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각 교구 교구장 예수 부활 대축일 메시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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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1-13 00:00 조회6,5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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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우리의 믿음은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고통 중에 있는 분들과 우리 사회 곳곳에 소외된 이웃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로 인류 구원의 사명을 완성하십니다. 따라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예수님 부활처럼 더 기쁘고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삶의 끝은 죽음이 아님을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 안에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 생명은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바쳐서 얻어주신 구원과 희생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며 보증이 됩니다(1코린 15,20-22).
우리가 부활을 맞이하며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와 죽음의 세력을 극복한 부활의 기쁨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지극한 수난과 고통,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노력과 희생의 과정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영광과 새 생명의 기쁨의 열매를 맺기 위해 먼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부활을 사는 삶이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삶이 희망보다 절망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없지 않습니다. 세상 곳곳에는 하루를 멀다 하고 전쟁과 폭력이 그치지 않고, 재난과 재해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만연한 물질 만능주의와 생명 경시 풍조는 점점 더 심해져서 인간성의 파괴라는 심각한 현실에 직면하게 합니다. 또한 인간의 탐욕은 절제를 모르고 이기적인 안락과 편의를 추구하며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를 정당화하려 합니다. 또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환호하는 사이 사람들의 사이를 더 멀리 단절시키고 다양한 갈등과 격차는 커져만 갑니다.
우리 시대가 현재 맞닥뜨린 불행의 원인은 삶의 모든 것을 경제 중심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하느님이 계셔야 하는 자리에 오히려 돈과 재물이 차지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부활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시련이 크다 해도 정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진리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주신 진리입니다.
오늘의 세상에서 해야 할 교회의 역할은 막중하고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 이 자리에,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이 일상생활 곧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신앙인은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비로소 증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부조리와 악을 저지할 수 있는 힘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믿음을 갖고 끊임없이 사랑의 무기로 악의 세력에 거슬러 싸워야 합니다(에페 6,12). 따라서 부활을 믿는 우리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은 분명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선으로 악을 이겨내는 것입니다(로마 12,21).
그런데 교회가 말로만 믿음을 외치고 자신만의 이기적인 안위와 이익만을 꾀할 때 더 이상 교회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종교가 행복과 화해의 도구가 아니라 분열과 오히려 불행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는 사회 일각의 지적을 깊이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만큼 아직도 세상은 교회와 신앙인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번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 신앙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먼저 성령의 힘으로 변화되어 가정과 사회에서 말과 행동으로 주님의 부활을 전하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도 더 이상 절망과 죽음의 어둠 속에 있지 않고 희망 속에서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여러분 가정에 주님 부활의 생명과 빛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춘천교구]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루카 24,48)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마태 28,7). 이른 새벽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아갔던 여인들에게 전해진 천사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들립니다. 오늘,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무덤에 묻히셨던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이, 보속과 희생으로 사순절을 지낸 교우 여러분과 가정에 충만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기원합니다.
두말 할 나위도 없이 부활은 우리 신앙의 정수이며 핵심입니다. 첫 인간 아담의 죄로 인해 시작된 죽음의 사슬은 새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사라졌고, 우리는 영원한 삶과 구원의 희망을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느님, 주님의 사랑과 희생의 결과입니다. 공생활을 통해 말씀과 놀라운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신 주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당신의 가르침이 참되고 영원한 것임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부활은 진정으로 기쁜 소식(복음)이며,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영광스러운 부활도 반드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선행되어야 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겟세마니와 골고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땀과 희생, 그리고 죽음의 돌무덤이 있었기에 부활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 수난과 죽음의 충격이 너무나 컷기에 제자들조차 처음에는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녹녹치 못한 삶의 현실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앞에 벌어진 큰 시련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신앙인임에도 우리는 불안해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우리의 나약함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수난 전에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또한 삶의 어려움과 고통에 직면하고 있는 모든 이웃에게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며,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지난겨울 구제역과 한파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과 대지진으로 고통중인 이웃나라 일본의 국민들에게도 주님의 부활이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교우 여러분의 기도를 당부합니다.
우리는 주님 부활의 증인입니다. 언제까지나 그 영광을 살고 전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주님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도록 강복합니다.
