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각 교구 교구장 예수 부활 대축일 메시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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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2-08-01 00:00 조회5,86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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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온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스며든 싱그러운 봄과 함께 우리는 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마태오 16,21) 인간적으로 볼 때 이 세상 어떠한 것도 인생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죽음의 허무함과 슬픔을 달래줄 수는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두렵고 비참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이 세상에서의 죽음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생활은 부활한 생활이며(에페 2,6),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1고린 12,12-27)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더 기쁘고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신앙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며, 보증이 됩니다.(1고린 15,20-22)
오늘날 세상은 과거보다 물질적인 풍요를누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물질만능주의, 이기주의의 어두운 면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부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은 더 심해져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고, 고통 받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뛰어난 최첨단 대중매체의 체제 아래 살고 있지만 인간의 삶은 과거에 비해 더 소외되고, 진실된 친교와 소통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는 모든 생명의 공존과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다양한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일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생명의 일치는 모두를 같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사회, 종교, 정치문제에서 우리와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랑과 호의를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대화는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사목헌장 28항)
이제 곧 국민을 위한 봉사자를 우리 손으로 뽑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선택의 순간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와 행복에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정치 생활의 목적인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보호하고 증진하도록 모든 국민이 자유투표를 할 권리와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봉사자를 선택하는 것은 신자들이 세상의 복음화와 공동선의 증진을 위해 참여하는 중요한 활동이 됩니다.(사목헌장 75항) 또한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나 거부하는 일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공동체의 심각한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총선이 국민의 화합과 일치를 이루고 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하는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매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믿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생활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믿음을 가진 이들은 일상생활, 삶의 현장에서 사랑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 할 수 있습니다.(마르 16,11 참조) 그때 비로소 우리는 더는 죽음 아래 있지 않고, 부활의 생명 아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여러분 마음 안에 주님의 부활과 생명의 빛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12년 부활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춘천교구]
“선포하고 증언하라”(사도 10,42)
“나는 정녕 죽지 않고 살리라.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시편 118,17)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 생명의 빛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루카 24,46)는 말씀 그대로, 주님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지난 사순절을 회개와 보속의 실천으로 채워가며 부활을 준비해 온 형제자매 여러분께 마음을 다해 축복의 인사를 드리며,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가장 큰 신비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그분께서 강생과 공생활을 통해 가르쳐 주셨던 모든 것이 헛될 것이며, 창조 때부터 이어 온 구원의 희망도 의미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여러 차례 약속하신대로 당신 외아들을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리라” (로마 6,8)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큰 소리로 알렐루야를 노래하며, 이 모든 일을 이루어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와 구원을 얻게 되었기 때문
입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부활은 극진한 사랑의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요한 3,16) 인간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모두가 이 사랑의 증인이 되어, 온 세상을 향해 부활을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님의 부활이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고통당하고 계신 분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고, 많은 혼란과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는 치유와 일치의 희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며칠 뒤에 있을 총선거가 우리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환하게 밝히고 올바로 인도하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주님 부활의 증인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새 복음화의 길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여 언제까지나 그 영광을 살고 전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도록 합시다. 주님 부활의 은총이 우리 교구의 모든 분과 공동체 에 충만하기를 기도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강복합니다.
2012. 4. 8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춘천교구 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
[대전교구]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새봄을 맞아 죽은 듯이 보였던 대자연이 새로운 생명을 움틔우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총,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하시는 일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당하며 고통받는 이들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1. 공동체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요한 16,16)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을 전해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부활하신 예수님은 공동체 안에서 당신 모습을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절망에 빠져있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함께 빵을 나누는 순간에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해주셨고(루카 24,13-35 참조), 제자들이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때 그들 한가운데에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를 전하셨으며(요한 20,19-23 참조), 고기를 잡고 있는 일곱 제자들에게 손수 빵과 물고기를 구워주시며 함께 아침식사를 드셨습니다(요한 21,1-13 참조).
