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복음: 루카 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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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8-11 11:30 조회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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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기적
“주님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루카 1,48-49a).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성모 마리아가 하늘로 올라가신 날을 기념하면서 성모 마리아가 지니신 신앙심을 묵상하는 날이다. 매년 성모 승천 대축일에는 성모 마리아의 신심을 묵상하는데 금년에는 특별히 ‘성모 마리아의 발현과 기적’에 대해서 알아보자. 왜냐하면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하느님의 신성이 넘치는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더욱 확신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의 각 나라에서 발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중 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네 곳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로 과달루페에서의 발현이다. 과달루페는 멕시코시 북쪽에 인접한 비야 데 과달루페이달고에 있다. 성모 마리아는 1531년 12월 후안 디에고라는 인디언에게 나타나셨다. 1519년 마야 아즈택 문명이 융성하던 시대에 멕시코에 스페인 군대가 들어왔다. 당시 멕시코에는 여러 형태의 종교가 있었고 특히 그중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미신적 제사 행위도 있었다. 그럴 즈음에 성모 마리아께서 멕시코 원주민이었던 후안 디에고에게 나타나셨다. 후안 디에고는 세례를 받은 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는데, 1531년 12월 9일 지금의 멕시코시 근방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으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테페약 산을 넘고 있었다. 그날따라 이른 새벽 가시덤불 투성이던 산 정상에 신비한 기운이 감돌더니 갑자기 구름 속에서 찬란한 빛을 내는 한 귀부인이 나타났다. 그때 그 귀부인은 후안 디에고에게 은총을 가득히 입은 동정녀 마리아임을 밝히면서 그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메시지를 주교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그다음 날도 찾아와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자 주교는 성모님께서 주시는 표적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성모 마리아는 후안 디에고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주셨고 그는 그 장미꽃을 외투에 담아 가지고 주교에게 가져다주었다. 그 순간 주교는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받아들였는데, 겨울이라 장미꽃이 피는 계절도 아니었지만 더욱 주교를 놀라게 한 것은 후안 디에고의 외투에 새겨진 그림이었다. 그것은 귀부인과 그 옷자락을 천사가 받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성모 마리아는 스스로를 ‘과달루페의 평생 동정 마리아’로 불리기를 원하셨고 그 성화는 테페약 산 정상에 세워진 성당에 모셔졌다.
그 후 매일 수천 명씩 개종하더니 발현 후 7년만에 우상숭배와 인신 제사에 빠져 있던 멕시코인 800만 명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선교사의 활동만으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1709년 4월 27일에는 테페약 언덕에 과달루페 성모를 위한 두 번째 큰 성당을 다시 설립하고 헌당식을 가졌다. 또한 과달루페 성모가 멕시코의 수호자로 선포되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이 자취를 감추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 과달루페 성모 발현은 비단 멕시코인만을 위한 발현이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현시였다.
다음은 루르드 성모 발현이다. 루르드는 프랑스 남서부 피레네 산맥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소도시이다. 루르드 성모 발현은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번에 걸쳐 성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나타나심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발현 후 많은 병자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병을 치유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 당시 베르나데트는 14살이었고, 문맹에다가 종교교육조차 받지 못하였으며 천식을 앓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를 대신하여 어린 동생들을 돌보아야 하는 소녀 가장이었다. 그녀가 1858년 2월 11일 목요일 정오경에 나무를 줍기 위해 마을에서 서쪽으로 1km 떨어진 가브(Gave) 강변의 동굴 근처로 갔을 때였다. 강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동굴의 움푹 들어간 자리에서 후광이 빛나고 흰 옷에 하얀 베일과 파란 색 허리띠를 두르고 양 발 위에는 노란 장미가 있는 아주 ‘젊게 보이는 어떤 여인’을 보았다. 그 후 2월 14일과 18일에 그 동굴에 가서 다시 그 여인을 만났고, 2월 19일부터 3월 4일까지 22일과 26일을 제외하고 15일 동안 매일 아침 동굴에 가서 ‘동굴의 젊은 여인’을 만났다.
그동안 그 여인은 매번 베르나데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2월 24일에는 “회개하시오. 죄인의 회개를 위한 상징으로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마추시오”라는 메시지를, 그다음 날에는 손가락으로 샘물의 원천을 가리키며 그 물을 마시고 씻도록 한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리고 3월 2일에는 “사제들에게 전해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오게 하고 이곳에 성당을 짓게 하시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3월 25일 아침에는 그동안 신분을 밝히지 않았던 여인이 처음으로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Immaculata Conceptio)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베르나데트는 곧바로 마을의 주임 신부에게 보고하였는데, 이 발현이 있기 4년 전인 1854년에 이미 당시의 교황 비오 9세는 동정 성모 마리아의 무염 시태를 믿을 교리로 발표하였으나 일반 신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로써 베르나데트는 전세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녀의 전령자가 되었다. 그 후 그녀는 4월 7일과 7월 16일에 다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볼 수 있었는데 4월 7일에는 촛불이 베르나데트의 손가락에서 오랫동안 탔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기적이 있었고, 7월 16일 발현에 대해서는 그녀가 자세하게 언급하기를 회피하여 아직까지 비밀로 되어 있다. 그 후 이 발현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조사에 착수한 교회는 1862년 1월 18일 그녀의 증언, 기도와 회개 운동, 그리고 많은 치유 기적에 근거하여 성모 마리아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1864년 4월 4일에는 여러 주교들과 200여 명의 신부들을 비롯하여 1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체 거동과 더불어 루르드의 성모상이 축성되었고 이날을 기점으로 동굴을 중심으로 성당이 건립되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 성전’은 1866년 5월 19일 베르나데트가 참석한 가운데 봉헌되었다.