2011년 4월 24일 예수 부활대축일에
천주교 춘천교구 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
[대전교구]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사랑의 문화를!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미움을, 빛으로 어두움을, 생명으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매일의 삶에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습니다.
1. 우리의 삶이 매우 고달픕니다. 오르는 물가와 전세값 폭등, 젊은이들의 높은 실업율 등으로 어려운 이들이 더 어려워지는 현실입니다. 구제역 발생으로 살아있는 소와 돼지를 대량 살처분한 후의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과 침출수 문제로 농민들의 어려움이 매우 큽니다. 또한 정부 정책의 혼선으로 지역 간의 대립이 위험 수위에 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곳곳에서 놀랄만한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 나라인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방사능 방출의 위험은 땅과 바다와 공기를 오염시켜 지구의 인류 전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시위와 폭동, 리비아의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매우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집단적인 어두움” 또는 “문화적인 어두움”으로 표현하고 있음에 공감합니다. 많은 부정적인 사건들과 악한 행동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그 규모가 국제적일 때도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지역, 세대 간의 단절과 분리로 서로 간에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황금만능과 쾌락주의, 인터넷을 통한 전문적이고 이기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귀한 생명을 거스르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깊은 어두움의 밤을 지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한 마디로 어두움의 문화, 죽음의 문화, 미움의 문화가 팽배합니다.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고, 이웃과 더불어서 함께 평화롭게 산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실현할 수 없는 유토피아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듯 보입니다.
2.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라고 울부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던 이들에게도 이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죽음이 생명을, 어두움이 빛을, 미움이 사랑을 이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경은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마태 27,4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움으로 가득하여 어떤 희망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모든 이의 무덤은 시간과 함께 살은 썩고 뼈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텅 비었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빛으로, 사랑으로, 생명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메마르고 각박하다 하여도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 옵니다.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면서 부활의 문화가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가득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삶을 구체적인 일상의 삶으로 증거하여 생명과 부활의 문화를 건설하는 사람들입니다.
3. 예수님께 희망을 걸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에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엠마오를 향하여 걷고 있을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루카 24,13-35 참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의 제자들과 함께 걸어가시면서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을 때에 그들은 새롭게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을 때에 제자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제자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라고 말합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수님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죽음에서 생명을, 탓에서 용서를, 분열 안에서 일치를, 상처 안에서 영광을, 사람 안에서 하느님을, 하느님 안에서 인간을, 내 안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부활의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의 모든 힘을 가지시기를 기도합니다.
4.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사셨던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는 대한민국 국민을 울린 감동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자신의 종교, 직업, 지위, 세대를 넘어서 모든 이를 감동시켰습니다.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보잘 것 없는 이웃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의 행위를 보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울지마 톤즈에서 보였던 우리들의 눈물은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로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성금과 필요한 물자를 나누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는 나라입니다. 과거를 잊고 어려움에 처한 일본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돕고 사랑하여, 일본 사람들이 이번 “천재지변”을 잘 극복하고, 우리나라와도 더 가까운 나라가 되는, 은혜로운 기회로 만드는 것도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는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합시다. 부활한 삶을 살 때에 우리는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요한 20,9)
2011년 4월 24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인천교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부활대축일을 맞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크신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 찬미를 드리며 감사드립시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 9, 22)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1코린 15, 20)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바오로 사도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음을 마음을 다해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핵심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누구나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인간에게 큰 희망을 줍니다. 예수님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으나, 장차 우리 육신을 다시 살리실 것이기에, 우리 부활의 근원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기쁜 이유는 우리의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보다 먼저 간 의인들을 저승에서 해방시키고자, 돌아가신 뒤, 그곳에 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부활소식을 여인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여인들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이 제일 먼저 그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무덤을 찾아갔으나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그분은 늘 우리에게도 다가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뿐 아니라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 4-8참조)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재 앞에서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 어리둥절해 있었습니다.(루카 24, 41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의심을 풀어주시고자 자신을 만지게 하시고, 식사도 함께하셨습니다. 그분은 아직 흉터가 남아 있기는 했으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하느님 아버지의 신적인 영역에 계셨습니다. 다시는 죽지 않으시는 초월적인 새로운 세계, 생명의 세계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하늘의 인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1코린 15, 35-50 참조) (가톨릭교회 교리서 646 참조)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15, 14)라며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매 주일 미사 때,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중,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 부활하시고……’라고 고백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도 중에 만나고 사랑 중에 만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믿고 삽니다. 그분이 죽음을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리라는 희망과 꿈을 안고 삽니다. 그리고 그 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알렐루야를 부르며,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은 밝지만은 않습니다. 중동에서 시작된 민주화 열기는 많은 나라를 피로 얼룩지게 했으며,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큰 지진과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고통 중에 있습니다. 죽은 모든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를 기원하며, 가족과 집을 잃고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사건 안에 하느님의 뜻이 있기에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몰라, 오로지 하느님 앞에 무릎 꿇으며, 하느님께 전적인 의탁을 하게 합니다.
