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복음: 요한 10,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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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30 17:43 조회1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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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요한 10,27).
오늘은 부활절 제4주일이다.
교회는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정하여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 일생을 바쳐 일할 젊은이들과 수도자들과 사제들을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구원 사업에 동참할 것을 결심하는 날로 삼았다. 오늘 복음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르는 양들에 대한 말씀이다. 그러면 먼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자와 양’에 대한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자.
“때는 겨울이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계셨는데 유다인들이 예수를 둘러싸고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가 이미 말했는데도 너희는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나를 증명해준다. 그러나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요한 10,22-26).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봉헌절 축제에 참석하시어 예루살렘 성전 구내를 거닐고 계실 때 일어난 일이다. 봉헌절이란 봉헌하는 축제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로 성전과 관련하여 솔로몬 시대로 소급되지만 특히 유다 마카베오가 성전을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를 가리킨다. 이 축제는 B.C. 165년 유다 마카베오에 의해 재건된 성전이 헬라인에 의해 더럽혀지자 새로운 제단을 봉헌했는데 이로 인해 봉헌 축제가 연례 행사가 되었다. 이 축제는 겨울에 행해졌고 기슬레월 제25일째에 시작하여 히즈키야가 성전을 정화한 것에 영향을 받아 8일 동안 계속되었다. 마카베오서는 이를 이렇게 전한다.
“이방인들이 그 제단을 더럽혔던 바로 그날과 그때에 그들은 노래와 비파와 퉁소와 꽹과리로 연주를 하며 그 제단을 다시 바쳤다. 모든 백성은 땅에 엎드려 그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신 하늘을 경배하며 찬양하였다. 제단 봉헌 축제는 팔 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치고 구원의 제물과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1마카 4,54-56).
이 축제는 때로는 빛의 축제로도 알려졌는데, 이는 8일간의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촛불을 하나씩 밝혔기 때문이다. 성전 시대에 이 즐거운 축제는 할렐(Hallel,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 시편 135-136편)이 특징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초막절을 본 뜬 것이었다. 그리고 비록 이 축제가 율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간섭받지 않고 지켜졌으며 예수님 시대에까지 종교적인 행사로 인식되어 성대하게 지켜졌었다.
봉헌절이 돌아오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말해주시오” 하고 대답해주시기를 강요하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믿지 않는다” 하시면서 그들의 불신을 책망하셨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들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바로 오늘 복음이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하고 대답하셨다”(요한 10,27-30).
성서에서 양이 언급되는 횟수는 어린양과 숫양을 포함해서 500회 이상이 된다. 양의 기원에 대해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보면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일찍부터 양을 사육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목축민들에게는 양이 주된 재산 및 생계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서 시대의 사람들에게 먹을 고기, 마실 젖, 옷감을 짜는 데 필요한 양털, 걸칠 옷을 만드는 데 쓰는 양피, 장막 덮개 등을 제공하였다. 또한 양은 거래 수단과 희생 제물에 있어서 중심 요소가 되었으며 번제물, 속죄 제물 및 화목 제물로 빠지지 않고 바쳐졌다.
양은 애정이 깊고 비 공격적이며, 비교적 자기 방어에 힘이 약하고, 끊임없는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목자와의 끈끈한 관계를 고려한다면 양과 목자라는 단어가 신학적 용어로 되풀이되어 감동을 주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편 저자는 목자이신 야훼 하느님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였다.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시편 23,1-4).
또한 이사야는 목자이신 하느님에 대해서 “목자처럼 당신의 양떼에게 풀을 뜯기시며, 새끼 양들을 두 팔로 안아 가슴에 품으시고 젖먹이 딸린 어미 양을 곱게 몰고 오신다”(이사 40,11)라고 노래하였고, 에제키엘도 하느님의 양떼에 대해서 “주 야훼가 말한다. 보아라. 나의 양떼는 내가 찾아보고 내가 돌보리라. 양떼가 마구 흩어지는 날, 목자가 제 양떼를 돌보듯이, 나는 내 양떼를 돌보리라. 먹구름이 덮여 어두울지라도 사방 흩어진 곳에서 찾아오리라”(에제 34,11-12) 하고 말하였다.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이셨고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의 양떼들이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마치 목자가 양들을 푸른 풀밭에 놀게 하고 물가로 인도하듯이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어 살게 하셨다. 그리고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이스라엘을 돌보아주셨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적인 모습(나해-부활 제4주일 참조)으로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셨다. 당신이 보살피고 있는 양떼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면 어떤 사람이든 그의 생활을 보호하고 지켜주시며 구원해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들은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고 하시면서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마치 목자가 양들을 지켜주듯이 당신에게 맡겨진 사람을 지켜주시겠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당신의 양떼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당신은 하나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곧 하느님의 소중한 양떼들임을 말씀하신다.
오늘 제2독서에서 요한은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르는 하느님의 자녀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태양이나 어떤 뜨거운 열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요, 옥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입니다”(묵시 7,16-17).
예수님은 착한 목자이시다. 목자가 자기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듯이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시는 분이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온전히 따르도록 해야 한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