부활의 삶은 더불어서 함께 사는 삶입니다. 제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함께 목격하고 체험하였듯이, “하늘의 시민”(필리 3,20)인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로마 6,8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는 세상의 불의한 구조마저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치로 돌려놓아야 할 책임이 따릅니다.
2. 혼란한 사회 속에서
우리가 생활하는 사회의 현실은 많은 어려움들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런 현실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으로 찌들어 있는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나에게 이익이 되면 선이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며,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면서도 무분별한 개발이 지속되고 있고,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나만 행복하려고 하면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계층, 지역, 세대 간의 골이 깊어져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티없이 뛰어 놀면서 꿈을 키워가야 할 학생들의 폭력 소식을 접하면서 놀라움으로 할 말을 잊었습니다. 학교가 서로 더불어서 함께 사는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인성교육에 바탕을 둔 교육이 아니라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만을 위한 경쟁교육으로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고 걱정하면서 ‘이래서는 안된다, 바뀌어야만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탐욕 그 자체를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콜로 3,5 참조). 탐욕이 하느님께 순종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이 세상, 탐욕의 질서가 생명의 질서를 지배하는 이 세상은 죽음의 길목에 서있는 듯싶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요한 5,24) 부활의 증인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권력이 진실을 호도하고 생명을 유린할 때 정의와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3. 공동선을 증가시키는 총선거
며칠 후에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습니다. 헌법 제 1조 1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합니다. 국민은 자유롭게 선출한 대표들에게 주권의 행사를 위임하지만, 그러한 통치 임무를 맡은 이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잘못하면 그들을 바꿈으로써 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간추린 사회교리, 395항 참조). 국가의 중요한 결정들을 국회의원들이 결정하기에, 국회의원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합니다. 백성들의 눈물을 씻어주는 정치를 기대하기 위하여 인간에 대한 사랑과 올바른 가치관과 비전을 지닌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열린 마음과 냉철한 자세로 후보자를 검증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참조하여 그 중에 가장 나은 사람에게 투표하여야 합니다.
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합시다. 정치에 대한 체념이나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여야 합니다.
나) 국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공동선의 실현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지연, 혈연, 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나라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국민을 속이는 자를 가려내고, 도덕성을 갖춘 사람을 뽑으면 그만큼 정치 질서도 나아질 것입니다.
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읍시다. 반드시 신자들을 뽑으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국민의 생각을 인내하며 경청하고, 대화하고, 조정할 줄 아는 열린 사람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 고통받는 이들의 ‘손과 입과 발’이 되어 줄 수 있는 이들을 뽑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라) 공정한 선거 관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언론은 공정보도를 통하여 공정선거를 담보하여야 합니다. 공직자들도 사리사욕을 버리고 국민을 섬기며 공동선을 실현하여야 합니다. 유권자들도 공명선거를 해치는 온갖 비리와 불법 행위를 적극적으로 고발하여, 깨끗한 정치 풍토를 가꾸는데 최선을 다합시다.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정치를 합니다. 올 해 두 차례의 선거로 투명하고 깨끗한 선거풍토를 조성하여 정직하고 도덕성을 갖추지 않고는 정치 지도자로 나설 수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킵시다.
