 성가 134장)
천주교 의정부교구 교구장 이한택 요셉 주교
[대구대교구]
부활의 삶
알렐루야! 부활 축하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알렐루야’를 노래하고 서로에게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우리들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가능해졌고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으며 모든 가치 체계가 바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지금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남북의 냉전과 대치상태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고, 세종시와 4대강 살리기 등, 양보하기 어려운 몇몇 굵직한 문제들로 국민들의 마음이 갈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서해상에서 우리 함정의 침몰로 희생된 수많은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희망할 분, 우리가 기대할 분은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쳐 이긴 생명의 승리요, 절망을 쳐 이긴 희망의 승리입니다. 또한 거짓을 쳐 이긴 진리의 승리요, 미움을 쳐 이긴 사랑의 승리요, 어둠을 쳐 이긴 빛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이 시대의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장차 반드시 부활한다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게 하는 희망 그 자체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어렵다하더라도, 하늘을 덮은 먹구름 뒤에는 빛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듯이,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모든 고통과 시련, 어둠과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삶이란 어떠한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삶이며, 과거의 구태의연한 삶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삶이며,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나누는 삶이며, 늘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주님의 부활이 가르쳐 주는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죽은 후에 새롭게 산다는 것만이 아니라 부활의 희망과 힘으로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산다는 뜻이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가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부활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부활대축일의 이 기쁜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의 삶을 살도록 다짐하고, 그로 인해 여러분의 앞으로의 삶이 더욱 행복하고 희망찬 나날 되시기를 빕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2010년 부활 대축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조환길 타대오 주교
[부산교구]
2010 부활에 즈음하여
먼저 부활절을 맞이하여 모든 분들께 행복한 생명의 삶을 기원합니다.
행복한 삶만큼 모든 분들이 보편적으로 소망하는 가치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부활을 향한 우리의 삶은 ‘죽음이 삼키지 못하는 행복한 생명의 삶’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행복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헌법조항에는 행복규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이 붙어 있습니다. ‘누구도 타인의 행복을 규정할 수 없으며, 국가도 무엇이 행복인지는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이 충족되는 만큼 행복하다’고 규정한다면, 인간의 생명과 행복은 본능충족이라는 ‘동물적 가치’에 좌우될 것입니다.
결국 행복한 삶은 각자의 ‘인생여정을 통해 이루어나가는 생명의 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생명관을 가지는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 깨닫는 생명관’ 이것이 부활을 맞이하여 우리가 새겨야 할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세상의 온갖 죽음의 힘과 맞서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인간을 참으로 죽이는 모든 이기적인 행태, 인간을 진정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행복한 새 생명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진정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행복한 생명은 어떤 생명인지를 깨달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물질적으로 진보한 이 시대에도 참된 생명관과 진정한 행복관은 여전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소유를 하고 살지만 끝없는 욕구에 늘 목말라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물질의 빈곤 문제라기보다는 삶의 내적 깨달음의 빈곤과 더욱 결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참된 삶에 대한 또 다른 눈이 열리는 행복한 길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교구장 황철수 바오로 주교
[청주교구]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부활의 희망과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신지 삼 일째 되는 날 새벽, 여인들은 향료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무덤에 당도한 여인들 앞에, 무덤을 가로막은 육중한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해하는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5). 그때서야, 여인들은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많은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여인들은 즉시 이 놀라운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하였으며, 제자들도 달려와 빈 무덤을 확인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루카 24, 7-8.11-12; 요한 20,8 참조). 그리고 힘찬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부활의 기쁜 소식을 널리 선포하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힘을 다하여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어 목숨 바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도 부활을 굳게 믿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배고픔과 추위를 감내하며 피를 흘려 순교하였고, 우리의 목자 최양업 사제는 구만 리 고달픈 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 모두도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셨다.”(1코린 15,3-4)는 복음을 마음을 다해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예비신자 1명과 냉담교우 1명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11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주일을 거룩히 지킵니다. 모든 주일은 주님의 날이요 부활의 날이며, 죄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경축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주님의 날 1-2항). 