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백합 제93호(여름) 신앙의 오솔길
본문
Ⅸ. 주님의 기도
하느님의 광대하심 : 그리스도인이 주시해야하는 방향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선태 주교 옮김
“주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예수님은 이방인 지역을 거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여정 중에 외딴곳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느님 아버지와 긴 대화를 나누신 후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오셨을 때, 그분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하느님과의 그러한 친밀한 교제가 자신들에게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과 대화하는 일이 적었고,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 하나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간청한 이유를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 간청에는 약간 인간적인 감정이 섞여 있을지라도, 주님은 이 간청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기도는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던 유일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를 원문의 내용 그대로 정확하게 옮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 6,9-13).
이 기도의 단어들은 단순하고 그 문장들이 짧지만, 그 의미는 명확하고 심오합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너무 단순해서 우리가 그 깊이를 깨닫지 못할 정도입니다. 마치 맑은 공기와 드넓은 하늘, 태양과 산과 평원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진실하며 지극히 신성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을 충만하게 했던 분, 곧 그분의 아버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소원 전체는 아버지의 영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고 풍성하게 만들고, 온 세상에 확장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 삶의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이분이야말로 이 신성한 기도의 위대하고 풍성한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또한 예수님이 인류, 곧 그분의 마음에 둔 신앙인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 기도의 모든 단어에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기도를 바치라고 주셨기에, 우리는 그저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주의 깊은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그런 기도를 진실하게 드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우리 주님이 마음속으로 이상적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즉각적으로 느끼는 한 가지 사실은, 그러한 사람의 영혼은 넓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좁거나, 폐쇄되거나, 억압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의 마음은 산이나 넓은 평원처럼 넓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기도, 그리고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사소한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의 시선은 곧바로 궁극적이며 가장 위대하신 하느님께 들어 높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삼위일체 하느님의 첫 위격, 가장 첫 번째이시며 궁극적이신 위격 곧 누구에게서도 나지 않으셨고, 누구에게서도 숨결을 받지 않으셨고, 누구에게서도 파견되지 않으신 분, 온전히 자기 안에 계시며 모든 시작의 시작이신 아버지께 향합니다.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령님 또한 물론 하느님이시며,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파견되셨던 바와 같이, 그분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덕을 삶으로 실천하고 지닐 수 있도록 가르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시선을 당신 자신에게서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그분의 영과 아버지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셨습니다. 그분의 사명은 아버지께 인도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 친히 “나는 길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누군가 그분께 나아와 ‘길’이라는 그분의 말씀을 잊고 그분께만 매달리려고 한다면, 그분은 그들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으신 아버지께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안식과 궁극적인 평화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 영혼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아버지께 가는 길에서 머뭇거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께,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라 하느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들만이 올바른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아버지께 시선을 향하고, 마음이 자유롭고 넓은 사람들만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그의 마음과 시선과 기도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늘에 이르고,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들어 높이는 사람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최종 목적지는 아버지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인간의 마음은 실로 광대합니다. 영원한 높이를 향한 시선뿐 아니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의 힘을 통해서도 광대합니다. 그의 마음은 자기 자신 안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마음은 본성이나 성향상 가까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마음처럼 광대해져서 모든 사람, 같은 아버지의 모든 자녀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로서 “우리 아버지” 하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모든 형제의 이름으로 무엇을 청합니까?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혹시 그렇게 청한다면, 편협하고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기 자신보다 크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자기의 뜻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에는 하느님의 가장 거룩한 영광이 불타오릅니다. 마치 아버지의 이름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셨던 그리스도처럼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느님의 가장 거룩한 이름을 거룩하게 보존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 엎드려 경배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의 기도 내용입니다. 얼마나 광대하고 위대한 기도입니까!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리를 지키는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과 열망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영광을 향하는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광대하고 위대합니까!