4.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진정한 평화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의 삶은 완전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미움과 불의를 조장하는 악의 세력에 맞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를 갖게 됐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 제자들은 믿음 안에서 나눔과 섬김의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사도 4,34)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해 나갔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정의와 평화를 나누어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우리에게 닥치는 미움, 폭력, 불의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길을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통해서 배우면 좋겠습니다. 평화에 이르는 첫 번째 길은 “법”이며, 사람들에게 그 법을 존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정의를 완성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정의와 사랑은 때때로 반대세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둘은 동일한 실재의 양면일 뿐이며, 서로 통합되어야 하는 인간 삶의 두 차원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의 2004년도 평화의 날 메시지, 10항)
미움, 이기심, 불의로 얼룩진 현실 앞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건설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살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지혜를 주십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이 지혜는 영혼과 생각의 눈을 열어주시며, 이 세상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공동체 안에서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는 부활의 증인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가 부활한 삶을 살 때에 주님을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2012년 4월 8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인천교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부활 시기를 맞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리 당신의 부활을 이렇게 예고하셨습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마르10, 33-34)
예수님께서는 예언하신 대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11, 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 마련입니다. 집회서는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고민과 마음의 두려움,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 그것은 바로 죽음의 날이다.”(40,2) 인간은 누구나 세상을 떠나겠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육신은 “영적인 몸”(1코린15, 44)으로, 영광스러운 몸과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집회서는 “죽음의 판결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보다 앞서 간 자들과 뒤에 올 자들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모든 생명체에 주어진 주님의 판결이다.……십 년을 살든 백 년을 살든 천 년을 살든 저승에서는 수명을 따질 필요가 없다.”(40,3-4참조)라고 위안을 줍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닥칠 죽음, 그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인간에게 큰 희망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1베드1,3-4) 어디 그뿐입니까? 바오로 사도는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15,13-14)라며 우리가 언젠가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됨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성 테르툴리아누스는 “죽은 자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확신이며, 우리는 부활을 믿는 자들이다.”(가톨릭 교리서 991참조)라고 말하며,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요소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 같이, 우리도 언젠가 부활하리라는 확신 속에 늘 기쁘고 희망이 넘치는 생활, 감사하며 사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이 단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 대한 희망만 간직하고 이 세상의 것들을 위해서만 최선을 다하며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경축하며 감사드리는 오늘, 이 기쁜 소식을 우리만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선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부활의 증인”(사도1,22)이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이 기쁜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쓸쓸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희망이 아니라 실망과 좌절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도 영광스러운 부활을 맞이할 것임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가난한 이웃, 고통 받는 이웃들을 외면한 채, 나만의 기쁨과 행복만을 추구하면서 복음을 선포한다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따듯한 동정심으로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주일미사 때,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 내용 중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라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고백합니다. 또한 미사 때 마다 사제가 “신앙의 신비여” 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주님의 죽음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하심을 굳게 믿는가 안 믿는가 하는 것이 신앙의 척도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필립3, 10-11)라고 천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 사목 교서에서 50만 신자를 목표로 했던 것이 이루어지기를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임을 널리 전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가족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성스러운 가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컴퓨터로 인한 편리함도 많아졌지만, 그 대신 많은 사람, 특히 학생들이 컴퓨터에 중독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활하신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 그분만이 오직 내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고, 나의 행복이심을 늘 마음 깊이 간직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크신 축복이 가득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병고에 시달리며 집에서, 병원에서 고생하는 분들,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며 나날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분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
2012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수원교구]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그리스도 안에 일치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어 온 인류를 구원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과 본당 공동체, 그리고 여러 사목 현장에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부활의 기쁨
오늘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사랑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부활 성야부터 밝게 타오르는 부활초는 우리의 어둡고 무거웠던 마음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밤에 초를 밝혀 들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세상에 선포합니다. “비춰진 땅아 깨달아라. 세상 어둠 사라졌다. … 거룩한 이 밤은 불기둥의 빛으로써 죄악의 어둠 몰아낸 밤.”1) 어둠을 몰아내는 이 초는 당신의 사랑과 희생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의 사슬에서 풀어주신 주님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부활 성야 때 축복하는 세례수는 우리가 세례를 통해 주님과 함께 묻혔으며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새로운 삶을 선물로 받았음을 상기시켜 줍니다.2) 세례성사를 통해 우리 모두는 과거의 어두운 삶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해방의 삶을 되찾았습니다.
