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복음: 요한 13,31-33a.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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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5-12 08:49 조회1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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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는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오늘은 부활절 제5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주신 사랑에 대한 말씀이다. 이 사랑에 대한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이라고 하셨다. 계명이라 하심은 권고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꼭 지켜야 하는 명령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계명은 율법이었다. 따라서 사랑의 실천이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하는 율법이기도 하다.
그러면 먼저 오늘 복음의 배경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자.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이 세상을 떠나실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던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이 될 과월절 음식을 앞당겨 드셨다. 과월절 음식을 드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어 주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 주시고 나신 예수님께서는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돌아와 앉으신 다음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 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하시면서 유다의 배반을 말씀하신 다음 오늘 복음인 사랑에 대한 새 계명에 대해 말씀하신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아니, 이제 곧 주실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 일찍이 유다인들에게 말한 대로 이제 너희에게도 말하거니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요한 13,31-33).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대한 계명을 말씀하시기 전에 아버지의 집으로 떠나가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십자가의 죽음이 아버지께 영광이 되고 당신께도 영광이 됨을 말씀하셨다. 아직도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이 아버지의 뜻이며 아버지께 드리는 영광임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사랑은 법이나 명령으로 실천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적으로 깊은 곳에서 나오는 내면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을 생각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것은 사실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었는가? 예수님의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당신의 목숨을 내어놓으신 십자가상의 사랑이셨다. 이 사랑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 죽음에까지 내놓으신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을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성찬’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초기에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주의 만찬인 ‘성찬’에서 실천되었는데 ‘공동 식사’(다해-성목요일 참조)가 곧 그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아가페’라고 불렀다.
‘아가페’의 어원을 보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부여된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명사이다. ‘아가페’란 단어의 근원을 보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만찬인 ‘성찬’을 거행하면서 ‘성찬식’과 함께 나눈 ‘공동 식사’에서 나온다. 다시 말하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을 거행하면서 성찬식과 함께 공동 식사를 나누었는데 이 공동 식사를 아가페라고 불렀다. 따라서 ‘아가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사랑, 그리고 이 사랑에서 반드시 귀결되는 인간 서로 간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 계명과 같은 사랑이다.
제자들이 수행한 ‘성찬식’과 ‘아가페’가 주의 만찬인 ‘성찬’과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초대 그리스도교회 안에 주의 만찬인 성찬을 거행하면서 성찬식과 함께 나눈 공동 식사, 즉 아가페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당시에 이 공동 식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고 함께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랑과 일치의 성사적 식사였으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선적이고 친교적인 식사였다.
이렇듯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만찬인 ‘성찬’을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위해, 특히 그리스도 공동체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배고픈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 음식을 마련하였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만찬과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하신 오 천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이는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사랑의 실천적 계명이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나눈 사랑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들은 베드로의 말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날에 새로 신도가 된 사람은 삼천 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1-42).
바오로 사도는 이 공동 식사, 즉 ‘아가페’를 주의 만찬인 ‘성찬’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이를 고린토 전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온 것을 먼저 먹어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1고린 11,20-21).
클레멘스는 초기의 이 공동 식사를 ‘애찬’(愛餐, Love feast)이라는 전문 용어로 사용하였고, 테르툴리아누스는 “우리의 저녁 식사는 헬라어로 딜렉시오(Dilectio, 사랑)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행한 공동 식사는 성찬이었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여라’는 새 계명의 실천이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실천은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사도행전은 이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사도 2,46-47a).
‘아가페’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만찬인 성찬을 거행하면서 성찬식과 함께 거행하였다가 성찬 예식에서 분리되지만 아가페 정신은 지금도 종교적인 사랑으로 성체성사 안에 남아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아가페의 실천은 예배 못지 않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명하신 사랑의 ‘새 계명’으로 주어지고 있다. 즉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예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계명으로 주어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신앙 실천 덕목이 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간에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께 우리의 사랑을 보여드려야 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