일련의 큰 사건들로 인해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파가 우리에게도 불어 닥쳐 많은 이들이 고통 중에 있습니다. 실업자의 급증,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 국민의 40%가 자기 집 없이 살아가는 어두운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는 우리 사회의 앞날을 걱정스럽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청소년들에게 파고드는 인터넷 해악들, 중독 등이 걱정입니다. 생명 존중보다는 극단적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죽음의 문화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행복보다는 불행, 적대감, 불신이 확산되어 있고 그로 인해 행복지수는 너무나 처져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정부는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하며, 국가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암행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구성원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습니다. 신자들은 정의롭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그가 어디에 속해 있든 맡은바 사랑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밝은 사회, 사랑이 가득한 사회를 만드는데 우리가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인천 교구는 50주년을 맞아 새 복음화, 재 복음화, 사회 복음화를 위해 많은 계획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보다 밝은 인천교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50주년을 준비하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힘겨운 여건에서 피정의 집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인지라 우리는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능력대로 힘을 모아,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주교좌 성당을 비롯하여 많은 성당들이 외국인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어졌습니다. 선교사제들과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우리는 50주년의 깊은 뜻을 새기고, 그동안 베푸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재복음화를 위한 피정의 집을 우리 힘으로 짓는 데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인천교구 50주년을 맞는 올해의 부활시기는, 더욱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이 기쁜 소식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힘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천교구가 계획한 5050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많은 이들이 기쁜 소식을 듣고 주님께로 나아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크신 축복을 기원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수원교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출 것입니다. 알렐루야 !”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어둠을 물리치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생명과 구원의 빛으로 우리에게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며 기쁨에 넘쳐 “알렐루야!”를 노래합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의 빛을 안겨주신 그리스도 부활의 기쁨이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
역사적인 사건 : 빈 무덤을 목격한 여인들과 제자들
1.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 무덤을 찾았던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인들과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1)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그들은 주님의 빈 무덤을 확인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듯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그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2) 이 기쁜 소식은 아직 주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는 믿음의 원천이 되었고, 사도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교회 신앙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생명의 빛을 되찾은 사건
2.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상 구원을 위한 구약의 약속을 실현한 사건입니다.3)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참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로 인해 잃어버렸던 우리 생명을 되찾아 주셨기 때문입니다.4) 따라서 주님의 부활하심은 어둠을 빛으로 바꾼 사건이며,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어두워진 세상을 빛으로 환히 밝혀주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류를 밝게 비추시는 샛별!’5)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사건으로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의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났고, 믿는 이들에게는 하늘나라의 문이 열렸습니다.” 6)
파스카의 신비 안에서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그리스도인
3.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하는 교회는 이 믿음으로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실현을 위해 그분께서 주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수행하며, 부활을 선포합니다. 교회는 오늘, “저희가 부활 대축제를 지내며 성령의 힘으로 새로워지고 생명의 빛을 받아 부활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7) 이 생명의 빛은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는 힘이요, 그 원천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 생명의 빛을 받아 사는 이들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8)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며, 주님을 본받아 생명의 빛을 세상에 비추면서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낳고, 사랑하고, 지켜야 할 그리스도인