‘무덤의 승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의 승리자’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창조 때부터 시작된 구원 역사의 정점을 이룹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이 당신의 아들에게서 온전히 드러나고 실현된 것입니다. “오, 오묘하도다,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 오, 헤아릴 길 없는 주님 사랑! 종을 구원하시려 아들을 넘겨주신 사랑!”3) 인간의 교만과 배반, 탐욕과 이기심, 분노와 질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십자가는 목숨을 내어주는 주님의 사랑의 행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벗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의 ‘완전한 사랑’4)의 표지이며,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새 계명의 완성’입니다(요한 13,34; 15,12-13). 주님의 사랑으로 새로 태어난 이에게 십자가는 걸림돌이나 어리석음의 표지가 아니라(1코린 1,22-25), 주님의 영광이요 세상 모든 이를 당신께로 이끄시는 축복의 근원이며 은총의 원인이 됩니다.5) 주님의 부활은 이 지극한 사랑이 결국 죄악과 죽음과 싸워 승리하였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인 파스카의 삶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우리 모두는 파스카의 삶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이 삶은 벗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제제일주의와 물질만능주의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경제발전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풍요도 주었지만, 우리 사회에 많은 부조리를 양산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경제논리로 평가하는 시류에 편승하여 우리 문화는 점차 선과 악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6) 더욱이 최근 들어서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경제적 불평등과 소외현상이 확산되며 실업과 빈부격차가 극대화되고 경제적?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 폭력, 인권 침해, 소통의 부재, 생명 경시 풍조, 환경 파괴 등은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을 파괴하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실 앞에서 우리 신앙인들 또한 “그동안 ‘하느님의 것’을 잊고 살아왔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활 대축제를 지내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실천하신 파스카의 삶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 우리 사회를 정화하고 완성해야 할 사명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7) 그것은 우리가 파스카의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곧,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가난의 길, 십자가의 길, 섬김의 길에 참여함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영성 운동
올해는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희년이 시작되는 역사적이며 감격적인 해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발전을 이룬 우리 교구가 50주년을 맞아 더욱 성숙한 교구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희망과 설렘으로 기다리는 이 은총의 해를 통해 우리는 신앙 안에서 영적으로 새로워져 신앙의 열정을 되찾고, 신앙의 기쁨을 일상 안에서 구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 영적인 도약의 해를 잘 준비하기 위해 교구는 올 부활 시기부터 50주년 기념 영성 운동을 실시하고자 합니다. “잘 섬기겠습니다.”라는 영성 운동입니다. 안으로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그분의 겸손과 섬김의 삶을 본받아 영적으로 새롭게 되고, 밖으로는 이를 이웃 안에 실천하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증거할 때 그리스도의 복음은 탐욕과 폭력으로 형성된 ‘죽음의 문화’8)를 추방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죄와 죽음을 이기고 ‘무덤의 승리자’로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어 온 세상에 희망의 불을 지펴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늘 전구해주시는 우리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필요한 은총을 간구해주실 것입니다.
평화의 모후이시며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아!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2012년 4월 8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1) 부활찬송.
2) 로마 6,3-4; 부활 감사송 1.
3) 부활찬송.
4) 아우구스티노,「요한 복음 주해」84, 1-2(CCL 36, 536-538. 성무일도 성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참조).
5) 대 레오 교황,「설교집」8,6-8(PL 54, 340-432. 성무일도 사순 제5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참조).
6) 교황 베네딕토 16세, 「2012년 사순 시기 담화문」 참조.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37-39항 참조.
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27항 참조.
[원주교구]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부활대축일을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빕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허무함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부활은 삶이 절망에 이를지라도 그 절망이 끝이 아님을, 그 절망 너머에 희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망의 근원이 하느님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부활은 그야말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바꾸어 버린 사건입니다.
성경은 안식일 다음 날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존경하며 따랐던 예수님을 죽음과 함께 떠나보내고 슬픔을 닦고자 향유를 들고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시신의 주인과 쌓아온 지나간 추억을 나눌 수는 있지만 그와 함께 하는 더 이상의 미래는 담지 못하는 닫혀 있는 무덤, 그곳은 ‘절망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 무덤이 열려 있습니다.