이어서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열망하고, 모든 성인이 갈구하던 위대한 갈망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되고, 그래서 모든 것이 그분의 나라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갈망입니다. 그분이 실제로 모든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인간 사회의 모든 상태를 다스리는 시대가 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기를 비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의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땅에서도 순수하고 공정하게, 완전하고 전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갈망합니다. 이러한 갈망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인간의 거룩한 열정에서 비롯됩니다. 곧 아버지께서 세상 전체 안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스리시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완전히, 순수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면 이 낡은 세상은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의미는 이미 완성되고 복된 영원한 나라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도하는 사람의 시선은 땅으로 향합니다. 그는 이제껏 무엇보다 위대하고 가장 중요한 것, 곧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과 영원한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제 그는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신 빛의 아버지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일하는 데에 필요한 것을 주시라고 이렇게 청합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도 위대하고 광대하지 않습니까! “양식”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는 개인적인 것도 사소한 것도 이런저런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이미 “많은 말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기”(마태 6,8)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분은 하늘의 새들과 들의 나리꽃들을 돌보시지만, 당신 자녀들인 우리를 훨씬 더 잘 돌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베풀어주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기도문의 모든 단어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은 인간은 모든 선의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크게 신뢰한 나머지 오직 오늘만을 위해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저에게 필요한 것을 저에게 주소서.’ 내일이 되면,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시 주실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의 모든 것이 당신 손안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너그러우시고 신실하시며 전능하신 아버지의 손길에 온전히 의지하여 살고 싶습니다. 제 마음에는 두려움도, 불신도, 불안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도 함께 계십니다.
“저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주님은 종에게 일만 탈렌트를 아무런 조건 없이 탕감해 주신 임금님이십니다. 하느님 다운 큰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그 탈렌트는 저의 죄입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제가 당신에게 빚진 것을 요구하지 마소서. 당신은 너무 위대하신 분입니다. 부유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저를 용서하실 수 있고, 이로 인해 당신의 영광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자녀가 그런 신적 용서를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존재가 아님을 당신이 아실 수 있도록, 저는 저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용서합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소서.” 저도 당신처럼 조건 없이 자유롭고, 온전히 진심으로, 관대하게 용서합니다.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영원한 옥좌의 광대함이 제 마음에 스며들어, 제 마음이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같아지게 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것도 자랑할 것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관대함을 그리스도인인 제가 다른 형제에게 전해주는 것뿐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세상의 통치와 인류의 모든 운명,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모든 일, 상황과 사람 안에서 악을 낳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주님의 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주님은 치명적이고 극복할 수 없는 유혹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것을 배려하실 수 있고, 모든 악과 불행에서 우리를 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혼은 주님의 기도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무엇이 그분에게 거룩했으며, 무엇을 위해 그분이 활동하셨고 돌아가셨는지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도 그 기도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곧 인간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어떠해야 하는지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자유롭고 너그러운 인간은 자신의 시선을 늘 영원하신 아버지께 들어 높이고, 모든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관점으로부터 판단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가 거룩한 미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성변화를 마친 다음, 그러니까 아드님께서 우리를 당신 아버지와 화해하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신 십자가의 제사를 재현한 다음,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 나아와 자녀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를 표현합니다. 주례자가 “하느님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하고 장엄하게 안내하면, 우리는 엄숙하게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의 기도는 모든 미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성변화가 빠져 있어서 미사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성금요일의 전례에도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마음이 한없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 기도는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 목적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 인간이 사소한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높으시고 가장 엄위로운 하느님 아버지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정확하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관심을 가지시는 위대한 일들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일깨워 줍니다. 별개의 문제이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토록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온갖 것들에 관심을 두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 곧 하늘에 계신 하느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느님은 모든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교회에도 하느님은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아버지를 소홀히 여깁니다. 하느님보다 다른 수많은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생활은 종종 그토록 편협하고, 하찮고, 나약하고, 위축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들어 높이십시오! 시선을 높이십시오! 여러분은 영원하신 아버지에게서 왔고, 그분께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을 늘 끊임없이 생각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기도는 그분께 향해야 하며, 여러분의 선한 의도와 희생도 그분께 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님과 한마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목적을 아버지께로 가는 길로 보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