4.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생명의 고귀함이 상실되어 가는 오늘날 더욱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면서 생명을 사랑하고 수호하며 인류의 번영을 위해 봉사할 의무를 갖습니다.9) 이 의무는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희생제물이 되시고 결국 부활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인합니다. 이 거룩한 의무의 중심에는 사랑의 공동체요, 학습 장소인 가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하느님 세상 창조의 첫 축복으로 부부 일치와 사랑 속에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이루고 생명에 봉사하며 자녀를 교육하는 소중한 둥지이기 때문입니다.10) 그 가운데 자녀 출산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한 창조사업의 영역이고, 부부애의 결실이며, 하느님 축복의 최상입니다.11)
오늘날 시급한 문제 :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
5.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 고민하는 시급한 문제 중에 하나는 사회 전반적으로 젊은 부부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저출산 분위기로 인해 점차 고령화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혼인의 본질과 목적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경제 제일주의와 개인주의로 인해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으며, 자녀교육의 경제적 부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는 출산을 기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생명문화의 퇴보는 최근 일련의 사건들처럼, 무한경쟁 사회에 던져진 자녀들이 쉽게 자살을 택하게 하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더구나 이러한 영향은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 출산을 더욱 기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미래를 위한 출산 장려 : <안젤로 생명 사랑회>
6. 수원교구는 출산 장려에 큰 관심과 열정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구는 지난 3월 사제평의회 의결을 거쳐 교구민들에게 ‘다자녀 운동에 참여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구 사회복음화국에서는 ‘한마음 운동 본부’ 주관으로 이미 진행해 오던 <안젤로 생명 사랑회>12) 를 더욱 활성화하고, 교구와 본당이 연계하여 다자녀 가정을 비롯한 한 부모, 미혼모 및 조손 가정 지원 사업을 펼치기로 하였습니다. 따라서 수원교구의 출산 장려 운동과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청소년들의 지원 사업에 교구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이웃에게로
7. 주님의 부활은 분명히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으로써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명하신 것처럼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 사명의 핵심은 ‘주님의 파스카 신비’입니다. 즉,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의 빛이 되시고, 새 생명을 안겨주심으로써 우리 구원의 희망이 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생명의 빛을 온 누리에 비추어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며, 우리 주위의 삶에 지쳐 있는 이들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 특히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외국인들과 새터민(탈북 주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생명의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우리 주위의 어려운 가정과 그 자녀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고, 자녀 교육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는 관심과 사랑으로 격려를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성령강림까지 50일간 거행되는 부활 축제 시기에 수원교구민 모두가 기쁨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생명의 빛’이 되시길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새 복음화를 위해 일하는 우리들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려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2011년 4월 24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1) 요한 20,1-10 참조.
2) 요한 20,11-16; 마태 28,1-10 참조.
3) 가톨릭교회교리서, 652항 참조.
4) <부활 감사송 1>, “파스카의 신비” 참조.
5) <부활찬송> 참조.
6) <부활 감사송 2>, “그리스도의 새 생명”.
7) 부활대축일 <본기도>.
8) 요한 11,25-26.
9) 사목헌장 50항 참조.
10) 창세 1,28 참조.
1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가정 공동체> 28항 참조.
12) <안젤로 생명 사랑회>는 수원교구 제 2대 교구장 故 김남수 안젤로 주교의 선종(2002년 6월 1일) 후에, 다자녀 갖기를 늘 강조했던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교구에 설치된 기구이다. 2012년은 故 김남수 안젤로 주교의 선종 10주기이다.
[원주교구]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긴 사순시기가 끝나고 부활이 다가왔습니다.
올해 사목교서의 주제는 ‘성체성사와 함께하는 성화의 해’입니다. 사순절에서 부활시기로 넘어가는 전례주기의 가장 정점에 선 이 때에 성체성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봅니다.
사순시기동안의 전례가 표현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호산나’로 환호하는 영광의 뒤안길에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피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가십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는 생의 마지막 길에서 당신께서 살아오신 삶을 결정적으로 드러내십니다. 특별히 성삼일의 전례는 그러한 예수님의 삶을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성체성사’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성삼일의 전례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예수님을 보여주고 그 의미를 확실하게 알려줍니다.