‘닫혀 있는’ 무덤이 아니라 ‘열려 있는’ 무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흰 옷의 젊은이가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마르 16,6)
무덤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있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통해 절망으로 들어갔던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전하여 줍니다. 그분은 죽음에서 되살아나셨다고, 그래서 닫힌 무덤 속에 계시지 않다고, 보라고, 그분의 시신을 모셨던 무덤이 열려있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절망 속에서 머무르지 않는 그분이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희망은 절망 속에 갇힐 수 없는 법입니다. 부활은 희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희망은 때로는 절망의 틈새에 갇히기도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을 거쳐 무덤에 머무르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절망의 늪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절망의 늪을 통과하여 나타납니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닫혔던 무덤이 다시 열린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희망이 절망 속에 영원히 갇혀버린다면, 그것은 거짓 희망일 뿐입니다. 참된 희망은 어떠한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빛입니다.
우리는 부활성야의 예식에서, 어두운 밤에 촛불을 밝혀 들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심을 고백합니다. 세례 받을 때 받아들었던 촛불도 떠올려 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빛으로 살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니,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을 좇아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밝혀 들은 촛불이 속삭이듯이, 우리는 바람이 불면 곧 꺼질 듯한 나약한 인간이기에 지상에 살고 있는 나약한 인간 조건을 하나도 외면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울고 웃으며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손에 나약하더라도 분명히 빛을 밝히는 촛불 한 자루가 들려 있듯이, 울고 웃더라도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의 삶 안에 밝히고 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참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어섰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갈수록 각박하게 느껴집니다. 물가는 오르고, 자녀들 교육비는 등을 짓누르고, 자영업자들은 열심히 일해보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고, 실업자에게 일자리 찾기는 너무 힘듭니다. 빈익빈부익부의 사회양극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못살겠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모습을 볼 때, 사목자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삶이 비틀거린다 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중심을 잡으면 됩니다.
아니, 넘어져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닫혀 있는 무덤이 열리고 죽었던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절망의 틈새를 헤치고 희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십자가의 슬픔 뒤에 부활의 기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를 거쳐 마침내 부활시기에 이른 것처럼 슬픔과 절망 뒤에 기쁨과 희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기쁨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덤을 열어젖히고 갈릴래아로 가야합니다.
천사는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
갈릴래아,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먹고 뒹굴며, 삶의 체취를 남기셨던 곳, 당신과 제자들의 삶의 자리였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곳에서 이루어질 참된 기쁨의 만남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갈릴래아, 그곳이 바로 우리가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자리요, 우리의 삶이 부활하는 자리입니다. 주님을 만난다고 일과 사람을 피해 심산유곡의 피정센터에 내내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부활한 주님과의 만남은 우리들 모두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 가정, 직장 그리고 이웃 공동체는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삶의 현장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희망을 갖고 돌아가는 삶의 자리 갈릴래아,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여러분에게 전해진 희망의 빛으로 주위를 밝히십시오.
아울러, 곧 이루어질 선거에 참가하여 올바른 선택을 권고합니다.
감정과 편견으로 인한 선택은 늘 국민들에게 아픔이었음을 기억하고, 과거에 대한 판단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바른 전망을 가지고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봉사할 보다 나은 지도자들을 일꾼들로 선출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2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 김지석 야고보 주교
[의정부교구]
“돌을 치워라”
-요한 11,39-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십자가 위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희망의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았던 무거운 돌이 치워졌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대상이었던 죽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삶의 끝이 아니라, 참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기쁨과 희망의 여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기초요, 희망의 근거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부활은 믿는 이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부활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두려움도 절망도 고통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죽어야만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역설이 부활입니다.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때로는 희생으로, 때로는 인내의 모습으로, 때로는 관용과 침묵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을 희생시키고 죽이고 부서뜨리는 일 없이 십자가의 죽음은 불가능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분명히 하나의 여정입니다.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를 외면한 채 부활의 영광만을 갈망하는 것은 헛되고, 부활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빼앗긴 십자가의 삶은 단지 고통일 뿐입니다.
