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복음: 루카 1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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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9-10 15:03 조회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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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던 양 한 마리
“잘 들어 두어라.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7).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잃었던 양 한 마리’와 ‘잃었던 은전’ 그리고 ‘잃었던 아들’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버림받은 자로 취급되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예증하시기 위하여 세 가지 비유를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이 비유들은 본질적으로 회복의 비유들이다.
한 목자는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찾아 우리로 데려오며, 어느 여인은 잃었던 한 닢의 은전을 다시 찾아 금고에 넣고, 어떤 아버지는 잃었던 아들을 가족의 품으로 받아들인다. 이 모든 비유에서는 기쁨과 자비의 요소가 강조되고 있는데, 처음 두 비유에서는 잃었던 자녀에 대한 하느님의 기쁨이 묘사되고, 세 번째 비유에서는 잃었던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가 보여주는 애정과 자비가 표현된다. 루카 복음 사가는 메시지가 담긴 교훈적 비유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극적이고 아름다운 필체로 전달하고 있다.
루카 복음 사가는 복음의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루카 15,1-3).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죄인들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소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충성심과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생각으로 자만심에 빠져 있었고 불행한 죄인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독선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시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루카 복음 사가는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 이의 기쁨을 세 번이나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중요하게 가르쳐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그들과 함께 빵을 나누는 것을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죄인들도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당시 그리스도교 안에 죄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는 엄격주의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루카 복음 사가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들으러 오는 죄인들을 환영하셨음을 특별히 가르쳐주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복음의 태도가 아님을 가르쳐주고자 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잃었던 사람을 다시 찾고서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첫째로 ‘잃었던 양 한 마리’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알아보자.
“너희 가운데 누가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 마리를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아흔아홉 마리는 들판에 그대로 둔 채 잃은 양을 찾아 헤매지 않겠느냐? 그러다가 찾게 되면 기뻐서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자, 같이 기뻐해주십시오. 잃었던 양을 찾았습니다’ 하며 좋아할 것이다. 잘 들어두어라.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4-7).
길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 양을 찾아 기뻐하는 목자의 모습에서 죄인의 회개를 보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기쁨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항상 마음 아파하셨으며, 사회적으로 소외와 멸시를 당하는 죄인들을 특별히 사랑해주셨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어서 ‘잃었던 은전’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다.
“또 어떤 여자에게 은전 열 닢이 있었는데 그중 한 닢을 잃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여자는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온통 쓸며 그 돈을 찾기까지 샅샅이 다 뒤져 볼 것이다. 그러다가 돈을 찾게 되면 자기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자, 같이 기뻐해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잘 들어 두어라.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루카 15,8-10).
잃었던 한 닢의 은전을 찾은 여자의 기쁨을 통하여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잃었던 한 닢의 은전을 찾고서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함께 잔치를 베풀고 기쁨을 나누는 모습에서 당신 자녀에 대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얼마나 바라고 기뻐하시는지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회개를 바라고 계신다.
그리고 이어서 ‘잃었던 아들’에 대한 비유를 들려주신다. 루카 복음 사가의 깔끔한 필체와 아름다운 문장으로 전개 시키는 이 이야기는 과히 드라마 중의 드라마라 할 수 있다. 한때 잘못으로 아버지의 집을 떠난 뒤에 뉘우침으로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작은아들의 모습과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작은아들을 껴안아주는 아버지의 사랑이 과히 감동적이다. 그리고 여기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묘사한 교만하고 이기적인 맏아들의 행동이 이야기의 흥미를 더해준다. ‘잃었던 아들’에 대한 비유는 사순 제4주일 복음에 나왔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그곳에서 참고했으면 좋겠다. 다만 이 비유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은 맏아들이 동생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아버지에게 불평하면서 반항하고 전형적인 바리사이파 사람의 태도처럼 동생의 불행한 처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충실한 모습에 도취되어 동생을 단죄하는 태도이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는 작은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하느님의 당신 자녀들에 대한 크신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자신의 죄를 묻지 않고 용서하시며 받아주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앞으로 당신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나를 본보기로 보여주시려고 먼저 나에게 한량 없는 관용을 베푸신 것입니다”(1디모 1,15b-16).
잃었던 한 마리 양을 찾은 목자와 잃었던 한 닢의 은전을 찾은 여인과 돌아온 아들을 반기는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모습이다. 예수님 시대에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교훈으로 가르쳐주셨다. 따라서 이 비유가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들은 죄인들이 회개하여 하느님께 나가는 회복의 기쁨을 생각하지 않았고, 그와 같은 회복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비유는 그들만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이웃의 잘못을 한 치도 용서하지 않고 그냥 넘기려 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마음 깊이 새겨들어야 하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인간의 감정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이 비유들이 보여주는 생생함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통찰력과 동정심을 심도 있게 조명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어울리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죄인들의 회개를 더 기뻐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모습을 선명한 비유로 말씀해주셨다. 하느님 나라의 표상인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주님의 자비하심 위에 세워졌다. 우리는 힘들어하는 형제들과 공동체 안에서 소외 받는 이들을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들여야 한다. 교회는 항상 모든 이에게 주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의 징표가 되어야 한다.
“잘 들어 두어라.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