당신 생의 마지막 만찬을 하시던 날, 비장한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빵과 포도주로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십니다. ‘희생’과 ‘나눔’의 본을 보여주시고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말로만 그러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십니다. 무력하게 자신을 내어놓는 그 모습은, 자포자기나 현실도피가 아니라 당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는 선포로 보여주신 당신이 하시던 일에 대한 결정적인 성취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선택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입니다. 모두가 실패였다고 생각하던 예수님의 삶에 대한 역설입니다. ‘희생’과 ‘나눔’이었던 예수님의 삶이 무력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가득한 삶과 그분의 죽음까지도 하느님께서 당신 안에서 바로 세우신 것이 부활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희생과 나눔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삶이 참 생명으로 건너가는 것, 이것이 파스카(Pascha-건너감)요, 성체성사입니다. 생명이 죽음을 넘어 다시 생명에로 넘어가는 것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이요, 성체성사의 의미입니다.
지난 사순절의 시작에 발생한 이웃나라 일본의 대지진은 수많은 상처를 우리에게 던져주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덥쳐 버린 초대형 쓰나미는 수만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수십만 이재민의 삶의 안식처와 일자리를 쓸어버렸으며, 수백만의 가족들에게 슬픔과 탄식을 남겨 주었습니다. 자연의 재해는 그렇게 끝나지 않고,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놓은 시설물의 파괴로 이어져 방사능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언제 끝날지조차 예측이 어려운 지경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지구가 하나일 수 밖에 없음을 이번 대지진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손으로 키워놓은 과학의 힘이 역설적으로 지구가 하나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려줍니다.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이들의 상처를 감싸 안고 보듬어 주어야 할 이가 누구일까를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는 남의 나라이기에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어하는 심정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야말로 ‘세계는 하나’라는 구호가 허공에 울려퍼지는 구호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생명이 죽음을 넘어 생명에로’ 넘어가도록 우리의 기도와 손길이 닿아야 합니다. 엄청난 재앙으로 생명의 숨결을 빼앗긴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애로운 숨결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우리의 기도를 보태야 하고, 그 재앙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이 생명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의 손길을 더해야 합니다. 아직도 이어지는 재앙을 막으려는 노력들이 보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격려와 건전한 비판을 보내야 합니다. 아울러 과학의 힘으로 한없이 교만하던 인간이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얼마나 미약한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겸손을 새겨야 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죽음의 문화를 바라봅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 사회의 한 흐름을 이루어 ‘생명경시풍조’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폭력과 파괴를 미학적으로 다루는 영화와 TV, 대중매체, 게임 산업, 낙태 등을 허용하는 사회적 규범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영향들 속에서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반생명적 문화, 죽음의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자살’이라는 말이 너무도 빈번하게 들려옵니다. 대학교수에서 학생에 이르기까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에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자살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고귀한 권리인양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어찌해 볼 수 없을 만큼의 당사자의 절박함을 고려한다고 해도 너무도 분명한 것 하나는 자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하느님의 숨결을 나누어 받은 생명은 그렇게 쉽게 포기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선택의 폭이 아무리 좁더라도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삶의 절박한 순간들에 생명을 선택하는 문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에 대한 선택을 통해서 죽음의 위기에 내몰린 이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체성사를 통해서 당신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의 뜻이요, 우리가 살아야 할 성체성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부활은 살리는 선택, 곧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2011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김지석 야고보 주교
[의정부교구]
돌을 치우고, 일어나 가자.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이 교우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온 세상에 충만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되살아오셨습니다. 산 이와 죽은 이를 갈라놓았던 무거운 돌이 치워졌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대상이었던 죽음은 더 이상 의미없는 삶의 끝이 아니라, 참된 생명으로 나아가는 희망의 여정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부활은 믿는 이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것처럼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걸어가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음으로써만 주님의 부활에 함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 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로마 6,8).
십자가와 부활은 분명히 하나의 여정입니다.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를 외면한 채 부활의 영광만을 찾는 것은 헛된 일이고, 부활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삶은 그저 고통일 뿐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만물이 약동하는 봄과 함께 찾아온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도록 합시다. 불안에 떨며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첫 선물은 평화였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0).
하지만 부활의 기쁨을 맞이한 이 시간에도 전세계 곳곳에서는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연의 재앙과 전쟁의 불안 속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 굶주림에 죽어가는 사람들과 삶의 빛을 잃어버린 사람들,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평화의 은총을 내려주시기를 간구하도록 합시다.