부활은 찾아왔지만 마냥 기뻐하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어두움이 많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생기는 자연재해가 우리에게도 예외일 수 없고, 특히 원전의 가공할 만한 위험이 있는 데도 편리함과 경제적인 이득만을 생각하여 원전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걸고 넘어온 북한주민들이 다시 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 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데도 우리는 아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무관심한 채 있습니다. 또한 권력과 부를 위해서는 공동선이나 윤리는 안중에도 없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인격과 생존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원활한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세대 간 격차라는, 여와 야라는 등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집단이나 사람들에 대해서는 대화나 타협의 여지가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 평화가 넘쳐흐르는 훈훈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만든 이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단호하게 배척하거나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참아주고 대화하면서 그래도 하나 되기 위해 애쓰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장벽, 이 돌들을 치우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밝고 훈훈한 사회, 예수님의 부활을 볼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부활을 전하는 성경에서도 돌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었을 때, 그들은 돌이 치워졌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예수님의 부활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돌들을 치워야합니다.
우리에게는 사랑과 일치와 평화를 가로막는 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돌들을 치우는 일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하고 화해하며 일치를 위해 한발 내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교구에서 올 해 들어 시작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바치는 묵주기도 7천만단 봉헌 운동도 돌을 치우는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갈릴래아로 가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찾은 여자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우리 역시 이 시대의 갈릴래아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곳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는 명예와 권력이 있는 곳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있고 가난한 이들이 있는 변방의 땅입니다.
우리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가야 할 갈릴래아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갈릴래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찾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기쁜 소식을 전하며 평화의 인사를 나누도록 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12년 4월 8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의정부교구 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
[대구대교구]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의 삶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부활절은 모든 축일 중의 축일이요, 모든 주일 중의 주일입니다. 성탄절이 예수님의 지상 탄생일이라면 부활절은 주님의 영원한 탄생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허무하게 고통과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나라에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매우 어렵고 중요한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대화는커녕 어느 때보다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 안의 정치권도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갈라져있으며 이와 함께 국민의 마음도 갈라져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정치의 근본원리는 당리당략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 추구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치는 모름지기 모든 국민의 행복과 지역 균형발전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이를 성취하기 위하여 국민의 선거로 그 일꾼을 뽑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 주권자인 국민의 보다 적극적이며 신중한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생명의 승리요, 절망을 이긴 희망의 승리입니다. 또한 거짓을 이긴 진리의 승리요, 미움을 이긴 사랑의 승리요, 어둠을 이긴 빛의 승리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던지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세상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절망이 있을 수 없고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삶이란 어떠한 어려움에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삶이며, 과거의 구태의연한 삶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삶이며, 서로의 어려움과 고통을 서로 나누는 삶이며, 늘 감사하고 사랑하면서 사는 삶 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이 가르쳐주는 위대한 진리는, 우리가 죽은 후에 새롭게 산다는 것만이 아니라 부활의 희망과 힘으로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야 우리가 부활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이라는 이 기쁜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서부터 부활의 삶을 살도록 다짐하고, 여러분의 앞으로의 삶이 행복하고 희망찬 나날 되시기를 빕니다. 다시 한 번 부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2012년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청주교구]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요한 20,1).
2.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죄와 죽음의 힘도 예수님의 부활을 막지 못하였고, 무덤을 막았던 육중한 돌과(마르 16,4 참조)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막지 못하였습니다(마태 28,4 참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힘으로써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이 보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와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심으로써 한없는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분명, 예수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주님의 날)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우리 생명을 되찾아 주셨습니다(부활감사송 1).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졌듯이, 믿는 이들에게 하늘나라의 문이,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부활 대축일 한 번만이 아니라, 매 주일마다 기념하고 경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우리 신앙인들은 주일마다 미사에 정성스럽게 참례하고, “이날은 주님께서 만드신 날 우리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 118,24) 하는 시편 노래를 함께 외쳐 불러야 하겠습니다(주님의 날, 1항 참조).
