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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복음: 요한 1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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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3-16 08:55 조회116회 댓글0건

본문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오늘은 사순절 제5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신다. 지난주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을 고쳐주시면서 빛을 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셨고, 오늘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통하여 ‘생명과 해방’을 주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하시면서 당신께서 곧 부활이시며 생명이심을 말씀하신다. 따라서 오늘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기적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 복음의 배경을 살펴보자. 예수님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을 고쳐주신 뒤에 반대하는 유다인들로부터 심한 배척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해 겨울철에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봉헌절 축제에 참석하셨다가 유다인들로부터 또다시 큰 봉변을 당하셨다.

그러면 봉헌절 축제는 어떤 축제인가? 원래 이스라엘의 봉헌절 축제는 특히 성전과 관련하여 솔로몬 시대로 소급된다. 그러나 B.C. 165년 유다 마카베오에 의해 재건된 성전이 헬라인에 의해 더럽혀지자 새로운 제단을 봉헌했는데 이로 인해 봉헌절 축제가 연례 행사가 되었다. 이 축제는 겨울에 행해졌으며, 8일간 계속되었다. 이 축제는 때로는 빛의 축제로도 알려졌는데 이유는 8일간의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촛불을 하나씩 밝혔기 때문이었다. 이 봉헌절 축제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셨다가 유다인들에게 크게 배척을 당하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화가 나서 예수님께 돌을 집어던지려고까지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피하시어 제자들과 함께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가셔서 머물고 계셨는데 그때 라자로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가 사는 베다니아 동네에 라자로라는 병자가 있었다. 앓고 있는 라자로는 마리아의 오빠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적이 있는 여자였다.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앓고 있습니다’ 하고 전했다. 예수께서는 그 전갈을 받으시고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으로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의 아들도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고 계셨다. 그러나 라자로가 앓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서 더 머무르시다가 이틀이 지난 뒤에야 제자들에게 ‘유다로 돌아가자’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1,1-7).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와 라자로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베다니아 동네에서 살았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자주 그들 집에 들르셨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믿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마르타와 마리아는 오빠 라자로가 앓고 있음을 예수님께 알렸고 집에 오시기를 청하였다. 아마도 그들 자매는 예수님께서 봉헌절 축제에 참가하셨을 때 함께 동행하였고, 예수님께서 계신 곳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의 소식을 들으시고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틀이 지난 뒤에 유다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이때 제자들은 크게 걱정을 하였다. 왜냐하면 봉헌절 축제 때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로부터 큰 봉변을 당하셨는데 다시 예루살렘 근처인 베다니아, 즉 유다로 가자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얼마 전만 해도 유다인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그곳으로 다시 가시겠습니까?”(요한 11,8) 하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낮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세상의 빛을 보기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빛이 없기 때문에 걸려 넘어질 것이다”(요한 11,9-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지난 주에 말씀하셨던 ‘밤과 빛’에 대한 말씀을 다시 하셨다. 밤은 곧 예수님의 수난을 암시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넘어지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염려되는 것은 지금이 아니고 훗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제자들이 받아야 할 박해와 죽음에 대한 걱정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어떻게 그들이 박해를 받아들이며 믿음을 간직하게 될지 염려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서 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어서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내가 가서 깨워야겠다”(요한 11,11)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그저 잠을 자고 있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주님, 라자로가 잠이 들었다면 곧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유다로 가기가 싫어서 잠을 자고 있다는 말씀에 라자로가 잠이 들었다면 주님이 가시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얼마나 유다인들이 무서웠으면 그들이 유다로 가는 것을 이처럼 꺼려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편으로 예수님께서 유다인들로부터 당하신 배척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짐작케도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라자로는 죽었다. 이제 그 일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내가 거기 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그곳으로 가자”(요한 11,15)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라자로가 죽었음을 말씀하시고 죽은 라자로의 일로 하느님과 아들에 대해서 더욱 믿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다. 부활과 생명에 대한 체험을 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때에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가 자기 동료인 다른 제자들에게 “우리도 함께 가서 생사를 같이 합시다”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유다로 다시 돌아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였던 것 같다. 이는 예수님의 수난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아에 이르러 보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는 그곳에 이르러 보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이나 지난 뒤였다. 베다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오 리밖에 안 되는 곳이어서 많은 유다인들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다. 예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타는 마중을 나갔다. 그동안 마리아는 집 안에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주실 줄 압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요한 11,17-27).

예수님과 마르타 사이에 잠시 동안 ‘부활과 생명’에 대한 대화가 이루어진다. 마르타는 마지막 날 부활에 대한 믿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육체의 부활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래서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지막 날에 부활하리라는 믿음은 모든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이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이미 성서에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마르타는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한다는 생명에 대해서는 믿고 있었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생명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메시아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의 믿음은 분명하였다.

그리고 마르타는 돌아가 동생 마리아에게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고 일러주었다. 마리아는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마리아를 위로하던 유다인들도 마리아가 오빠의 무덤으로 곡을 하러 가는 줄 알고 뒤따라갔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찾아가 뵙고 엎드려 언니인 마르타처럼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32)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뵙고 슬퍼서 울었고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 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들이 ‘주님, 오셔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저것 보시오. 라자로를 무척 사랑했던가 봅니다’ 하고 말하였다. 또 그들 가운데에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라자로를 죽지 않게 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그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자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마르타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시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제 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여기 둘러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큰 소리로 외치시자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주어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요한 11,33-45).

예수님께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같이 따라온 유다인들까지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오르셨다.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에 함께 동참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날 예수님께서 흘리신 눈물은 훗날 겪으셔야 할 당신의 수난을 생각하시고 흘리신 눈물이기도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비통한 심정에 잠겨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는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다. 거기에 둘러선 사람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보내주셨음을 믿게 하려는 기도였다. 라자로의 소생을 통하여 당신을 따르는 이들, 특히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라자로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삶의 해방과 자유를 얻는다. 예수님께서 외치신 한 말씀으로 라자로는 생명을 얻고 죽음으로 갇혀 있었던 무덤에서 걸어 나온다. 이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생명과 해방과 자유를 주시는 모습이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는 훗날 당신의 파스카 사건을 통하여 확실하게 보여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늘 마르타에게 하신 말씀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고 계시는 말씀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