최근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엄청난 재난을 목격하였고, 그 아픔을 함께 하였습니다. 더욱이 고장난 원전에서 새어 나오는 방사능의 공포는 이제 일본 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를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재난의 한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기쁨과 희망을 주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재난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행렬들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달려온 그들은 식량과 옷가지와 필요한 물건들을 들고 마치 전쟁터처럼 변해버린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십자가를 안고 달려가 부활의 기쁨을 전하는 신앙의 증거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찾은 여자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기쁨을 맛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시대의 갈릴래아로 가야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는 이방인의 땅이요, 가난한 이들의 땅이요, 예수님께서 아픈 이들을 고쳐주시고 기쁜 소식을 전하던 곳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도 찾아가야 할 갈릴래아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소박한 신자들이 갈릴래아로 달려가는 모습을 종종 보며 기쁨을 느낍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혼자사는 외로운 노인들을 찾아가고, 소년소녀 가장들을 돌봐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줍니다. 또 병상의 아픈 이들을 찾아가 기도해 주고,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만납니다.
우리가 시작하는 소공동체의 모임도 결국은 갈릴래아로 향해가는 발걸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돌을 치우는 천사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을 가로막고 있는 돌들을 치워야합니다. 그 돌들을 치우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이 갈릴래아로 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돌이란 우리 내면의 욕심, 이기심, 편견이나 자존심과 같은 돌일 수 있고, 사회구조적인 악의 세력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사랑을 가로막는 돌들을 치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갑시다.
다시 한번 부활을 축하드리며, 부활하신 예수님의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기 바랍니다.
2011년 부활 대축일
천주교 의정부교구 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
[대구대교구]
우리의 희망은 부활하신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부활하신 예수님의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빕니다. 특히 교구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의 첫걸음을 떼는 우리에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참된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재해와 전쟁의 소식, 자꾸만 화합과 정의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힘들게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좋아질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어디에 희망을 두어야 할지 알지 못하다보니, 착하고 정직하게 살면 손해만 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이웃을 모른 체하는 것은 다같이 죽음으로 가는 절망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고,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벗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을 가르치셨고, 몸소 그 가르침대로 사셨습니다. 지극히 깨끗하신 분께서 죄인인 우리를 벗이라 부르시며, 우리 허물을 씻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길이고, 죽음을 이기는 길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참 생명의 길을 가리켜주는 증거는 바로 우리들의 삶입니다. 낙담하고 불안해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누가 희망을 전해주겠습니까? 사람을 믿지 못하고 돈이 최고라고 여기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누가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겠습니까?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결합된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자기를 버릴 줄 알 때, 이웃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할 줄 알 때, 어둠에 싸인 세상에 빛이 되고 살맛이 나지 않는 세상에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예수님의 지체가 된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인 우리는 희망을 모르는 이들처럼 살지 말고 생명의 길로 나아갑시다. 사도께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3,1) 하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죽음을 이기는 희망이 십자가 안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주님께서 이 희망 안에 우리를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2011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부산교구]
현실의 삶이 부활의 삶이 되기를 빕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모든 분들의 삶을 인도하시고 축복해주시기를 빕니다.
부활신앙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다루는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부활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반신반의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과를 보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심에 대해서 실망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부활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응답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당신은 부활을 믿느냐’ 하는 질문보다, ‘부활은 이러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당신은 이런 부활을 믿느냐’ 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달라질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말로써 표현되는 그 깊은 의미는 단답형으로 대답되어지는 단순한 뜻을 훨씬 넘어서는 다층적이고 중첩적인 이해를 요구합니다.
이미 복음서의 부활의 증언이 이러한 의미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옆에 계시면서 먼 길을 같이 동행했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증언’(루카 24, 16), ‘부활하신 예수님을 육안만으로 이해한 사람은 유령으로밖에 보지 못했다는 증언’(루카 24, 37).
이것은 부활에 대한 신앙이 일회적인 발현사건으로 확립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살아있지만 실상은 죽은 삶’을 자각하고, ‘죽는 것 같으나 진정 살아있는 삶’에 놀라고 감동하는 과정을 통해서 체험되고 깨달아지는 생명의 길입니다.
