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복음: 마태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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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2-02 15:40 조회1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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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
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3-14).
오늘은 연중 제5주일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지난주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본성이시며, 당신께서 누리고 계시는 참된 행복에 대해서 가르쳐주셨다. 하늘나라를 차지하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지니신 마음을 닮도록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오늘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제자들에게 ‘소금과 빛’ 그 자체이신 스승을 따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세상에 나아가 그 역할을 다하도록 가르치신다. 먼저 소금에 대한 말씀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소금에 대한 말은 이미 구약성서에서도 자주 언급되어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구약성서에서 사용되었던 소금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제자들의 사명과 의무 그리고 마음가짐에 대해서 가르치려 하셨다.
그러면 소금에 대한 성서적 의미를 잠시 알아보자. 소금은 팔레스티나(이스라엘) 주민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원래 사해 주변에 살았기 때문이다. 처음 팔레스티나 인들에게 소금의 의미는 죽음이었다. 이는 소금 바다인 사해가 죽음의 땅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성서에 불모의 황무지인 이 소금의 땅은 마치 처벌의 대상으로 그리고 소금은 처벌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처럼 보였다. 창세기를 보면 롯의 아내가 벌을 받아 소금 기둥이 된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구약성서에 보면 옛날 희생 제사에서 제물에 모두 소금을 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레위기에 이렇게 나온다.
“너희가 드리는 곡식 예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한다. 너희 곡식 예물에 너희 하느님과 계약을 맺을 때 치는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가 바치는 모든 예물에 소금을 쳐야 한다”(레위 2,13).
여기에서 특별히 ‘하느님의 음식’에 간을 맞추는 것을 의미하는지, ‘하느님의 계약의 소금’을 재확인하는 예절을, 즉 계약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그러나 소금은 맛과 지속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게 하면서 음식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계약의 풍부한 의미와 지속적인 특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음식이 썩지 않고 오래 오래 맛을 간직하듯이 지속되는 영원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금의 계약’이란 하느님께서 다윗과 맺은 계약처럼 영원히 지속되는 계약을 말한다.
또한 소금은 향의 경우에 있어서처럼 정화의 의미를 나타내었다. 판관기 9장에 보면 점령된 도시에 소금을 뿌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열왕기에 보면 엘리사가 소금을 뿌려 ‘나쁜 물’을 좋은 물로 변화시킨 예가 나온다. 엘리사가 샘터에 가서 소금을 뿌리며 말하는데, 이렇게 나온다.
“내가 이 물을 정하게 하리라. 이제 다시는 사람들이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유산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2열왕 2,21).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구약의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제자들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하여 인간의 세계를 정화하고, 부패를 방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들은 아무것에도 쓸모가 없어지고 제자들은 당연히 밖에 내버려질 수밖에 없다. 맛이란 여러 의미가 있겠으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행복한 사람들의 맛, 즉 그리스도가 지니신 하느님의 본성을 말한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빛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마태 5,14-15).
성서에서 빛은 하느님의 본성을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표시이다.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께서 나타나실 때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하늘엔 당신의 빛이 찬란하게 퍼지고 땅엔 당신의 광채가 차고 넘치니 그 밝음은 대낮 같구나. 힘있는 당신의 손, 두 줄기 빛이 그 손에서 뻗어나네”(하바 3,3-4).
빛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적으로 표시할 뿐 아니라 하느님 자신을 나타내었다. 신약에 와서 세상의 빛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이시다. 이사야 예언자는 세상의 빛이신 메시아에 대해서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이사 9,1)라고 이미 말하였다. 여기에서 빛은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요한 9,5)라고 하시면서 당신이 곧 빛이심을 말씀하셨다.
세상은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참 빛이신 하느님을 보게 되었고, 믿게 되었고,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이시며, 인간의 생명과 빛이시며,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들을 비추는 참 빛이시었다. 따라서 그분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분의 삶과 모습을 통해서 빛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그분의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 그리고 부활은 당신 빛의 절정이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세상의 참 빛이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세상의 빛이셨던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당신과 똑같이 세상의 빛으로 살기를 바라시는 가르침이다. 당신의 삶을 따르고, 당신께서 걸으신 수난의 길을 똑같이 걸어, 하느님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기를 바라시는 가르침이다. 사실 제자들은 훗날 예수님과 같은 고난과 수난의 길을 걸으면서 세상의 빛이 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하시고 등불을 등경 위에 얹어 두어 온 집안을 환하게 비춘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숨어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난주 복음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떠한 모욕이나 박해 그리고 터무니없는 비난을 받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세상에 나아가야 한다. 등불이 등경 위에서 어둠을 비추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 나아가 어둡고 캄캄한 세상을 비추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착한 행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삶이다. 세상 사람들은 제자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빛이신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빛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빛으로서의 삶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 가운데서 멍에를 치운다면, 삿대질을 그만두고 못된 말을 거둔다면,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나누어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준다면,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너의 어둠이 대낮같이 밝아오리라”(이사 58,9-10).
세상의 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주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은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 안에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과 그분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으로서 빛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