교황 인노첸시오 1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행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부활 때문이며, 우리는 부활주일만이 아니라 돌아오는 주일마다 부활을 경축합니다”(주님의 날 19항).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해주시고,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니 신자들이 주일에 함께 모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성제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고 감사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주님의 날 6항). 그러므로 신앙인은 모든 것에 우선하여 주일마다 미사에 정성되이 참여하여야 하겠고, 특히 부모들은 자녀들이 주일 미사에 참여하도록 모범을 보이고 가르쳐야 하겠습니다(주님의 날 36항). 그리스도인은 1년 52주를 꼭 지키는 가운데 주일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주일마다 우리의 부활을 확신하며, 참 희망이 있는 천상으로 우리 마음을 향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5.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힘써 사랑을 실천합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는 새 계명을 주셨고, 십자가상에서 우리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 당신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가야할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며,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싸매주며,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랑 실천이야말로 예수님을 따라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멀리는 지진피해의 아이티와 칠레 난민, 가깝게는 억압과 배고픔에 한숨짓는 북녘동포와 탈북민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냅시다. 그리고 이 땅의 낙태근절운동에 앞장선 프로 라이프 의사회처럼 우리도 ‘태아보호’에 앞장서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아름다운 유산인 ‘장기기증운동’에 참여합시다. 또한, 가족과 이웃에게 다가가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특히 고통받는 이웃에게 다가가 사랑으로 함께함으로써 이 땅에 사랑의 등불을 밝히는 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6.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죄와 죽음의 어두운 그늘 아래 있는 인류에게 구원의 빛이 비추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드리운 반생명 문화, 즉 생명의 위협이 심각하게 고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생명의 초기인 배아와 태아에 대한 생명침해가 심화되고 있고, 존엄사 논쟁으로 말기의 인간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간 생명과 밀접한 환경파괴가 극히 우려되고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믿는 우리 신앙인은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증진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부활을 축하드리며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교구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에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가득히 내리기를 기원합니다.
2010년 4월 4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청주교구 교구장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
[마산교구]
십자가 - 하느님의 사랑 방식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곳곳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신앙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축일을 경축하고 기념합니다.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기(사도 2, 24)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활하신 분께서 선물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가득 받으시고, 기쁜 마음으로 부활 축일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절대적이고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인간이 생각할 수조차 없고, 인간의 말문마저 막아버리는 하느님 사랑의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희망 속에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머물 수 있는 곳 그리고 머물러야 하는 곳은 언제나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통의 부재와 거부당한 사랑
오늘날 우리는 소통이 부재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소통대신 분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대의 말문을 막아 버리고, 무조건 자신의 말을 먼저 들어 주기만을 강요합니다. 결국 소통의 부재는 관용과 사랑의 부재에서 출발하여 오해와 독선을 불러일으킵니다.
십자가는 소통과 친교를 거부당한 사랑의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음의 선포 안에서, 인간과의 소통과 친교 안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며 당신의 사랑을 선사하십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거부에 부딪힙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느님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인간을 마주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강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사건
십자가 사건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랑 사건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사건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자신의 생명마저 내어놓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로 하느님을 거부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유로 인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며 인간과 소통하고 친교를 맺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앞서 인간을 찾아오시고, 인간보다 먼저 인간과 함께 동행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 십자가의 죽음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랑 때문에 당신을 한없이 낮추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이로써 예수께서는 죄와 죽음에 놓여 있는 인간의 처지에 동참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처신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위한 아버지의 자기희생, 아버지를 위한 아드님의 자기희생, 성령을 위한 아버지와 아드님의 자기희생으로 십자가의 어둠 속에 들기까지 전적으로 관여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모습은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이사 52,14),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으며(이사 53,2), 멸시, 학대, 천대받는 모습이었습니다(이사 53,3-4).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