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교황대사 강론]제26회 요안루갈다제 순교자현양 장엄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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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10-08 16:05 조회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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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교황대사 강론
제26회 요안루갈다제 순교자현양 장엄미사
천주교 전주교구 치명자산성지, 2026년 10월 3일(토)
존경하는 주교님,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사랑하는 수도자 여러분,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순교자들의 증거로 가득하고, 그분들의 피로 태어난 이곳 치명자산성지에서 여러분과 다시 만나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순례자와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저를 전주교구로 초대하여 주시고, 이 장엄미사에 함께할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를 주신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순교자들의 집” 전주교구에서 보여주신 따뜻한 환대에도 크게 감동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레오 14세 교황님의 인사와 영적 친밀함을 전하며, 오늘 우리의 만남이 전주 교구와 로마 교회, 그리고 첫 그리스도인들과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피 위에 세워진 보편 교회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포옹처럼 느껴지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매년 이 “순교자들의 산” 치명자산에 모여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을 되새기고 계십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 바라보는 이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곳을 둘러싼 무성한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순교자들의 피로 비옥해진 이 땅에서 신심 깊은 수많은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 큰 감동을 줍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순교자들의 희생이 오늘날 신앙을 꽃피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함을 증언한 남녀 신앙인들의 이야기가 한층 더 깊이 다가옵니다. 그분들의 삶은 시대를 초월해 하느님께서 교회에 끊임없이 새로운 영웅을 일으켜 주신 데 대한 감사와 찬양을 우리 마음속에 불러일으킵니다.
위대한 교부 한 분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공로에 관을 씌우실 때, 사실은 당신의 선물에 관을 씌우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아우구스티노 성인, 「서한」 194). 실제로 신앙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모든 시대마다 놀라운 성덕의 모습을 빚어내십니다.
이 “순교자들의 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듯 깊은 고요가 감돌고 있습니다. 산들바람이 고목 사이를 스치며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우리 귀에 들려줍니다. 이곳에는 “호남의 사도”로 불린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1756–1801)와 그 가족 여섯 분이 잠들어 계십니다. 이분들은 1801년 박해 때 전주에서 순교하셨고, 유해는 훗날 이 산으로 옮겨져 함께 안장되었습니다. 산의 이름도 이분들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십자가의 신비가 가장 두드러지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순교란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분의 제자들과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오늘도 살아 있는 현실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신비, 곧 극도의 약함이 부활의 힘으로 바뀌는 그 신비를 경외합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십자가에 관한 설교, 곧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1코린 1,18)인 그 말씀의 의미를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되살려 줍니다.
한국 교회 전체는 순교자들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이 땅에 교회의 봄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의 모든 순교자를 기념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뜻깊은 일입니다.
전주 교구는 여러 해 전부터 ‘축제’라는 특별한 기회를 통해, 올해로 스물여섯 번째를 맞이한 요안루갈다제를 처음으로 사흘간의 순례로 확대하여 이 땅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해 왔습니다. 전주 교구는 그 안에서 묵상과 참된 기도의 이유를 발견하며, 바로 갈바리아 산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생명을 주러 오시는 분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이들의 모범을 신자들이 묵상할 수 있도록 제시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십자가의 길 위에는 고통받고 방황하는 우리 시대의 인류가 있습니다. 그 길에는 유배자와 추방당한 이들의 발걸음, 실망하며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의 발걸음, 버려진 아이의 발걸음, 병든 이와 홀로 남은 노인, 그리고 처형장으로 향하는 사형수의 휘청이는 발걸음이 있습니다. 또한, 온갖 전쟁과 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여인들의 발걸음도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결코 무력이나 권력으로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그들의 참된 힘은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연약함 안에 있습니다.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고 하십니다. 이 요구가 너무 지나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우리 안의 이기심을 미워하라는 뜻입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히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삶을 움켜쥐게 되고, 결국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히려 ‘밀알’의 마음가짐을 갖추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도 결국 그렇게 사신 분이십니다. 결국 두려움을 이겨내고, 내 것을 잃을까 망설이지 말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 이것야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길입니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산다는 것은, 의무를 소홀히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의 힘으로 맡은 바를 충실하게 완수하면서 갈바리아 산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실한 희생의 길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결국 한 알의 밀알처럼 겉으로는 없어지는 것 같지만, 썩지 않는 열매로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새로운 세상이 조금씩 열리는 게 느껴집니다. 그때 사랑은 의무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 되고, 자신을 내어주는 일에서 큰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복자 유중철 요한과 복녀 이순이 루갈다는 좋은 모범입니다. 두 사람은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혼인하기도 전에 서로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습니다. 요한은 열아홉, 루갈다는 열여섯 살에 혼인했는데, 혼인 후 한 달 만에 “오누이처럼” 살기로 약속했고, 아무리 서로 다정하게 사랑해도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시인 타고르는 “정결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칠 때 주어지는 부요함”이라고 했습니다. 그 약속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기도와 묵상으로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소원을 품고 함께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순교자로 함께 죽게 해 달라는 바람이었습니다. 결국 혼인한 지 4년 뒤, 같은 박해 속에서 몇 달 차이를 두고 두 사람 모두 순교하게 됩니다. 요한은 1801년 11월 14일, 루갈다는 1802년 1월 31일에 하느님 곁으로 갔습니다. 여러분께서 이번 축제의 주제로 삼으신 말씀,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아가 8,6)는 표현이 정말 실감납니다.