1872년에는 6만 명의 순례객이, 1908년에는 100만 명이 각지에서 이 성지를 찾아왔다. 그리고 1964년이래 매년 300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방문하였으며, 현재는 연간 4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루르드는 전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지가 되었으며, 기적에 의한 병의 치유도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그런데 21세기에는 육신의 치유보다는 성지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영적인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병자들은 육신의 치유보다 하느님의 현존에서 오는 평화와 기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으로 인한 병의 치유는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많은 사람들은 순례를 통하여 성지에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신성을 느끼며 신앙심을 굳게 간직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며 기적이다.
다음은 바뇌의 성모 발현이다. 바뇌는 벨기에의 고원 지대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바뇌의 성모 발현은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성모 마리아가 마리에뜨(12세)에게 8번 나타나신 사건이다. 1933년 1월 15일 일요일 밤 7시경에 마리에뜨가 남동생을 기다리면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광채가 나타나더니 정원에 아름다운 부인이 서 있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 후 1월 18일 저녁에는 작은 샘 옆에 서 있는 마리에뜨에게 “네 손을 물에 담가라. 이 샘은 나를 위하여 보존되어 왔단다” 하면서 샘물을 주고, 1월 19일 저녁에는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다. 이 샘물은 모든 백성과 병자들을 위해서 보존되어 왔단다” 하면서 병자들의 치유를 위한 물을 주었다. 그리고 1월 20일과 2월 11일에 나타나실 때는 “나는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 후 2월 15일과 2월 20일에도 나타났고, 3월 2일에 마지막으로 나타났을 때에는 “나는 천주의 어머니이며 구세주의 어머니이다. 기도를 많이 하여라”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바뇌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로서 물질주의의 현대인들에게 물질의 위험성과 가난한 정신의 메시지를 주셨다. 그 후 바뇌 성지에 순례객들이 찾아들었고 성모 마리아가 남겨주신 물로 많은 병자들이 치유받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였다.
그다음은 파티마 성모 발현이다. 파티마는 포르투갈 중부 산타렘 주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마을이다. 파티마 성모 발현은 이제까지의 모든 발현보다 세계사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 사이에 성모 마리아는 6번에 걸쳐 어린 목동이었던 루치아(10세), 프란치스코(9세), 히야친타(7세)에게 나타나셨다. 당시 세계는 시기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중이었으며 미국이 1917년 4월 6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서유럽의 전쟁에 개입하였고, 동유럽에서는 12월 7일 러시아가 볼세비키 혁명으로 제2의 이데올로기 세력을 계획하여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성모 마리아는 5월 13일부터 매달 13일에 이들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 세계 평화와 전쟁 종식을 위하여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당부하셨다. 10월 13일 마지막 발현 때는 기념 성당을 세울 것과 죄인들의 회개와 용서를 위해 보속할 것을 당부하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그 발현을 지켜보던 7만 명의 군중은 세 어린이에게 나타난 직후 일어난 ‘기적적인 태양의 현상’을 목격하였다. 그것은 비가 그치고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태양이 수레바퀴처럼 돌며 빛줄기를 뿜다가 곤두박질치고 그들을 향하여 떨어지는 광경이었다. 처음에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인정하지 않았던 레이리아 주교는 1930년 10월 13일에 이를 공식 승인하였다. 순례자들은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묵주 기도를 하고 은총을 가득히 받은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의심 없이 믿었다. 그 후 파티마 성지는 1953년 대성당 봉헌식을 가졌고 성당 양 옆에 병원과 피정의 집을 지었다. 해마다 많은 순례객들이 파티마 성지를 방문하면서 하느님의 신성을 느끼며 현존을 체험하였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 세계를 다시 한 번 평화의 모후께 봉헌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당부하였다.
성모 마리아의 발현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신, 현대사에 가장 큰 하느님의 현시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살아 계신 분이시고,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분이시며, 인류가 회개하여 전쟁이 없는 평화스러운 세상을 이룩하기를 바라시는 분임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현존하고 계심을 체험하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굳게 하셨다.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며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축복과 어머니의 큰 사랑이 가득하길 빌며, 특히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병자들에게 많은 은총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