3.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묻히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까?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인류를 향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리 2,8)하시어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고,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지고 죽으심으로써 인간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16항).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함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함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으며, 부활이 없는 십자가도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기주의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자유는 앞세우며 책임은 소홀히 하고, 권리는 내세우면서 의무는 등한히 합니다. 영광과 안일은 달가워하면서 십자가와 희생은 꺼려합니다. 역량 있는 사람은 많지만 사람다운 사람은 적고, 종교인은 많지만 종교인다운 사람은 적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신원을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참조).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자유와 권리에 앞서 책임과 의무 수행에 힘쓰며, 자신의 이익에 앞서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4. 모든 신자는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모든 신자는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에 이르는 은총”을 청하면서, 가정과 직장, 이웃과 사회에서 먼저 십자가를 용감히 져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카 9,23 참조)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져야할 십자가란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는 일’, ‘자녀들을 올바로 교육하고 부모를 효도로 공경하는 일’,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일’ 등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즐겨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고 부활을 선포하는 길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하여, 자살과 낙태, 학원폭력은 도를 넘어섰습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과 인구고령화는 국가의 미래마저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이 문제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과 사랑의 문화 건설에 투신함으로써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5. 최근 우리 사회는 심각한 청년실업률 증가와 가계부채 상승, 권력형 비리와 고리 원자력발전소 정전사고,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 등으로 불안과 걱정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 신앙인은 온갖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언제나 희망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우리 가정과 주변에 어두움이 짙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하여도, 우리는 언제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 모두는 온갖 두려움 대신 희망의 기쁜 소식을 가족은 물론 이웃과 온 세상에 끊임없이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허락된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4월 11일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총선에서, 나라와 지역사회를 위하여 진정으로 헌신하는 분들이 선출되도록 모든 교우들은 소중한 선거권을 신중하게 행사해야 하겠습니다.
부활을 경축하며 부활의 기쁨과 희망이 신자 여러분의 가정과 지역사회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2년 4월 8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청주교구 교구장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
[마산교구]
부활 - 영원한 삶을 향한 여정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교우,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곳곳에서 생명의 기운을 감지하는 이 계절에 우리 신앙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대축일을 경축하고 기념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으시고 부활 축일을 기쁘게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를 보내면서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죽음의 세력을 떨쳐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그분의 부활과 참 생명을 체득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1. 부활 사건과 신약성경
신약성경은 부활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입니다. 이 텍스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다양한 진술과 고백을 전해줍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은 단지 사실에 입각한 사건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며(로마 10,9),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다(1코린 15,3-5)는 선언과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라는 신앙고백을(1테살 4,14) 더 중요하게 다룹니다.
2. 부활 사건과 하느님의 행위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온 유다에서 일어 난 사건”(사도 10,36 이하)으로 파악합니다. 이 사건을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와 연결시킵니다. 하느님의 행위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켜지신 우리 주 예수님” 또는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마 4,25) 와 같은 표현을 통해 드러납니다. 아울러 하느님의 행위는 “하느님께서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1코린 6,14).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보여주시는 행위”(에페 1,19; 콜로 2,12 참조)를 포함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느님의 행위를 통해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하느님은 “다시는 죽음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으시고, 육신은 부패하지 않으시며, 죽음에 사로잡히지 않으시는 분”(사도 13,34-35.37)이시므로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3. 부활사건과 그 의미
부활 사건은 진실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사건 그 자체 안에 부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부활의 의미를 함께 정리해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분의 부활을 계시하며 완성합니다. 그분의 전 생애는 죽음을 향하여 진행되고 있으며 또한 죽음을 통해 결정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분의 발현을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일으켜지시어 올림을 받으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향하여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죽음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으로 탈바꿈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하느님의 힘으로 지금 살아 계십니다”(2코린 13,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이 가져다주는 생명의 힘은 부활에서 완성됩니다. 이는 그분의 죽음이 처음부터 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