이 부부의 집은 수도원 같았습니다. 그리스도교 양성의 자리였고, 무엇보다 기도의 공간이었습니다. 영웅적인 사랑, 복음 선포, 기도, 그리고 순교의 피, 이 모든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한 신앙의 증거이자 용기의 밑거름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가정들은, 이 젊은 부부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혼인이 무엇인지 다시금 느끼실 수 있습니다. 서로의 하느님께 드린 약속을 존중하고, 힘든 밤엔 기도로 서로에게 힘을 주며, 배우자를 향한 사랑이 날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깊어지는 것, 바로 그것이 혼인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을 증언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책임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때때로 이런 장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누군가는 복음에서 말하는 용서와 화해조차도 꺼리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가 어쩌면 ‘순교의 시간’, 곧 신앙의 증거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신앙을 숨기거나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일을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복녀 루갈다가 감옥에서 어머니와 언니에게 쓴 두 통의 편지는 지금 읽어도 큰 감동을 줍니다. 그 편지에는 깊은 신심과 가족에 대한 정, 공동체 삶, 그리고 교육 수준까지 다양한 이야기와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는 역사적으로도 정말 소중한 자료입니다. 루갈다는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듯, 살아 숨쉬는 언어와 깊은 신앙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루갈다는 체포되던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함께 천국에 갈 것”이라며 가족들을 다독였습니다. 옥중에서 언니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우리 다섯 명은 목숨을 다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굳게 마음을 모았습니다. 서로 마음을 열었더니, 모두가 하느님을 위해 죽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모든 미련과 근심마저 사라졌지요. 날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자라나고 있고, 그분의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커집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더는 걱정이 남아 있지 않은 듯합니다.” 그리고 이미 순교한 남편의 옷가지가 전해졌을 때, 루갈다는 그 속에서 몰래 숨겨 둔 한 줄의 쪽지를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누이여,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 쪽지는, 우리가 제2독서에서 들었던 사도의 물음,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이라는 물음에, 삶으로 보여 준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인들의 축일에는 교회의 풍요로움과 성령의 창조적인 권능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덕이란 참으로 성령의 일이며, 교회가 늘 가르쳐 온 대로 성령 안에서의 삶이자 위로자이신 성령의 신비로운 활동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내년 8월 서울에서 열릴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요한과 루갈다 역시 여러분 또래였습니다. 젊을 때 하느님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요구하는 사랑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전주의 순교자들은 역사의 뒤안길에만 머무는 분들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의 형이자 누이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걷고 계십니다.
한국의 성인 순교자들과 복자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때에, 성덕으로의 초대는 더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우리 안에 울려 퍼져야 합니다. 우리 또한 성인답게 살겠다는 결심으로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여정이 지향하는 가장 높은 목표가 바로 성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과감히 나아가야 합니다.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어머니다운 보호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깁시다. 그리고 한국의 성인·복자 순교자들의 천상 전구를 청하며, 그분들의 변함없는 영웅적 신앙을 본받을 수 있는 힘을 하느님께 받아 누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