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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화] 2025년 제41회 성서 주간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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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1-03 17:48 조회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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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성서 주간 담화(2025년 11월 23-29일)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필리 4,7)

 

2025년 제41회 성서 주간 담화 포스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25년, ‘희망의 순례자’로서 ‘희년’을 보내는 가운데 성서 주간을 맞이하여,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필리 4,7) 주시기를 기도하며 인사드립니다.

지난 4월 21일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희년’의 시작을 알리는 성문 개방 예식 이튿날인 2024년 주님 성탄 대축일의 로마와 전 세계 보내는(Urbi et Orbi) 메시지에서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평화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모두가 희망의 순례자가 되어 무기를 내려놓고 함께 분열을 이겨 냅시다!” 이와 더불어,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전쟁과 빈곤으로 고통받는 중동,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시리아, 정치적 혼란 속에 고통받는 미얀마와 아이티,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니카라과 등을 하나하나 언급하시며 “분쟁으로 황폐해진 이 지역에 대화와 평화의 문이 열리고, 정치 지도자들과 선의의 모든 이에게 영감을 주시어, 진리와 정의를 바탕으로 한 효과적인 해법을 찾아 사회적 화합을 이루길 바랍니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8일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신 레오 14세 교황께서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서 첫 강복으로 평화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이는 무기를 내려놓은 평화,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 겸손하고 인내하는 평화입니다. 평화는 아무 조건 없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레오 14세 교황께서 하신 첫인사말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건네신 첫인사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1-23). 주님께서는 육신의 상처를 제자들에게 몸소 보여 주시며 위로하셨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며 하느님의 용서를 바탕으로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구원의 열매가 바로 평화, 곧 하느님에게서 오는 평화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이루는 평화’는 ‘인간 내면의 평화’를 위한 전제 조건이며, 이것이 이루어지면 그 상대가 누구든 ‘다른 이와 평화’를 이루고 지켜 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평화의 수직 차원은 수평 차원과 십자가를 이루며 신학 차원으로 건너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화가 지속되려면 먼저 겸손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들려준 찬미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이처럼 십자가의 길 말고는 참평화를 지속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깨지기 쉽고 덧없는 평화를 옹호하는 철학 이론이나 정치적 방편에 기초한 것이 아닌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필리 4,7)만이 참평화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평화의 하느님께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며 드높이 올리신 예수님’을(필리 2,9 참조) 믿고 갈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관념이 아니라 ‘이름을 지닌 구체적인 인물’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참조). 주님께서 몸소 평화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바오로 사도는 세상의 평화와 다른 주님의 평화를 찬미하였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평화인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우리가 신앙생활 안에서 실천하여 열매 맺기 위한 첫걸음이, 온 세상의 참평화를 바라는 모든 거룩한 전례, 특히 성찬례에서 반복하는 인사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주님의 현존을 확인하는 전례 대화는 모두 다섯 번이며, 그 가운데 마지막인 다섯 번째 인사가 바로 영성체 직전에 나누는 ‘평화의 인사’입니다. 우리가 미사 안에서 나누는 평화의 인사는 단순한 친교 행위가 아닙니다. 초세기부터 이어 온 교회 전통인 평화의 인사는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드러내는 표지이며 같은 주님의 몸을 모시고 한 몸이 되는 성찬례의 일치 신학을 담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이점을 분명히 강조하였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인류 가족 모두가 평화와 일치를 이루기를 간청하며,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성체를 모시기 전에 교회에서 누리는 구원의 일치와 사랑을 드러내며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성서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는 바로 이 평화를 청하고 또 전해야 합니다. 공동체 기도인 전례 뒤에 이어지는 우리 일상 안에서 평화를 지켜 나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교 영성의 기준이며 바람직한 성서 사도직의 시작입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19항).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평화의 질서를 알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길에 말씀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요한 1,14 참조).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평화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고, 성찬례를 통하여 주님과 하나 되어, 이 세상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질서를 이루어 나가는 하느님의 자녀이자 ‘희망의 증거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11월 23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신 호 철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