현실의 우리의 영혼과 정신을 격하시키는 금전만능주의의 삶은 죽은 삶으로 이끌 위험이 많습니다.
영상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과 가치도 우리의 삶에는 중요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실의 외모지상주의, 건강만능주의 등도 우리를 지상에 얽매인 생명의 길로 이끌 위험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참된 생명을 얻는 길’을 고백하고 우리의 삶에 새롭게 새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는 길은 거창한 어떤 일들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에서 그 길은 시작됩니다. 온갖 욕망과 애증이 교차하는 세상살이가 이 길의 소중함을 무디게 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죽어,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에 온전히 성공하여 참되게 살아계신 주님께서 세상 모든 분들의 삶에 동행하시기를 빕니다.
천주교 부산교구 교구장 황철수 바오로 주교
[청주교구]
“두려워하지 마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죽음을 물리치시고 모든 이에게 새 생명과 평화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2. 안식일 다음 날 새벽,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 그들은 길을 재촉하며,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마르 16,3) 하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면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의 돌을 치우고 여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찾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되살아나셨다’(마태 28,1-7 참조).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마태 28,9-1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토록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새벽에 천사가 여인들에게 하신 첫 말씀이요, 예수님께서 친히 여인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3.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여인들이 걱정과 두려움에 싸여 있었던 것처럼 오늘의 우리도 걱정하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진학과 취직, 실직과 질병, 그리고 노후를 걱정하고 있고, 사회에는 날로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정치불안, 지역분열과 이념갈등, 그리고 남북긴장 고조로 불안과 걱정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도처에서는 분쟁과 전쟁, 지진과 홍수 등 자연 재해,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로 일본은 물론 온 세계에 걱정과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4. 사람을 두렵게 하는 원인에는 자연 재해도 있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과욕, 미움과 증오 등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창세기 3장은 인간이 두려워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죄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하느님의 명을 어겨 죄를 진 아담이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9-10)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인류의 두려움이 죄를 범해 하느님을 ‘떠남’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회복은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감’에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전도를 시작하시며 하느님께 돌아가라고, 곧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1요한 1,7 참조). 태풍 속에도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는 평온히 잠들 수 있듯이, 하느님 품에 안긴 인간은 비로소 걱정과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편은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4)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분명,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굳건한 믿음과 온전한 의탁은 두려움을 넘어섭니다.
5. 사람을 산란케 하고 두렵게 하는 또 하나의 궁극적 원인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피할 수 없고, 언젠가 한번은 맞이해야 할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통하여 이 죽음마저 극복하셨습니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 진리로 믿고 실천했으며, 부활을 십자가와 함께 파스카 신비의 핵심 진리로 가르쳤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38항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 피와 죽음으로 하느님을 거역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죄의 결과인 죽음을 극복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하느님의 사랑이 죄와 죽음보다도 더 강함을 입증하여 주셨고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54 참조). 그러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신 말씀은 죽음마저도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부활신앙을 통하여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죽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殉敎)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부활 신앙은 죽음의 두려움마저 넘어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6.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 신앙인은 온갖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언제나 희망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 가정과 주변에 어둠이 짙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하여도, 우리는 언제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어두움과 죽음 대신에 기쁨과 평화가 머물고, 생명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 모두는 온갖 두려움 대신에 희망의 기쁜 소식을 가족은 물론 이웃과 온 세상에 끊임없이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매괴의 성모님께 자비를 전구하여 주시기를 청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 가정과 온 세상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2011년 4월 24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청주교구 교구장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
[마산교구]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로마 6,4)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새로운 생명으로 넘쳐흐르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신앙공동체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고 기념합니다. 부활하신 분께서 베푸시는 평화의 인사를 기원합니다. 지난 사순시기 동안 우리들은 금식과 재계, 기도와 자선을 실천하고 회개와 보속의 삶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기다려 왔습니다. 인내하며 준비하고 기다려온 사순시기가 있었기에 주님의 부활 축제가 가져다주는 기쁨 또한 더없이 크기만 합니다.
빈 무덤
십자가 위에서 비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