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일(복음: 마태 5,17-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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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2-09 09:21 조회1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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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대한 가르침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
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오늘은 연중 제6주일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지난주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셨다. 그러고 나신 후에 제자들에게 ‘율법에 대한 견해와 새로운 당신의 법’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새로운 입법자로서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율법에 대한 당신 입장을 이렇게 밝히신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마태 5,17-18).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가르치시는 새로운 법이 하느님의 율법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임을 확실하게 해두고자 하신다. 구약의 율법은 분명 하느님께서 주신 가르침이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주신 하느님의 법이었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 이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하였다. 그들의 생활 중심에 바로 이 ‘율법-토라(Torah)’가 있었다.
그러면 ‘율법-토라’는 무엇인가? ‘율법-토라’는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규율 있는 생활을 하게끔 주신 ‘가르침’이었다. 이는 구약성서에 전통적으로 모세를 저자로 하는 법률 전체를 지칭하였다. 즉 모세오경이 중심이 되어 있다. 따라서 율법은 모세오경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세오경을 보면 하느님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는 구원의 역사를 천지 창조부터 모세가 죽을 때까지 이야기 속에 법조문의 구절들을 삽입시키면서 전개하였는데, 창조 사업을 하실 때, 노아와 계약을 맺으실 때,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실 때,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고 사막에서 생활할 때 하느님께서 법을 선포하셨다. 이렇게 많은 법(법조문)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삶의 영역을 총망라하면서 규제하였다. 그 이유는 ‘율법-토라’가 하느님 백성의 생활 전체를 규정 지워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율법의 대표적인 법령은 역시 십계명이다. 십계명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윤리적 계명은 정확성과 확실성을 가지고 표현되었으며 인간 양심이 지켜야 할 것들을 모든 면에서 잘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여러 법전 속에 산재해 있는 규율들은 가족, 사회, 경제 및 사법 등 시민 생활을 규제하였다. 마지막으로 의식에 관한 규범은 의식과 제관직과 제사를 바치는 조건들을 명시하여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을 규제하였다. 따라서 법에 의해 규제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율법-토라’를 잘 지켜야 했다. 이는 율법이 곧 하느님의 계약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계명을 준수해야 했으며, 만약 어길 경우 하느님의 벌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율법은 하느님과의 계약인 동시에 하느님의 계명이었다. 하느님의 법은 이스라엘이 구원을 가져다주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동안 종교 생활과 삶 전체를 지배하는 중심 요소였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해서 엄격하게 준수할 것을 가르치셨다. 복음은 다시 이렇게 전한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19-20).
율법이 곧 하느님의 계명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시면서 철저하게 지키도록 가르치신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율법에 따라 살았던 삶에 대해 인정하시면서 그들보다 더 옳게 살도록 하신다.
그러나 그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주장하는 율법 준수에는 큰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었다. 첫째는 율법의 핵심인 사랑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법령만 지키면 된다는 옹졸한 율법주의가 생겨났고, 율법을 더욱 까다로운 법 규정으로 만들어놓고 율법 준수를 사람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멍에로 만들었다. 둘째, 더 큰 위험은 근본적인 것으로서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필요로 하지 않고 율법의 법령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인간이 율법 안에서 스스로 의화 되어 의인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율법의 위험성을 잘 알고 계셨다. 또한 이를 이용하여 치부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그릇된 행실과 폐단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몇 가지 예를 들어 율법의 정신을 새롭게 가르쳐주신다. 즉 율법주의적인 멍에와 같은 삶의 규제를 벗어나 근본적인 하느님의 사랑의 법을 가르쳐주신다.
첫째, ‘성내지 말라’고 하신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 법정에 넘겨질 것이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마태 5,21-24).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는 법령을 통하여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가르쳤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법령을 새롭게 하시는데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라고 욕하거나, 미친놈이라고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살인은 특별한 경우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법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법령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중시하면서 형제를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신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며, 존중하고, 형제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하느님의 법을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이 아닌 새로운 법으로 가르치신다. 형제에 대한 사랑은 적개심과 원한을 먼저 풀어야 한다. 그래서 제단에 예물을 드리기 전에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먼저 화해하고 나서 예물을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둘째,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벌써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했다. 오른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마태 5,27-29).
예수님께서는 성 윤리에 대해서 엄하게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행위 이전에 마음의 죄까지도 짓지 말라고 하신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사랑으로 질서를 지키도록 가르치신다. 법조문을 지키기 전에 이미 마음에서부터 하느님의 법을 지켜야 함을 강조하신다.
세 번째, ‘이혼하지 말라’고 하신다.
“‘또한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면 그에게 이혼장을 써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면, 이것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다. 또 그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면 그것도 간음하는 것이다”(마태 5,31-32).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서로 평등하게 살도록 짝을 지어주셨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서 부부로 짝지어진 사람은 서로 버리고 헤어질 수 없다. 남자가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릴 수 있다고 하는 율법을 단호하게 거절하시면서 음행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헤어질 수 없음을 가르치신다.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 이루어진 가정은 곧 주님께서 계시는 작은 교회이다. 서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네 번째,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다.
“또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그리고 주님께 맹세한 것은 다 지켜라’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예루살렘은 그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다. 너희는 그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3-37).
예수님께서는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는 맹세가 필요하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새로운 마음의 법을 몇 가지 가르쳐주셨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이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법이라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의 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법을 지켜야 한다. 진심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의 권리를 지키는 하느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곧 사랑이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의인만이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법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주님의 ‘새로운 법’이다.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